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8일 인천공항을 통해 34년만에 대한민국 땅을 밟은 국제태권도연맹 최중화 총재(가운데)
윤형권
태권도 창시자 최홍희 장군이 만든 국제태권도연맹(ITF) 최중화(54) 총재가 8일 인천공항을 통해 한국을 방문했다. 그의 한국방문은 전격적으로 이루어졌으며 한국을 떠난 지 34년 만의 일이다.
최중화 총재는 1982년 북한에 태권도를 보급했으며 전두환 암살미수 사건에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그동안 한국방문이 어려웠다.
최 총재는 1974년 캐나다로 이민을 간 후 부친인 최홍희 장군을 따라 전 세계를 돌며 태권도를 보급하는데 열중했다. 그는 태권도 창시자인 최홍희 장군의 인생만큼이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다. 그는 8일 인천공항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뭐라 표현할 수 있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남에게 권하고 싶지 않다"고 말해 그의 삶이 얼마나 파란만장했는지를 가늠케 했다.
태권도는 최홍희 장군이 1955년 4월 11일 대전 3군관구 사령관으로 근무할 때 명칭제정위원회를 열어 '발로 차고 뛰며 주먹으로 때리는 도'라는 뜻으로 창시했다. 최 장군이 태권도를 만들게 된 동기에 대해 최중화 총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친께서는 1944년 일본중앙대학을 다닐 때 일제에 의해 학병으로 강제 징집당했다. 선친이 학병으로 평양에서 군사훈련을 받던 중 당시 조선인 학병들과 함께 '실탄을 지급받으면 일본군을 쏘아 죽이겠다'는 '평양학병의거'를 주도했다가 체포돼 사형언도를 받고 군형무소에 수감되었는데 이때 태권도를 만들 결심을 했다."
그는 또한 "선친께서는 한민족이 과거에는 무예를 익혀 기상이 늠름해서 900여 차례의 전쟁에도 꿋꿋하게 살아났는데, 조선말에 와서 유약해지는 바람에 일본인들에게 나라를 빼앗겼다"며 "한민족을 강하게 하는 민족의 무도를 만들게 되었는데 이것이 훗날(1955년) 태권도라는 무도가 되었다"고 말한다.
태권도의 탄생은 이와 같다. 태권도는 현존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브랜드다. 하지만 태권도를 만든 순간부터 최홍희 장군과 그의 가족들, 특히 오늘 34년 만에 한국 땅을 밟은 최중화 총재의 일생은 태권도와 관련해 희생을 당해야 하는 기구한 운명의 굴레를 쓰게 됐다.
그러나 최중화 총재는 '태권도는 나의 운명'이라며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자세다. 오히려 그는 '태권도는 대한민국의 자산이자 한민족의 자랑'이라고 말하며 남은 일평생을 태권도 발전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또한, "또 하나의 태권도인 세계태권도연맹(WTF)의 발전을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밝혀 과거 두 단체가 경쟁과 반목을 하던 때와는 달리 한국이 만든 두 개의 태권도가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새로운 발전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태권도연맹 최중화 총재의 이번 방문은 여러 가지로 큰 의미를 갖는다. 태권도는 창시자 최홍희 장군이 2002년 서거한 후 캐나다에 본부를 둔 국제태권도연맹, 북한을 중심으로 한 장웅 국제태권도연맹, 베트남인인 트란콴을 중심으로 한 태권도연맹 등 3개 분파가 각축을 벌이고 있다. 최중화 총재가 서울 방문을 성공적으로 마칠 경우 최 총재를 중심으로 한 국제태권도연맹이 확고한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