▲40년된 아현동 목욕탕의 탕 모습. 사진만 보아도 먼 기억 속의 내가 종종 걸음으로 나타나 등을 밀거나, 좁은 탕 안에서 물장난을 칠 것만 같다.
국립민속박물관
그렇다 보니 이 동네에는 토박이가 없다. 태어나서 줄곧 산 몇몇 사람들은 존재하지만 대를 이어 아현동에 터를 내린 사람들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살림이 어지간해지면 떠나고픈 마을인 것이다. 그러나 '조국 근대화'란 기치 하에 몰아부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도심에 자리한 아현동은 도시빈민들의 불가피한 터전이 되었다.
1권 <아현동 사람들 이야기>에는 그곳에 오래 거주한 사람들의 예전과 오늘의 삶이 담겨져 있다. 어떻게 아현동에 들어와 살게 되었으며, 지금 그들의 삶의 이모저모를 사진과 글로 옮겨 놓았다. 2권 <김종호, 김복순 부부의 물건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한 부부의 아현동 삶과 생활재들을 모두 기록했다.
기실 이 책의 내용이 대단히 호들갑스럽게 떠들 만한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달동네가 흔했던 시절의 이야기는 스스로 겪거나 여러 통로를 통해서 공유된 이야기들이다. 또 물건 이야기라고 해서 전시를 열 수도 없는, 지금 당장 시장에 가면 구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읽다 보면 눈가가 따끔따끔 해지면서 가슴 한쪽은 따뜻해진다. 나의 이야기거나 혹은 내 부모의 이야기일 수도 있는 것들이다. 현재의 사실들인데 어쩐지 자꾸 옛날 일로 여겨진다. 아현동 사람들의 삶과 물건들이 대한민국의 표준이라는 것도 아니다. 그저 2008년 아현동의 모습일 뿐이다. 그런데도 독자의 감정은 명작 소설을 읽는 것처럼 감정이입을 뿌리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이 보고서의 마력이다.
서울시 뉴타운 재개발 계획에 의해 아현동 633번지 일대의 소소한 이야기들은 모두 사라지게 된다. 도시의 생성과 발전과정에서 끊임없이 재개발은 자행되었고, 도시빈민들은 삶의 질곡을 강제 당했다. 이 보고서가 재개발을 직접 겨냥하지 않지만 보고서를 읽노라면 하나의 지역역사가 매몰되는 안타까움이나 분노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