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 부친의 친일행적도 검증해야 하나

[주장] 친일 청산해야 하지만, 정치적 이용엔 동의 못해

등록 2008.09.04 08:35수정 2008.09.04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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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2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부친의 일제시대 '순사' 전력과 관련한 안민석 의원의 질의를 받고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장관이 2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부친의 일제시대 '순사' 전력과 관련한 안민석 의원의 질의를 받고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 남소연


"민족정기를 가르치는 교육부 수장의 부친이 일제 순사였다는 것을 국민들이 정서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나?"

2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가 실시한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장관 인사검증에서 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예민한 문제를 건드렸다. 여기에 안 장관이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님이) 일제시대 때 어려운 생활에서 하나의 직업으로 선택한 것"이라고 답변함으로써 논란을 키운 꼴이 되어 버렸다. 

안 장관의 발언이 부모에 대한 존경심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잘못된 역사인식에서 나온 것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하지만 냉철하게 접근해 보자. 장관의 인사검증 자리에서 부친의 친일 부역 문제를 검증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것일까. 장관의 자질과 그것이 직접적인 관계가 있을까.

4년 전 신기남도 부친 친일 의혹으로 당의장 사퇴... 뒤바뀐 여야

 지난 2004년 8월 19일 신기남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은 "선친을 대신해 선친의 행적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당 의장직 사퇴를 공식 발표하고 전북 익산으로 내려갔다. 신기남 전 의장이 선친 신상묵씨의 묘소에 참배한뒤 묘비 옆에 씁쓸한 표정으로 서 있다.

지난 2004년 8월 19일 신기남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은 "선친을 대신해 선친의 행적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당 의장직 사퇴를 공식 발표하고 전북 익산으로 내려갔다. 신기남 전 의장이 선친 신상묵씨의 묘소에 참배한뒤 묘비 옆에 씁쓸한 표정으로 서 있다. ⓒ 이종호

불과 4년 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떠올리면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현 민주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이 집권하던 2004년 8월, 월간 <신동아>는 당시 당의장이었던 신기남 전 의원의 부친이 일본군 오장(하사급)이었다고 보도했다.

이를 시작으로 보수 언론들이 신 전 의원 부친의 친일 행적 의혹을 제기하는 등 연일 주요 기사로 다루었고, 야당이었던 한나라당도 대대적인 공세를 펼쳤다. '부친의 과거 행적을 자식이 책임지는 것이 맞느냐'를 두고 의견이 맞섰지만 여론도 신 전 의원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여당 내부에서도 "신 의장이 스스로 사퇴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당시 과거사 정리와 친일문제 청산을 위해 입법을 추진하던 여당으로선 당 의장의 부친 문제가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천정배 의원은 신 전 의원이 사퇴할 이유가 없다며 이를 '연좌제'라고 반박했지만 결국 신 전 의원은 석 달 만에  당의장에서 물러났다. 과거사 정리를 위해 앞장섰던 사람이 부친의 친일 의혹으로 사퇴하는 역설이 벌어진 것이다.


이 두 사건은 여당과 야당이 뒤바뀐 상황이고 과정과 결과가 다르지만, 닮은꼴이라 할 수 있다.   

"모든 국민은 친족 행위로 불이익 받지 아니한다"

연좌제란 범죄인과 특정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연대책임을 지게 하는 제도이다. 우리 역사에서 연좌제는 뿌리가 깊다. 조선시대 후기만 해도 반역죄인은 3족(친족·외족·처족)을 멸했다. 그러던 것이 갑오개혁 때 처음으로 연좌제가 폐지되었다.

하지만 일제 지배와  남북 분단을 겪으면서 연좌제는 형사처벌이 아닌 사회생활의 제약으로 다가왔다. 특히 군사정부는 반공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면서 사회주의·좌익활동 경력이 있는 집안을 감시하고 가족 구성원에게 유·무형의 불이익을 주었다.

가족 중에 국가보안법 위반 등 반정부 활동으로 처벌받은 사람이 있으면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공무원 임용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속출했다. 연좌제는 형식상 폐지되었을 뿐 사실상 존재했던 것이다. 연좌제 금지가 헌법에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80년이다. 그 후 87년 개정된 헌법 13조 3항에 규정되어 현재까지 오고 있다.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우리 헌법도 근대법의 이념인 '자기책임의 원리'를 받아들인 것이다. 즉 자기행위와 무관한 제재를 받지 아니할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헌법상의 연좌제는 형사책임뿐 아니라 기타 불이익한 처우를 받는 것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학자들도 "친족의 행위라 하더라도 그것이 형사법상의 불이익은 물론이고, 행정법상 또는 정치상 불이익처분의 원인이 될 수 없게 되었다"(허영, <한국헌법론>)고 해석한다.

그렇다면 연좌제는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없어졌어야 맞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국민의 정서'에 기대어 부모의 과거 경력 폭로가 이어지고 이 때문에 후손이 고초를 겪는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신기남 전 의원, 안병만 장관의 경우가 그렇다. 또한, 노무현 전 대통령 장인의 좌익 활동 논란이나 김희선 전 의원 부친의 친일 논란도 비슷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친일 청산과 친일 자손 단죄는 달라

 지난 2006년 8월 18일에는 친일파재산을 되찾기 위한 범정부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현판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자료사진)

지난 2006년 8월 18일에는 친일파재산을 되찾기 위한 범정부기구인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가 현판식을 갖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남소연


물론, 친일 부역과 좌익 활동을 동일 선상에서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또한 친일행위라 할지라도 자발적이고 적극적이었는지, 아니면 불가피한 선택이었는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여지도 있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모의 행적이었다는 점이다.

부모의 과거 행적으로 자손들이 현재까지 신분상 혹은 재산상 이득을 본다면 용납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 최근 제정된 친일재산 환수법이 후손의 부당한 재산 취득을 회수할 근거를 만들어 놓았다.

단지 조상의 과거 전력만을 문제삼아 후손을 단죄하려 한다면 헌법이 보장하는 '자기행위와 무관한 일로 제재를 받지 않을 권리'를 침해하게 된다. 친족의 행위가 좌익 활동이건, 친일 활동이건, 아니면 살인과 같은 파렴치한 범죄이건 간에 자기책임의 원리는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

나는 안병만 장관을 결코 두둔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친일청산은 늦었지만 반드시 철저하게 진행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그렇지만 정치권에서 상대편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부모의 친일 전력을 이용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인사검증에서 안 장관 부친의 친일전력을 문제 삼은 민주당은 좀 더 신중했어야 한다. 자신이 당할 때는 "연좌제라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자신이 공격할 때는 "국민정서상 정당하다"고 변호해서는 곤란하다.

친일 청산과 친일파 자손 단죄는 분명히 다르다.
#연좌제 #안병만 #안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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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법원공무원(각종 강의, 출간, 기고) 책<생활법률상식사전> <판결 vs 판결> 등/ 강의(인권위, 도서관, 구청, 도청, 대학에서 생활법률 정보인권 강의) / 방송 (KBS 라디오 경제로통일로 고정출연 등) /2009년, 2011년 올해의 뉴스게릴라. jundorap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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