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종교전쟁, 누가 부추기나

[진단] 3대 종교인이 바라본 '종교 편향'... 대안은?

등록 2008.09.03 14:17수정 2008.09.03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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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평일 근무시간에 서울지역 교장들을 불러 목사들과 함께 기도회를 열어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월 30일 서울시교육감 선거 당시 공정택 교육감.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평일 근무시간에 서울지역 교장들을 불러 목사들과 함께 기도회를 열어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은 지난 7월 30일 서울시교육감 선거 당시 공정택 교육감.유성호

공정택 서울시교육감이 평일 근무시간에 서울지역 교장들을 불러 목사들과 함께 기도회를 열었다. 공 교육감은 이 기도회의 홍보수단으로 서울시교육청 전자문서시스템을 활용했다. 이 공문은 88개 일선 학교에 송달됐다.

문제는 이 공문을 보낸 송고 시스템이 국가와 교육기관 사이에 공문을 보내기 위한 것이지 사적 용도로 쓰일 수 없는 것이라는 데 있다. 고위 공직자인 공 교육감이 근무시간에 사적인 종교 활동을 위해 공적 시스템을 활용한 셈이다. 이에 따른 비판적 문제제기가 잇따르고 있다.

이뿐 아니다. 지난 6월 24일에는 어청수 경찰청장이 조용기 목사와 함께 촬영한 '제4회 전국경찰 복음화 금식대성회' 광고 포스터가 문제가 됐다. 대한민국 경찰의 수장이 특정종교 광고포스터에 등장하는 게 과연 옳으냐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불교계는 즉각 항의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지난 3월 뉴라이트전국연합 김진홍 목사 등 250여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을 겸한 성원을 부탁한 사실이 드러나 문제가 됐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직 시절부터 "서울시를 하느님께 봉헌하겠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결국 '대한민국을 기독교국가로 만들겠다'는 의도를 다분히 내포한 발언 아니겠냐는 비판도 일었다.

논란 자초하는 고위 공직자들

이명박 정부 이후 급격하게 늘어나는 '종교편향' 사례는 불교계를 지속적으로 자극하고 있다. 심지어 한 승려는 스스로 할복해 '항거의 뜻'을 표출하기도 했다. 불교 내부에서는 이보다 더 심한 극단적 사태가 올지 모른다고 예고하고 있다. 등신불의 '소신공양'이 현실화한다면 그 이후의 책임은 정권의 몫이라는 규탄성 발언도 쏟아지고 있다.

극단의 상태로 지속되는 종교편향과 종교갈등. 일각에서는 이러다 한국사회에 '종교전쟁'이 나는 게 아니냐는 우려섞인 전망도 내놓고 있다. 이에 따라 <오마이뉴스>는 천주교·기독교·불교 한국의 3대 종교인들에게 현 사태에 대한 진단과 대안을 물었다. 


 27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주최로 '헌법파괴·종교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도대회'가 열리고 있다.
27일 오후 서울시청앞 서울광장에서 한국불교종단협의회 주최로 '헌법파괴·종교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도대회'가 열리고 있다.권우성

[혜일 스님] "고위 공직자가 앞장서서 다종교 균형 추 깨나"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인 혜일 스님은 "종교 편향을 부른 고위공직자들에 대해 인격적으로 평가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고 개탄했다.


혜일 스님은 "가르침의 위치에 있는 분들이 상식 이하의 생각을 갖고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갖고 있다"며 "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범불교도대회의 배후' 운운했던데 참 상식 이하의 발언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혀를 찼다.

그는 "공정택 교육감은 왜 당선됐는지 우선 생각해야 한다"며 "과연 근무시간에 기도회를 여는 것이 교육 발전을 고민하는 것보다 급했나 반성해볼 일"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무엇보다 혜일 스님은 "우리는 나라의 국교가 정해져 있지 않은 다종교 국가"라며 "모든 종교가 상호간 존중돼야 국민이 평화롭게 각자 할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종교활동만 앞세운다면 다종교의 균형추가 깨지기 마련"이라며 "국가발전의 방해가 되는 활동을 고위 공직자들이 앞장서서 하고 있다, 안타까움을 넘어 그리도 상식이 없을까 걱정된다"고 탄식했다.

나의 행위가 타인에게 어떤 상처를 줄까 생각하는 '이심전심'이 되면 상대방을 자극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인데, 무조건 '나만 옳다'는 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도 어긋난다는 것이다.

혜일 스님은 "더 이상 그 분들의 인격이 욕보이는 짓을 그만 하셨으면 좋겠다"며 "범불교도대회 봉행위원회는 앞으로 종교차별대책위원회로 전환하고 권역별로 종교차별 규탄대회를 열 계획"이라고 전했다.

 3일 저녁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회와 광우병 기독교대책회의 주최로 열린 '국민존중 선언과 평화집회 보장을 위한 기독교 시국기도회'에 참석한 목사와 신도 및 일반시민들이 십자가를 앞세우고 거리행진을 시작하고 있다.
3일 저녁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회와 광우병 기독교대책회의 주최로 열린 '국민존중 선언과 평화집회 보장을 위한 기독교 시국기도회'에 참석한 목사와 신도 및 일반시민들이 십자가를 앞세우고 거리행진을 시작하고 있다.권우성

[김진호 목사] "국가가 개신교 거부감 조장하다니... 죽을 맛"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인 김진호 목사는 "개인시간에 비공식적으로 종교 활동을 하면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면서 "국가 고위공직자들이 근무시간 등을 이용해 특정종교 예식을 치르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김 목사는 "요즘처럼 종교 갈등 소지가 첨예한 상황에서 공직자가 이런 갈등을 유발한다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처사"라며 "일부러 종교 갈등을 조장하겠다는 의지가 아니라면 가능한 일이겠냐"고 답답해 했다.

그는 "누구보다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할 분들이 대놓고 자기 종교를 과시하는 행위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라며 "설령 자신들의 종교행위가 정당하더라도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변명의 여지 없이 비판받게 돼 있다"고 토로했다.

김 목사는 "고위공직자들의 이런 행동은 개신교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더욱 자극하는 면이 있다"며 "국가가 나서서 개신교에 대한 거부감을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또한 김 목사는 "우익계열 목사들은 여러 차례 명시한대로 대한민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들려는 의도를 갖고 있을 것"이라며 "건국 직후 이승만 정권에서도 기독교에 대한 국가의 비호가 심했는데 이번에도 같은 현상이 벌어지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교회 주류집단이 현재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와 적극적으로 대화해야 한다"며 "국가권력과 친밀하다는 우월성을 내세워 시민사회와 대화하지 않으면 스스로 파국을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이어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도 특정종교가 권력을 독점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라며 "국가 미래를 위해서도 고위 공무원들의 돌출행동은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나 우익적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명박 정부에서 기독교가 영향력을 갖고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하겠지만, 시민사회와 대결하고 있는 이 현상을 간과하게 되면 결국 한국 기독교는 '고립된 성'을 자초하는 결과를 불러올 게 뻔하다고 분석했다.

김 목사는 "당장은 이명박 정부의 품에서 안위를 누리겠지만 정권이 끝나면 시민사회의 외면 속에서 다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알고 행동해야 할 것"이라고 일갈했다. 두더지처럼 땅 속에서 잠행만 하면 땅 위의 현실을 놓치게 되는 법이라는 비유도 아끼지 않았다.

 신부와 수녀, 일반 시민들이 2일 저녁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주최로 열린 세번째 비상 시국미사에 참석하여 미국산 쇠고기 장관 고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촛불집회에 강경 대응하는 공권력을 규탄하는 미사를 드리고 있다.
신부와 수녀, 일반 시민들이 2일 저녁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주최로 열린 세번째 비상 시국미사에 참석하여 미국산 쇠고기 장관 고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촛불집회에 강경 대응하는 공권력을 규탄하는 미사를 드리고 있다. 유성호

[호인수 신부] "이명박 대통령은 기독교 근본주의자...뭘 기대하나"

천주교 우리신학연구소 이사장인 호인수 신부는 "과연 이명박 대통령다운 행동 아니냐"고 질타했다. 호 신부는 "이명박 정부 고위 공직자들이 행하는 것들을 옳게 보고 잘한다고 박수칠 사람이 대한민국에 몇이나 되겠느냐"며 "기대할 것도 없는 사람들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는 게 아니냐"고 반어법으로 말했다.

호인수 신부는 "이명박 대통령은 기독교 근본주의자"라며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소통이 되겠느냐"고 답답증을 털어놓았다.

"불교가 정권에 비판적 문제제기를 하고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호 신부는 "한국에서 한 종교가 우월해지면 종교전쟁 가능성도 있는 것 아니냐, 여러 세력이 비슷비슷하게 힘의 균형을 맞추고 있는데 이게 한쪽으로 기운다면…"이라고 말을 줄였다.

그는 "대통령이나 고위공직자들은 자신이 종교분쟁을 부추긴다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며 "본인들은 '옳은 일을 밀고 나가는 것 뿐이고 양심상 옳은 일이라 철회할 뜻도 없으며 하느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훌륭한 일을 하고 있는 건데' 할지 모르겠으나, 그것이 기독교인으로서 잘된 삶인지 반추해보는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고 제언했다.

호 신부는 좀 다른 각도에서 비판적 문제제기도 했다. 불교도가 20만명이나 모였는데 왜 군중은 시큰둥하겠냐는 것이다. 불교가 평소에 자기 종교에만 집착하지 않고 남의 종교 문제나 한국사회의 문제적 상황에 대해 진단해 왔다면 아마도 팔도강산에서 '아멘과 할렐루야' 소리가 들끓었을 게라고 일갈했다.

호 신부는 "상식적인 일반 시민들이라면 당연히 불자들의 외침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불자는 아니지만 찬성한다'고 크게 외칠 것"이라며 "그같은 상황이 되면 불교도 더 큰 힘을 갖게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종교차별 #혜일 스님 #김진호 목사 #호인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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