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보다 좋은 우리 '상말' (40) 일목요연

[우리 말에 마음쓰기 413] ‘일목요연하게 알’, ‘일목요연하게 달라진’ 다듬기

등록 2008.08.31 12:37수정 2008.08.31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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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일목요연 1

.. 이것은 각국의 작물통계를 보아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  <쓰노 유킨도/성삼경 옮김-소농>(녹색평론사,2003) 90쪽


"각국(各國)의 작물(作物) 통계를 보아도"는 "나라마다 어떤 농사를 짓는지 통계를 보아도"나 "나라마다 농사를 어떻게 짓는지 통계를 보아도"로 다듬어 줍니다.

 ┌ 일목요연(一目瞭然)] 한 번 보고 대번에 알 수 있을 만큼 분명하고 뚜렷하다
 │   -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해설서
 │
 ├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다
 │→ 뚜렷하게 알 수 있다
 │→ 잘 알 수 있다
 │→ 환히 알 수 있다
 │→ 쉽게 알 수 있다
 │→ 한눈에 알 수 있다
 └ …

통계를 보면 잘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있으나, 통계를 보아도 잘 알 수 없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잘 갈무리해 놓으면 한눈으로도 알아볼 수 있으나, 잘 갈무리해 놓았어도 무슨 이야기인지 갈피를 못 잡기도 합니다.

 ┌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해설서
 │
 │→ 잘 갈무리된 풀이책
 │→ 쉽게 갈무리된 풀이책
 │→ 한눈에 알도록 갈무리된 풀이책
 └ …

알맞는 낱말을 잘 골라서 쓴 글이라 해도 알아보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알맞지 않는 낱말을 넣었다고 해도 크게 어려움을 느끼지 않으면서 알아보기도 합니다.


알맞춤하며 올바르게 글을 쓰도록 매무새를 추스르는 일에 마음을 기울여야 하는 한편, 자기가 쓰는 글에 어떤 얼과 넋을 담으려고 하는가에도 마음을 쏟아야지 싶습니다. 글이나 말은 정보만이 아닙니다. 우리 이야기이고, 우리 삶이며, 우리 모습입니다.

ㄴ. 일목요연 2


.. 그 규칙에 비추어 보면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기 때문에 가장이나 가족들과 상의할 필요가 없는 규칙 이외의 것은 개인이 자유롭게 할 수 있고 ..  <나카네 지에/양현혜 옮김-일본 사회의 인간관계>(소화,1996) 31쪽

"가족(家族)들과 상의(相議)할 필요(必要)가 없는"은 "식구들과 얘기하지 않아도 되는"이나 "식구들한테 알리지 않아도 되는" 쯤으로 다듬습니다. "규칙 이외(以外)의 것은"은 "규칙 말고는"으로 손보고, '개인(個人)이'는 '저마다'로 손봅니다.

 ┌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기 때문에
 │
 │→ 잘 알 수 있기 때문에
 │→ 환히(뚜렷이) 알 수 있기 때문에
 │→ 누구나 알 수 있기 때문에
 │→ 어렵잖이 알 수 있기 때문에
 └ …

손쉽게 쓰면 됩니다. 네 글자 한자말 '일목요연'은 남다른 뜻이 담긴 말이 아니라, 그저 '뚜렷하다'를 뜻합니다. 그래서 "뚜렷이 알 수 있기"라고만 적어도 됩니다. 같은 뜻으로 "환히 알 수 있기"라고만 적어도 되어요. '잘' 한 마디를 넣을 수 있고, '쉽게'나 '손쉽게'를 넣어도 어울립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렵잖이'나 '어려움 없이'를 넣어 보기도 합니다.

쉽게 알 수 있는 일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입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면 '금세' 알 수 있는 일입니다.

ㄷ. 일목요연 3

.. 70년대를 지나 8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목요연하게 달라진 점은, 그 도시 주민의 두터운 층으로 느껴졌던 서민이 어느 사이에 어떻게 없어졌는지 모르게 슬그머니 행방불명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  <이호철-명사십리 해당화야>(한길사,1986) 9쪽

"행방불명(行方不明)이 되어버렸다"는 "없어져 버렸다"나 "자취를 감춰 버렸다"로 고쳐 봅니다. '서민(庶民)'은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으나 '여느 사람'이나 '사람들'로 손볼 수 있습니다. "달라진 점(點)"은 "달라진 대목"으로 손질합니다.

 ┌ 일목요연하게 달라진 점은
 │
 │→ 뚜렷이 달라진 대목은
 │→ 크게 달라진 대목은
 │→ 여러모로 달라진 대목은
 │→ 많이 달라진 대목은
 │→ 눈에 띄게 달라진 대목은
 └ …

'뚜렷이'나 '환히'나 '틀림없이'로 고쳐서 써야 알맞는 '일목요연'입니다. 글흐름에 따라서 "한눈에 알 수 있게"나 "척 보면 알 수 있게"나 "누구나 알 수 있게"로 고쳐쓸 수 있고, '손쉽게-쉽게-수월하게' 같은 말을 넣으며 고쳐 써도 어울립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일목요연' 같은 네 글자 한자말을 쓰는 일은 그리 걱정스러운 노릇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냥저냥 쓰는 말이면 그냥저냥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래저래 알아듣는 말이라면 이래저래 지나쳐도 된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번 더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고사성어나 사자성어라는 틀에 매인 채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하고, 고사성어나 사자성어라는 틀에서 홀가분한 가운데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하고 어떻게 다른가를. 우리 생각이 어떻게 달라지는가를. 우리 얼이나 넋이 어떻게 바뀌는가를. 우리 삶은 어떻게 영향을 받는가를.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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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 #한자 #우리말 #우리 말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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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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