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언덕바람의 언덕에는 바람이 산다. 그리고 넓게 펼쳐진 바다, 그 바다가 토해내는 하얀파도가 함께 산다..
이명화
짐은 많고 무거운데 어떻게 움직여야 하나, 고달픈 여행이 될 것인가 괜스레 마음이 어두워진다. 공항 밖 의자에 앉아 있다가 무작정 앉아 있을 수 없어 택시를 타고 은행이 있는 제주도 시가지로 안내를 부탁한다. 택시기사는 가만 보니 빤한 길을 두고 빙빙 둘러서 먼 길을 돌아 은행 근처에 내려준다. 우체국 안에서 짐을 내려놓고 기다리는 동안 남편은 가까운 공중전화부스에 가서 렌트카 회사마다 전화해서 끝까지 소형차가 있는 렌트카 회사를 추적한다.
한참만에 그리고 맑게 갠 얼굴로 들어오더니 ‘다 없다는데 딱 한 군데에 소형차가 있다’고 한다. 렌트카가 오기를 기다리는 시간에 점심을 먹는데 렌트카에서 연락이 왔다. 렌트카 계약서를 작성하고 드디어 차에 올라탔다. 아토스를 타다가 소나타 승용차를 타니 운동장만큼이나 넓고 어색하다. 차체는 더 낮고 넓다. 적응하려면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복잡한 제주시내를 벗어나 서귀포시에 접어든다. 갈수록 길은 한적하고 넓어진다.
길 양 옆으로 탁 트여 있어 멀리까지 조망된다. 넓은 평지로 된 서귀포... 승마장이 스쳐가고 새별 오름이 앞에 나타났다가 뒤로 멀어진다. 날은 흐리고 간간이 비를 흩뿌린다. 1시 45분, 서귀포시에 진입, 이국적인 풍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조금 지나자 렌트카 두 대가 사고로 갓길에 비켜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차가 찌그러진 채. 다행히 사람은 다치지 않은 것 같은데 차가 일그러진 것이 보인다.
즐거워야 할 여행, 기분이 많이 상했겠다. 주유소 앞에 잠시 주차, 제주도 지도를 펼쳐놓고 가 볼만한 곳을 찾아본다. 렌트카 빌릴 때 네비게이션을 사용하려면 사용료가 5천원이라 해서 안했다. 네비게이션을 사용해 본 적도 없는데다 지도를 보고 여행하는 편이라 그게 더 편했다. 산방산이 보인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꺾어 송악산으로 간다. 길을 찾다가 다시 원래의 위치로 왔다.
이렇게 지도를 보면서 하는 여행은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기 십상이지만 쉽게 찾아갈 땐 즐겁다. 바다를 끼고 코스모스길이 이어진다. 99개의 작은 봉우리가 모여 일명 99봉이라고 하는 산방산을 지난다. 산방산을 지나 송악산 가는 길은 코스모스 만발한 해안도로가 이어진다. 멋진 풍경이다.
제주의 특징이 하나씩 보인다. 우선 제주도는 평지로 되어 있어 한눈에 사방이 조망된다. 조금만 높은데 올라가면 멀리 멀리까지 조망된다. 제주도엔 정말 돌이 많다는 것을 직접 보며 실감한다. 제주에 논이 없다. 그 이유는 물이 다 빠져버리는 화산암이기 때문이란다.
낮은 집 울타리도 돌담, 무덤까지도 돌로 담을 쳐놓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무덤은 또 모두 밭 한가운데 있다. 무엇이든 돌로 울을 치고 있다. 바람 잦은 제주도, 태풍이 와도 돌로만 쌓아 놓은 담은 허술해 보여도 무너지지 않는다고 한다. 옛 선조들의 지혜가 보인다.
송악산, 바람의 언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