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몰려든 사람들에 둘러 싸여 사인 공세를 받고 있는 연예인들을 가리켰지만 아들 은 웃으며 도리질을 할 뿐이었다. 한 반에 6명밖에 안 되는 시골 마을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방 안 퉁소' 같은 성격으로 자라지 않을까 조바심이 있던 차라 이런 과제를 내보았다. 역시 아들의 반응은 시큰둥하기만 했다. 아직 연예인에 열광할 나이가 아니긴 하지만 평소 감정 표현이 서투르고 쑥스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 여실히 드러난 셈이었다.
"저도 어려운 환경에서 어렵게 운동을 했기 때문에 고향의 축구 꿈나무들이 꿈을 펼치지 못하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부여군 임천면 출신인 정두홍 무술 감독은 운동선수의 꿈을 꾸었지만 가정 형편이 어려워 운동을 포기할 뻔 했다고 한다. 그러나 주위의 도움으로 운동을 계속할 수 있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축구 꿈나무들을 선뜻 돕겠다고 나선 것이라고 했다. 앞으로 정 감독이 소속된 일레븐 연예인 축구단이 부여를 자주 방문해 친선 경기를 하면서 축구에 대한 관심도 높이고 기금조성도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저기 구드래 백마강변을 따라 완벽하게 조성해놓은 잔디 구장을 좀 보십시오. 부여가 전국 축구 경기의 메카로 떠오르는데 막상 내놓을 만한 축구팀이 없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현실이죠. 이번 유소년 축구 클럽 창단을 계기로 부여에 축구 붐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또 우리 유소년 축구 선수들을 제 2의 박지성 같은 세계적 선수로 키워내겠다는 각오로 뛰겠습니다."
부여 유소년 연맹 임권희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일레븐 연예인 축구단과 정두홍 감독이 마련해준 유니폼과 축구화를 갖춰 입은 부여 유소년 축구 선수들의 눈빛이 반짝반짝 빛났다. 모두들 박지성을 능가하는 축구 선수가 되겠다는 투지가 온 몸에서 배어나오는 것 같았다.
내가 사진을 찍고 취재원들을 인터뷰하는 것을 아들은 멀찍이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었다.
"엄마가 하는 일, 즉 기자란 이런 일을 하는 거야. 오늘 사진 찍은 것과 사람들을 만난 것을 잘 정리해서 글로 써서 소식을 전해주는 일이 기자의 역할이야. 컴퓨터는 바로 엄마와 같은 일을 하는데 많이 써야지, 너처럼 게임을 하는데 주로 쓰면 될까? 안될까?"
돌아오는 길에 아들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너도 혹시 축구에 관심 있니? 축구하는 것 좋아하면 너도 유소년 축구 클럽에 넣어줄게."
"아니, 싫어."
"왜? 너 축구한다고 학교에 축구공 가지고 다니지 않니? 박지성 선수 같은 축구 선수가 되고 싶지 않니?"
"그렇긴 하지만 축구 선수는 되고 싶지 않아. 내 꿈은 따로 있어요."
"뭔데? 혹시 프로 게이머는 아니겠지?"
"........"
아들은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 웃음의 의미를 집요하게 캐묻고 싶었다. 그러나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아들의 컴퓨터 게임에 대한 과도한 집착을 미리 막기 위해 취재에 동행시켰지만, 11살 아들에게 어떤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아들에게 그날 만난 연예인, 운동선수, 공무원 등의 사람들을 통해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다양한 삶의 방법들이 있고 그에 따라서 여러 가지 꿈을 꿀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는 것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충남 부여의 시골 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조근조근하게 낮은 목소리로 재미있는 시골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