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빔 3만원, 차례상 6만원...서민에겐 딱!"

값싸기로 소문난 중랑구 동원시장 추석맞이 풍경

등록 2008.09.12 10:39수정 2008.09.12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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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동원시장 올 가을에는 한가위 보름달처럼 꽉 찬 부~ㅇ~자 되십시오

동원시장 올 가을에는 한가위 보름달처럼 꽉 찬 부~ㅇ~자 되십시오 ⓒ 이종찬


"보름달처럼 예쁘고 행복한 추석되세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 같은 풍성한 나날들 보내소서." 
"올 가을에는 한가위 보름달처럼 꽉 찬 부~ㅇ~자 되십시오."
"송편 하나에 재물을, 송편 둘에 건강을, 송편 셋에 지혜를."

추석이 코앞에 다가오면서 한가위 잘 보내라는 문자메시지가 잇따라 날아들고 있다. 내용도 지난해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 이명박 정부 들어 먹고 살기가 그 어느 때보다 어려워지다 보니 문자메시지 속에서도 돈 내음이 풀풀 난다. '보름달' '풍성한' '부~ㅇ~자' '재물' 등이 그것들이다.

그중 문자메시지를 보내지 않고 직접 전화를 건 후배의 목소리가 가슴을 아프게 툭 친다. "선배님 한가위 잘 보내십시오. 저는 이번 추석에는 고향에 내려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왜?"라고 묻자 "연휴도 짧고, 장가 언제 갈 거냐라는 소리도 듣기 싫고 해서요. 그리고 그 돈(여비)이면 한 달 생활비 아닙니까"라고 답한다.

"그럼 추석연휴 동안 뭐 할 건데?"라고 묻자 "오랜만에 밀린 잠이나 실컷 자야죠. 라면이나 끓여먹으면서. 올라오실 때 송편이라도 좀 싸오십시오" 한다. 마흔을 훌쩍 넘기고도 노총각으로 살고 있는 후배는 요즈음 오토바이로 퀵서비스를 하고 있는 중이다. 10년 동안 꾸렸던 식당이 올 초부터 적자가 계속 쌓이면서 급기야 문을 닫아야 했기 때문이다. 

a 동원시장 '돈 5만 원이면 때 빼고 광낸다'는 값 싸기로 이름 높은 재래시장인 동원시장

동원시장 '돈 5만 원이면 때 빼고 광낸다'는 값 싸기로 이름 높은 재래시장인 동원시장 ⓒ 이종찬


a 동원시장 중랑구 최대 시장 동원시장은 추석을 맞아 오히려 손님들이 평소보다 더 줄어든 느낌이다

동원시장 중랑구 최대 시장 동원시장은 추석을 맞아 오히려 손님들이 평소보다 더 줄어든 느낌이다 ⓒ 이종찬


   
추석 무서운 주부, 송편 대신 라면 끓이는 나홀로족

누우런 보름달처럼 환하게 빛나야 할 추석이 그믐밤처럼 캄캄한 추석으로 바뀌고 있다.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잘 차려진 상을 마주한 채 가족과 친인척들이 빙 둘러앉아 오순도순 살가운 이야기를 나누던 풍경은 흘러간 옛날이 되고 말았다. 밤늦도록 송편을 빚는 것이 아니라 밤늦도록 라면을 끓이는 '나홀로족'도 늘어나고 있다.

고유가, 고물가 시대를 살아가는 주부들은 추석이 무서울 정도다. 한국물가정보가 뽑은 올 추석 4인 가족 기준 차례상 비용은 15만 원(6% 인상), 서울시 농수산물공사 조사에서는 16만6100원(9.4% 인상)으로 나왔다. 하나로클럽 조사에서도 지난해에 비해 8.9%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100원 땜에 시장상인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알뜰 주부들이 한숨을 푹푹 내쉬는 까닭도 이명박 정부 들어 제수용품을 비롯한 생필품값이 턱없이 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짧은 추석연휴와 빠듯하게 나오는 추석 상여금도 문제다. 이처럼 여러 가지 사정이 '엎친 데 덮친 꼴'이 되다 보니 귀향을 포기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G마켓이 네티즌 2118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 53%가 '추석 상차림'(28%)과 '추석 선물값'(25%) 등이 가장 부담이라고 답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100인 이상 기업 246곳을 조사한 결과 추석 상여금 지급 예정액은 88만 원으로 지난해 94만9천 원보다 7.3% 줄었다. 여기에 추석 상여금을 주는 기업은 65.9%로 작년보다 2.2%포인트 줄었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1142명에게 추석 귀성계획을 설문조사한 결과 9.6%(지난해 3.3%)가 역귀성을 할 것이라고 답했다. 역귀성 이유에 대해서는 '짧은 추석연휴 때문에'가 54.5%로 가장 많았고, '교통 혼잡 때문에'가 41.8%, '교통비, 기름값 등 경비를 절감하기 위해서'가 22.7%였다.

a 동원시장 500원에서부터 비싸봐야 1만 원 안팎

동원시장 500원에서부터 비싸봐야 1만 원 안팎 ⓒ 이종찬


a 동원시장 그래도 조상님 차례상에 올릴 과일인데, 수입산을 어떻게 써요

동원시장 그래도 조상님 차례상에 올릴 과일인데, 수입산을 어떻게 써요 ⓒ 이종찬


재래시장에서 돈 5만 원이면 때 빼고 광낸다

설렘과 기쁨으로 그득해야 할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 우리 민족 최대의 악재로 변하고 있다. 추석을 맞이하는 재래시장 상인들도 울상이다. 제수용품을 비롯한 생필품값을 아무리 값싸게 내놓아도 손님들이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는 것은 물론 손님들 대부분이 백화점으로 발길을 돌리기 때문이다.

추석연휴를 사흘 앞둔 10일(수) 저녁 7시에 찾은 동원시장(중랑구 면목동). '돈 5만 원이면 때 빼고 광낸다'며 값싸기로 이름 높은 재래시장인 동원시장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루 5천 명 이상이 찾는다는 중랑구 최대 시장 동원시장은 추석을 맞아 오히려 손님들이 평소보다 더 줄어든 느낌이다.       

동원시장 들머리에는 추석을 맞아 제수용품 등을 최대 30%까지 값싸게 살 수 있다는 '한가위 합동 세일행사' 현수막이 나부끼고 있다. 현수막에 적힌 글씨를 자세히 살펴보면 8일(월)부터 12일(금)까지 민속공연을 비롯한 고객노래자랑, 송편빚기대회, 상품권추첨행사, 무료수선코너 및 무료 배송서비스를 한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현수막에 적힌 내용을 꼼꼼하게 읽어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저 무심코 눈길 한번 툭 던졌다가 그냥 지나칠 뿐이다. 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추석을 맞아 채소와 과일, 생선, 육류 등을 반값에 판다는 상인들의 쉰 목소리가 귀를 따갑게 한다. 500원에서부터 비싸봐야 1만 원 안팎이다.

a 동원시장 "추석빔을 저희 집에서 하면 3만원만 하면 떡을 친다"

동원시장 "추석빔을 저희 집에서 하면 3만원만 하면 떡을 친다" ⓒ 이종찬


a 동원시장 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추석을 맞아 채소와 과일, 생선, 육류 등을 반값에 판다는 상인들의 쉰 목소리가 귀를 따갑게 한다

동원시장 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추석을 맞아 채소와 과일, 생선, 육류 등을 반값에 판다는 상인들의 쉰 목소리가 귀를 따갑게 한다 ⓒ 이종찬


시장에서 파는 물건은 뭔가 결함이 있다?

"이러다가 추석을 거꾸로 쇠게 생겼어요. 손님들이 과일을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도 좀처럼 사지 않아요. 더 싼 곳이 있나 살펴보는 거죠. 요즈음 살기가 정말 어렵기는 어려운가 봐요. 어떤 손님은 아예 값 싼 수입산 과일을 사기도 해요. 그래도 조상님 차례상에 올릴 과일인데, 수입산을 어떻게 써요."

동원시장에서 과일 행상을 하고 있는 송아무개(57·남)씨의 말이다. 내가 이름을 묻자 송씨는 "시장에서는 이름 대신 김씨, 이씨, 박씨 등으로 통해요. 그게 오히려 편하기도 하구요. 아, 객지 벗은 십년이라는 말도 있잖아요"라고 말한다. 송씨는 "주부들은 차례상 비용이 많이 든다고 하지만 여기서 차례상 준비를 하면 5~6만 원 정도"라고 덧붙인다.

이 시장에서 옷가게를 하고 있는 김아무개(35·여)씨는 "남자팬티 5장을 5천 원에 내놓아도 잘 팔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박씨는 "추석빔을 저희 집에서 하면 3만원만 하면 떡을 친다. 기왕 오신 김에 한 벌 사 가시죠"라며 한쪽 눈을 찡긋한다. 실제 가격을 보니 양복 정장 한 벌에 2만원, 와이셔츠 5천원, 양말 10켤레 2천원, 속옷 2천원, 모두 합쳐 2만9천원이다. 

신발가게를 하고 있는 이아무개(43·남)씨는 "한 켤레 4900원 받던 신발을 2켤레 5천원에 팔아도 사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고 말한다. 이씨는 "요즈음에는 다다익선이라는 생각으로 신발을 팔고 있다. 하지만 손님들은 시장에서 파는 신발은 뭔가 결함이 있는 것처럼 콩깍지 낀 눈으로 바라본다. 사실 백화점 신발과 같은 건데"라며 한숨을 포옥 내쉰다.   

생선가게를 하고 있는 김아무개(65·여)씨는 "우리 가게에서 파는 생선이 싼 것은 산지에서 경매를 통해 곧바로 가져오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김씨는 "특히 제수상에 오를 생선은 크고 빛깔까지 좋은 싱싱한 생선만 갖다놓는다. 조상 앞에 올릴 음식을 아무 거나 팔 수 있겠느냐?"라고 오히려 반문한다.

a 동원시장 한 켤레 4천9백 원 받던 신발을 2켤레 5천 원에 팔아도 사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동원시장 한 켤레 4천9백 원 받던 신발을 2켤레 5천 원에 팔아도 사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 이종찬


a 동원시장 "손님들이 채소를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도 좀처럼 사지 않아요"

동원시장 "손님들이 채소를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도 좀처럼 사지 않아요" ⓒ 이종찬


동원시장에선 차례상 비용 6만원이면 끽! 

동원시장에서 이번 추석 차례상을 차리는 데 드는 비용이 얼마인지 실제로 알아봤다. 동원시장에서 국산품을 기준으로 한 차례상 비용은 한국물가정보가 조사한 4인 가족 기준 차례상 비용 15만 원이나 서울시 농수산물공사가 내놓은 16만6천100원의 1/3 정도면 충분했다. 

시루떡 5천원, 송편 5천원, 산적 3천원, 약과 1천원, 대구 1만원, 조기 2천원, 북어포 2천 원, 수박 5천원, 배 4천원, 사과 3천원, 참외 3천원, 바나나 2천원, 포도 3천원, 대추 1천 원, 밤 1천원, 곶감 2천원, 사색나물 4천원, 한과 3천 원 등. 모두 합쳐도 6만원 안팎이다.

이 가격은 동원시장에서 지금 거래되고 있는 가격이다. 물론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눈썰미 좋은 주부라면 누구나 동원시장에서 이 가격에 제수용품을 살 수 있다. 그렇다고 맛이나 품질이 백화점에 비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포장이 번지르르한 백화점 물품보다 좀 떨어진다는 것뿐이다.    

이날 동원시장에서 만난 주부 이아무개(39)씨는 "저는 요즈음 들어 백화점에서 제수용품을 사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씨는 "백화점 제수용품은 멋들어진 포장 때문에 언뜻 보기에는 꽤 좋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막상 포장을 벗겨놓고 보면 물품이 초라하기 그지없을 때가 많았다"며 은근히 재래시장 사랑을 내비친다.

올 추석 제수용품을 사러 나왔다는 주부 김아무개(46)씨는 "손님들이 북적거리고, 상인들이 손님을 잡아끄는 재래시장에 와야 추석 분위기가 난다"며 빙긋 웃는다. 김씨는 "재래시장이 활성화되어야 가난한 서민들이 살 수 있다. 장바구니 물가가 높아졌다느니 해도 재래시장에 오면 만 원짜리 한 장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a 동원시장 주머니가 가난한 서민들을 언제나 살갑게 맞이하는 재래시장

동원시장 주머니가 가난한 서민들을 언제나 살갑게 맞이하는 재래시장 ⓒ 이종찬


주머니가 가난한 서민들을 언제나 살갑게 맞이하는 재래시장. 만 원짜리 한 장이면 4인 가족에게 며칠 동안 맛난 식탁에 앉을 수 있게 해주는 동원시장. 언제 가더라도 사람 사는 내음이 물씬 풍기는 서민들의 안식처 동원시장. 올 추석 제수용품을 아직까지 마련하지 못했다면 가까운 재래시장으로 나가보는 것은 어떨까.     
#동원시장 #한가위 #제수용품 #재래시장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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