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원장을 선출하는 10일 대의원회 회의 석상은 절차상 하자를 지적하는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았다. 제기된 문제점은 두 가지. 대의원회에서 원장을 선출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으며 대의원회 구성 및 안건채택 과정도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
대의원으로 10일 회의에 참석한 윤선현 천안문화원 이사는 "정관상 원장 선출은 엄연히 총회에서만 가능하다"며 "대의원회의 원장 선출은 회원들 참여속에 총회에서 원장을 선출토록 정관에서 보장한 문화원 회원의 권리를 박탈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한국문화원연합회의 의견도 원장 선출이 총회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했다. 문화원연합회는 지방문화원장 선임과 관련해 원장은 정관상 총회의 사항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총회에서 선임해야 한다고 밝혔다.
천안문화원 정관에도 원장은 문화원 회원으로 구성되는 총회에서 선임토록 되어 있다. 다만 총회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대의원회를 구성하고 운영할 수 있는 방법도 열어놓고 있다.
10일 대의원회를 주재한 임병현 부원장은 대의원회의 원장 선출이 정관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정관에 따라 진행하고 있으며 대의원회는 적법하게 성원됐다"며 회의 진행을 계속했다.
대의원 32명의 면면도 논란거리. 32명 대의원에는 문화원 파행사태의 직접 책임자로 지목됐다가 원장 자리에서 물러난 권연옥 전 원장도 포함됐다. 천안문화원 정관에 따르면 대의원은 회원 자격을 가진 자 중에서 총회에서 선출하도록 되어 있지만 문화원은 총회가 아닌 이사회에서 대의원을 선임해 논란의 여지를 제공했다.
원장 선출을 둘러싼 논란은 절차상 시비에 국한되지 않았다. 새 문화원장의 이력에 대해서도 논란은 빚어졌다.
신임 김태완 천안문화원장은 10일 대의원회의 후보 소견발표 자리에서 자신의 경력과 천안문화원 운영계획 등을 담은 A4 15면 분량의 홍보책자를 참석자들에게 나눠줬다. 홍보책자에는 '나의 지나온 발자취'라는 제목으로 4면에 걸쳐 경력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특히 경력을 나열한 내용에는 김 원장의 정치활동을 소개하는 부분도 있었다. '나의 지나온 발자취'에서 김태완 원장은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정책특별보좌관에 임명받아 국민화합과 이명박 후보 당선에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고 밝혔다.
천안문화원 정상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문화클린네트워크의 곽금미 집행위원장은 "대통령 후보의 정책특별보좌관을 지냈고 그의 당선에 헌신하는 등 정치활동에 관여한 사람이 천안문화원장을 맡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개인의 사단법인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곽금미 집행위원장은 김 원장의 정치활동 뿐만 아니라 종교활동도 원장으로서 결격사유라고 덧붙였다. 특정 종교 대표자와 문화원장 직위는 어울리지 않다는 지적.
김태완 원장의 입장은 달랐다. 김 원장은 "대선 때에만 후보 지지활동을 한 것일 뿐 당적은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종교와 관련해서는 "종교인이 문화원장을 맡지 말라는 법이 있느냐"며 "한국문화의 원류도 불교에 있다"고 반박했다.
김태완 원장이 소견발표에서 배포한 홍보책자를 놓고도 사실공방이 벌어졌다. 김 원장은 홍보책자의 뒤표지에 자신을 원장 후보로 추천한 22개 기관 및 단체의 이름과 대표자 성명을 실었다.
여기에는 "천안문화원 정상화를 위한 범시민대책협의회"에 참여하고 있는 천안시 여성의 전화 김춘자 회장의 이름도 있었다. 기자와 통화에서 김춘자 회장은 "추천을 해 달라는 부탁을 전화로 받았지만 수락하지 않았다"며 "본인과 여성의 전화는 김태완씨를 문화원장으로 추천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추천 단체에 올라 있는 또 다른 단체의 대표자는 "다른 사람을 통해 추천 요청은 받았지만 동의하지 않았는데, 이름이 게재되어 곤혹스럽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에 대해 김태완 원장은 "거절의사를 표명하지 않아 명단에 포함했다"며 "문제를 제기해 김춘자 회장은 정정했고 다른 단체들은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새 원장은 선출됐지만 천안문화원 정상화 운동을 전개하는 시민단체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냉담함에서 나아가 법적인 대응까지 밟고 있다.
천안시민사회단체협의회, 천안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등 천안지역 20여개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2월 '천안문화원 정상화를 위한 범시민대책협의회'(범대협)을 구성했다.
범대협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윤성희 천안예총 회장은 "새 원장을 선출한 10일 대의원회는 시정잡배도 저리가라 할만큼 이성을 상실한 자리였다"며 "문화원 파행사태가 계속되는 만큼 정상화를 위한 시민행동도 중단될 수 없다"고 말했다.
문화원 대의원회가 열린 지난 10일. 회의장 밖 천안문화원 마당에서는 문화클린네트워크 회원들이 '천안문화원 임원진 전원 사퇴'를 주장하는 현수막을 내걸고 시위를 벌였다. 문화클린네트워크 곽금미 집행위원장은 "원칙과 절차를 무시하고 선출된 새 문화원장은 인정할 수 없다"며 "범대협과 연계해 천안문화원 정상화 운동의 수위를 더욱 높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클린네트워크와 범대협, 천안문화원 사무국 직원 등 5명은 우선 지난 10일 법원에 정승훈 천안문화원 사무국장의 직무정지 가처분신청을 접수했다. 문화클린네트워크와 범대협은 신임 원장의 직무정지 가처분신청도 조만간 법원에 접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총회가 아닌 방식으로 선출된 천안문화원 원장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은 천안시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10일 천안시의회 시정질문 답변에서 박한규 천안시 부시장은 "(천안문화원) 정관상 대의원이 원장을 선출할 수 없고 시는 이 같은 절차를 통해 선출된 원장을 인정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박 부시장은 "파행이 길어진다면 방관할 수 없는 형편으로 재산환수문제와 같은 큰 영향력을 검토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