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분방한 글쟁이들? 모르는 말씀!

[책소개] 구본준의 <한국의 글쟁이들>

등록 2008.09.08 17:34수정 2008.09.08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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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글쟁이들>(구본준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은 흔한 서문조차 없다. 18명의 인터뷰이를 최대한 많이 보여주는 것만이 이 책의 도리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게걸스러운 독자의 입장에선 한 권에 꾸역꾸역 밀어 넣느니 차라리 9명씩 두 권으로 더 자세히 보여주었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책이다.

 

정민, 김용옥, 이주헌, 노성두, 이덕일, 이원복, 주강현, 한비야, 임석재, 표정훈, 조용헌, 주경철, 정재승, 공병호, 구본형, 허균, 그리고 새로 알게 된 과학 저술가 이인식과 <타짜>의 스토리를 쓴 만화작가 김세영까지! 책에는 대한민국 인기 작가들이 어떻게 독립저술가로 우뚝 섰는지 그들 자신의 입말을 들어 쓴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1만권 팔아 '베스트셀러' 되면 1천만 원

 

 <한국의 글쟁이들> 겉그림.
<한국의 글쟁이들> 겉그림. 한겨레출판
<한국의 글쟁이들> 겉그림. ⓒ 한겨레출판

이름만 적혀 있으면 목차조차 확인하지 않고 책을 집어들게 되는 전업작가부터 찾아 읽었는데, 결국 처음 보는 과학 저술가와 한 번도 책을 읽어본 적 없는 작가의 이야기까지 모두 읽게 됐다. 소재와 주제는 다르지만 그들이 보여준 치열함이라는 공통점이 책장을 술술 넘기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전업 작가로 산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걸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됐다. 인세가 책값의 10% 전후라는 것을 감안하면 책 한 권을 써서 밥을 버는 일이 결코 녹록치 않다는 답이 금세 나온다. 출판시장에서 1만원짜리 책이 1만권 정도 팔리면 베스트셀러 순위에 들고, 어느 정도 성공한 책이라고 한다.

 

1만 부가 팔려도 지은이에게 돌아가는 인세는 1천만원 정도다. 경제적 관점으로 보면 인건비에도 못 미치는 수준인 것이다. 1만 부 팔리는 책을 1년에 몇 권씩 쓰면 수천만 원대 수입이 생기게 되지만 실제 이 정도 수입을 올리는 사람은 책을 펴내는 모든 저자 중 1퍼센트도 안 될 정도다. (90쪽)

 

물론 강의나 칼럼 기고 등 부가 수입이 생기기도 하지만, 어느 쪽도 장담할 수 없는 불확실한 수입원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중파로 '책을 읽읍시다'류의 캠페인을 벌일 정도로 책을 안 읽는 나라에서 독립저술가로 살아가는 데 성공적인 행보를 보여주는 작가의 글쓰기 비법은 귀담아 둘 만하다.

 

굳이 책쓰기를 목표로 하지 않더라도 그들의 노하우를 들어두는 것은 요긴하게 쓸 데가 있을 것이다. 요즘처럼 일반인들이 글을 자주, 많이 쓰게 된 인터넷 환경이라면 블로그 포스트 하나, 토론방에 다는 댓글 하나라도 맛깔나게 쓸 수 있을 테니까. 또, 논문이나 대학 과제를 써야 하는 사람들, 회사에서 기획서를 써야 먹고 사는 사람들 등 자판을 두드리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들에게 약이 되는 노하우도 많다.  

 

집에 제본기를 두고, 빈 파일을 들고 취재 가는 주강현

 

즐겨읽는 정민, 김용옥, 노성두, 임석재, 표정훈에 대한 관심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정작 관심 없던 이인식과 주강현의 글쓰기 방법론에 눈을 번쩍 뜨인다.

 

민속문화 저술가 주강현의 집에는 제본기가 있다고 한다. 대학가 복사집에서 볼 수 있는 제본기가 집에 있는 이유는 자료수집을 위해서라는데, 그는 인터넷에서 괜찮다 싶은 자료를 보면 당장은 필요가 없어도 반드시 출력해 둔다.

 

"언제 다시 검색해서 찾아보겠어요? 봐서 쓸 만하다 싶으면 뽑아두는 게 나중에 다시 낑낑대며 찾는 것보다 시간을 줄여줍니다."

 

그는 이런 출력지들과 각종 자료들, 신문 스크랩 등을 항목별, 시기별로 제본해서 따로 모은다. 또, 목재가구로 된 메모 전용 보관함이 있는데, 그 상자에는 언제 어디서 떠오른 아이디어건 종이에 적어 모아둔다. 생각이 떠오른 즉시 메모하고 집에 돌아와 컴퓨터에 옮겨둔 뒤, 역시 항목별로 메모를 넣어 보관한다.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렸을 때의 느낌을 상기하기 위해서란다.

 

취재 여행을 갈 때는 빈 바인더나 클리어파일을 가져간다. 현지에서 거저 구할 수 있는 각종 자료들, 이를 테면 교통시간표, 관광안내서, 홍보용 전단, 어촌계 서류 등을 모조리 파일 안에 넣어온다. 여행지에서 적은 메모까지 챙기면 한 권의 자료철이 생긴다. 

 

이쯤 해도 지은이 구본준 기자가 '자료 대마왕'이라고 부른 이유를 알 것 같은데, 그의 자료 수집 노하우는 또 있다. 사진 저장용 컴퓨터다. 혹시라도 바이러스 때문에 사진 자료가 날아갈 수 있으므로 아예 인터넷이 안 되는 컴퓨터에 사진만 따로 보관하는 것이다. "자료가 공부의 반"이라고 말하는 작가의 자료 수집, 정리 노하우는 매일 차고 넘치게 쏟아지는 정보 홍수 속에서 누구나 귀 기울일 만한 아이디어다.

 

홈페이지에 접속하게 되는 작가, 정민


한시 번역으로 옛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전달해주는 정민 교수의 자료수집(의료용 차트 거치대에 자료 파일을 빼곡히 꽂아뒀다)도 독특하지만 정작 그에게서 배우고 싶은 것은 홈페이지의 성실함이다(정민 교수 홈페이지).

 

그는 오래 전부터 홈페이지에 매일 조금씩 올린 글들을 모아 책으로 묶어내곤 한다. 언뜻 듣기에는 쉽게 책을 내는 방법인 것 같지만, 글의 길이가 길든 짧든 매일 정해진 분량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위에 링크한 그의 웹주소로 들어가 보면 몇 해 전에 써둔 자기소개서가 나온다.

 

스승들을 만나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어떻게 공부에 도움을 받았는지, 어떤 책을 읽으며 고생했는지 구구절절 담아둔 자기소개에는 책을 쓰던 당시의 이야기도 솔직하게 적혀 있다. 그 중 일부를 허락도 없이 옮긴다.

 

몇 년 전부터 건강이 아주 안 좋았다. 체중이 14kg이나 줄었다. 식도 장애 때문이었는데 원인을 잘 몰라 고생을 그렇게 했다. 다행이 지금은 정상을 회복했다. 그때는 학교 일도 너무 힘들었다.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명청대의 청언소품에 마음을 뺏기게 되었다. A4지 이면지를 반으로 잘라 거기에 청언소품 원문을 하나씩 붙였다. 전철을 타고 다니며 번역을 했다. 그 여백에 다시 내 평설을 적었다. 화장실에 놓아두고, 소파 옆에도 놓아두고 탁자 밑에도 놓아 두었다. 가방 속에도 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마음을 비우는 지혜>와 <한서이불과 논어병풍> <내가 사랑하는 삶>이 나왔다. 앞의 두 책은 대부분 지하철에서 했고, 나중 책은 그해 맹장 수술과 식도 수술로 두번 병원에 입원했을 때 병실에서 했다. 


내 취미는 서예와 전각이다. 대학교 입학하자마자 서예반에 들어갔다. 서예반에서 4년을 살았다. 어머니가 혀를 차시며 '내가 너를 국문과에 보냈지 서예과에 보낸 줄 아니?'하셨다. 대학원에서도 글씨는 계속 썼다. 글씨를 쓰고 있으면 마음이 맑아졌다. 틈틈히 전각도 했다. 98년 대만 정치대학에 교환교수로 갔을 때는 아예 본격적으로 전각을 배웠다. 교환교수로 학생을 가르치는 일보다 돌파는 일에 더 매달렸다. 귀국한 뒤에 우연한 기회가 닿아 <돌위에 새긴 생각>을 펴냈고, 최근에 다시 중국 진한시대 와당 200개 정도를 추려내어 <와당의 표정>이란 제목으로 엮었다.  

직장인보다 더 규칙적으로 살고, '사람'과 '사전' 잘 써야...

 

역사 저술가 이덕일은 새벽과 오전에 글쓰기를 하고 오후에 자료 수집을 한다. 대부분의 필자들과 달리 원고 기한을 어기는 법이 없다는데, 그 비결은 일반 직장인보다 단조롭고 반복적이며 금욕적인 생활 방식 덕이다.  남들 출근하는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시간까지 일하고, 가끔 야근도 한다는 독립저술가는 직장인보다 더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저녁 약속을 극도로 피하는 건 사람 만나고 모임 나가면 글을 쓰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평행봉과 피아노로 대변되는 도올 김용옥은 배울 때 사정없이 겸손해진다. 도올서원에서 공부해 본 사람들은 동의할 것이다. 십여 년 전 여름, 도올서원에서 오전에는 선생의 강의를 듣고 오후에는 특별활동을 할 때였다. 산스크리트어를 배우는 특별활동반에 들어갔는데, 선생님도 그 반에 들어오셨다. 오전 내내 서서 강의하느라 적잖이 힘드셨을 텐데, 한 달 내내 에어컨도 없는 통나무 출판사 집필실에서 학생들과 똑같이 꼬불꼬불한 글자를 외우고 따라 읽으셨다.

 

책에만 의존하면 위험하며 사람끼리 만나는 것 자체, 그리고 배우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재즈가 궁금하면 재즈에 정통한 사람을 찾아가서 듣고 배우고 독서 리스트를 뽑아내서 보는 거야. 그 분야에 정통한 좋은 사전을 물어봐서 그때그때 용어를 애매하게 넘어가지 말고 확인하고 넘어가고, 그게 독서지. 사람하고 사전을 잘 써야 독서야." (75쪽)

 

이 책은 구본준 기자가 <한겨레>에 연재한 기사를 다시 고쳐 쓴 것이다. <한겨레>에 연재할 때는 저자들이 쓴 책을 스스로 몇 권씩 소개하는 박스기사가 있었는데, 책으로 엮으면서 분량 탓인지 그 부분이 빠져 있다. 또, 작가의 집필공간이나 연구실에서 찍은 사진들이 등장하는데 인터넷 신문으로 볼 때 컬러 사진이라 생동감 있던 것이, 책에는 흑백으로 인쇄돼 있어 그 맛을 살리지 못했다. 글 만큼이나 작가의 외모에도 관심이 많은 나같은 삼류 독자에게는 10% 아쉬운 부분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 블로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9.08 17:34ⓒ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 블로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글쟁이들 - 대한민국 대표 작가 18인의 ‘나만의 집필 세계’

구본준 지음,
한겨레출판,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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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작가 #비법 #글쓰기 #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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