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참 바보처럼 살았군요

[서평] 손홍규 소설 <청년의사 장기려>

등록 2008.08.31 19:57수정 2008.09.01 08:20
0
원고료로 응원
a 표지 <청년의사 장기려>

표지 <청년의사 장기려> ⓒ 다산책방

▲ 표지 <청년의사 장기려> ⓒ 다산책방

세상살이 힘들다 싶을 때면 앞 세대를 생각한다. 식민지 지배, 해방과 분단, 전쟁으로 이어지는 세상을 온몸으로 지탱하며 살아왔던 분들을 떠올려 본다. 그분들이 겪어온 세월에 비하면 우리 세대의 힘들다는 말은 엄살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 험한 세상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한 게 생존이 아니었을까. 온통 뒤틀리고 휘어진 세상. 그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뒤틀리고 휘어진 세상에 제 몸을 억지로 맞추려고 몸부림쳤다.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 험한 세상 살아온 사람 중에 장기려란 분도 있었다.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지키기도 힘겨운 세상 속에서 환자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실패해야 성공한다는 역설

 

평생 글을 쓰는 작가로 살아가고 싶다는 손홍규는 '작은 예수', '살아있는 성자', '바보의사', '한국의 슈바이처' 등으로 불리는 장기려의 삶에 매료되었다. 자신을 매료시킨 장기려의 삶과 정신을 보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전달하고 싶다는 바람 하나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첫 문장을 시작한지 2년 만에 장기려의 삶이 <청년의사 장기려>란 소설로 완성되었다.

 

예수에 대해 너무 깊이 생각하느라 예수를 닮아버린 사내. 자신이 이미 예수를 닮은 사람이라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할 만큼 격정의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사내. 대개의 종교인들이 숭배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것들을 자신의 삶으로 만들어버린 이 사내를 기억한다는 건 어쩌면 하나의 고통이다. 그렇지만 기꺼이 감내할 가치가 있는 고통이기도 하다.(작가의 말 중에서)

 

예수를 너무 깊이 생각하다 예수를 닮아버린 장기려의 삶에 매료된 작가. 2년이란 세월은 장기려의 삶에 매료되어 헤어나지 못했다고 작가는 회상한다. 때로는 참을 수 없는 심정이 되고, 때로는 고통스러웠지만, 충분히 감내할 가치가 있었다고 밝힌다.

 

장기려의 삶이 인간이 만든 기적이었다고 작가는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장기려의 삶이 하나의 돌연변이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본성이 모두 그러하다고 장담할 수 없다는 이유를 덧붙이면서.

 

장기려의 삶을 한 권 소설로 세상에 내보내면서 작가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도 덧붙였다. 장기려를 닮아야 한다거나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지 않고, 다만 이렇게 실패해야 성공한다는 역설을 보여주고 싶었다는 게 자신의 생각이었다는 말을.

장기려는 어떤 사람인가?

이 책의 주인공 장기려는 1911년 평북 용천에서 태어나 1995년 85세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우리 곁을 살다 간 성자였다.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있는 그의 묘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모든 것을 가난한 이웃에게 베풀고,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 것도 남겨놓지 않은 선량한 부산시민, 의사, 크리스천. 이곳 모란시민공원에 잠들다."

그는 청년시절 의사가 되기 전에 세상에 하나의 다짐을 품었다. '의사를 한 번도 못 보고 죽어가는 사람을 위해 평생을 바치겠다'는 소망이 그것이다. 그의 삶은 이 서원을 지키기 위한 순간순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념을 떠나, 정치를 떠나, 오직 '생명'에 충실했던 그는 국내 최초로 간 대량절제수술을 성공시켰고, '건강할 때 이웃돕고 병났을 때 도움받자'는 취지로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한국 최초로 설립하였으며 이는 우리나라 의료보험의 모태가 되었다. 그리고 이런 그의 헌신적인 노력은 '막사이사이 사회봉사상'이라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바보가 그리운 세상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해주고, 내 가족보다 이웃을 먼저 섬기며 산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과 가족들의 안위를 돌보며 살아간다.

 

장기려는 달랐다. 자신보다 환자를 먼저 생각하고 가족보다 어려운 이웃을 더 먼저 돌보며 살았다. 보통 사람들이 가는 방향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갔다. 그런 장기려를 세상 사람들은 바보의사라 불렀다.

 

우리 사는 세상에 아직 희망을 걸 수 있는 건 이웃을 먼저 돌보고 그들에게 손 내밀어줄 수 있는 바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60여년을 의사 생활을 하면서 집 한 채 남기지 않고 돌아간 장기려의 바보스런 삶은 그래서 후대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물질이 신이 되고 돈이 권력이 되는 세상이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바보들이 많다. 예수를 닮은 성자의 모습은 아니더라도 이웃과 사랑을 나누려 애쓰는 작은 바보들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우리들 마음을 밝혀주는 촛불이 된다.

 

바보가 그리운 세상에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진정 바보들이 그리울 때 <청년의사 장기려>를 읽어보면 좋다. 장기려의 삶을 좀더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장기려, 그 사람>이란 평전을 구해 읽어보는 것도 괜찮다.

덧붙이는 글 | 손홍규/다산책방/2008.7/11,000원

2008.08.31 19:57ⓒ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손홍규/다산책방/2008.7/11,000원

청년의사 장기려 - 우리 시대의 마지막 성자, 개정판

손홍규 지음,
다산책방, 2012


#바보의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2. 2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3. 3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4. 4 국방부의 놀라운 배짱... 지난 1월에 그들이 벌인 일 국방부의 놀라운 배짱... 지난 1월에 그들이 벌인 일
  5. 5 [영상] 가을에 갑자기 피어난 벚꽃... 대체 무슨 일? [영상] 가을에 갑자기 피어난 벚꽃... 대체 무슨 일?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