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석 군대 보내기 청원 운동을 하고 있는 다음 아고라의 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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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은 명료해야 합니다. 한국사회에서 민감한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가수 성시경은 <무릎팍 도사>에서 유승준 이야기를 했습니다. 깔끔한 이야기였습니다. 귀국해서 팬들에게 외면받으면 되지 입국금지까지 시키는 것은 유난을 떠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럼에도 그 발언으로 성시경은 모진 비난 속에 한동안을 지내야 했습니다. 이처럼 군대와 관련된 이야기는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의석씨가 쓴
<태환아, 너도 군대가>라는 글은 명료하지도 않았습니다. 전 그런 모호함이 더욱 큰 비난을 만든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글 제목처럼 박태환씨에게 군대를 가라고 주장하시는 겁니까? "그가 받은 병역특례 혜택이 형평성에 맞지 않다, 오히려 운동선수가 더 잘 싸운다, 전장에서 승리한 이에게 주는 하사품 같다, 이승엽을 '병역브로커'라 칭하는 상황이다" 등. 글의 앞부분은 이런 내용입니다. 이런 내용으로 완결되었다면 시기도 적절하고 논리적 일관성도 있었을 것입니다.
국제 경기에서 메달권 선수들에게 주어지는 병역특례에 대한 비판은 예전부터 있었습니다. 병무청장도 최근 "올림픽 메달리스트 등에게 주어지는 병역면제 혜택을 폐지하는 것이 옳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태환아, 너도 군대가>가 그런 내용이었다면 제목이 선정적이어서 그렇지, 사실 별 것 아닐 수 있었습니다. 박태환과 강의석이라는 이름 때문에 조금 회자됐겠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의석씨가 주장하는 것은 그런 게 아니였지요? 저 역시 앞선 주장이었다면 동의하지도 관심을 갖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누더기 병역법에 대한 비판으로 메달리스트들에 대한 병역특례를 꺼내는 것이 좋은 전략 일수는 있어도, 평화적 관점을 가진 이들은 다른 이에게 "군대 가라"고 제안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석씨도 글에서 전쟁과 군대의 본질을 지적하셨습니다.
사실 의석씨의 핵심은 박태환씨에게 군대를 거부하고 감옥에 함께 갈 것과 국군의 날 반대 행사에 함께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글 앞부분에서 형평성을 중심으로 이야기했던 것과 상반됩니다. "군대를 없애기 위해 감옥에 가자"는 논리와 "누구나 이유 불문하고 군대에 가야 된다"는 논리는 서로 극단에 있기 때문입니다. 의석씨의 글은 그 극단의 논리가 같이 있습니다. 민감한 주제일수록 명확하고 차분한 글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자신이 진심으로 누군가를 설득하고 싶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다른 이에게 병역거부를 제안한다는 것전 박태환씨에게 병역거부를 제안하는 것은 좀 '난센스'라고 생각됩니다. 한국 현실에서 병역거부는 감옥행을 의미합니다. 병역거부자들은 출소 이후에도 평생 전과자의 신분으로 살아야 하고, 그 가족들이 겪을 아픔은 참으로 처절합니다. 그랬기에 병역거부운동을 하는 이들은 감옥행만은 막아야 한다고, 현역복무보다 길고 어려운 대체복무제라도 기꺼이 수행하겠다고 요구해 왔습니다.
병역거부자들의 인권을 위해 활동하는 이들은 가끔 병역거부를 고민하는 이들의 문의를 받습니다. 그 분들은 오랜 시간 진지하게 스스로의 양심을 돌아보고, 병역거부를 택했을 때의 고통을 감당할 수 있을지 고민한 끝에 조심스레 문을 두드립니다. 일단 말리고 봅니다. 말리다 안 되면 차분하게 어떤 길이 앞에 있는가 이야기해 줍니다. 그래도 선택한다면 그 선택에 대한 책임과 고통은 온전히 그 개인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열하시는 그들의 부모님을 뵐 때마다 늘 가슴이 찢어집니다.
의석씨는 박태환씨에게" 군대 대신 감옥에 갈 100명을 모으고 있으며 그 중 한 명이 되라"고 했습니다. 전 의석씨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그런 제안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누군가에게 병역거부를 제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제안은 한국사회에서는 아무리 짧아도 1년 6개월 이상의 감옥행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결코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또한 그러한 불이익을 견디면서도 감옥을 택할 만큼 지켜야 할 무언가가 상대방에게 있을 때에만 가능한 선택입니다.
그러나 전 아무리 기사를 검색해 봐도 박태환씨가 병역거부를 선택할 만한 의사를 가지고 있다는 근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의석씨도 글에서도 그런 고통을 감수하고서도 박태환씨가 병역거부를 택해야 할 이유를 제시하지는 않았습니다.
가벼운 제안, 그리고 이어지는 의석 씨의 이후 활동에 대한 설명. 혹시 박태환씨가 유명해서, 그 유명세로 자신의 이야기를 알리고 싶은 마음은 아니였을까 의심해 보았습니다. 아니겠지, 그래도 어떤 이의 실명을 거론하며 자신의 활동에 동참을 호소하는 글인데, 그것도 감옥행을 동참하자는 내용인데.
원칙이 무너지면 사람들은 등을 돌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