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모임
여성신문
이런 흐름을 가장 적극적으로 만들어 온 것이 바로 한국성폭력상담소가 2004년 시작한 '여성주의 자기방어팀'. 여성을 피해자화하는 기존의 반성폭력 운동에 반대하며 시작됐다.
"성폭력은 여성에게 예외적으로 갑자기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여성화된 혹은 남성화된 태도나 습관, 역할 등이 몸에 밴 채 살아가고 있는 상태에서 남녀 관계, 몸의 기능, 힘의 차이, 역할의 구획 사이에서 발생하는 일이라는 것을 발견한 거죠."
한국성폭력상담소 김민혜정(28) 활동가는 "이러한 구도가 달라져야 성폭력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동기를 밝혔다.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다르게 보고 힘을 기르는 경험을 '자기방어 훈련'이라 명명하고 스포츠를 비롯한 몸 활동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고.
'여성주의 자기방어팀'은 '청소녀를 위한 호신 가이드'라는 소책자를 만들어 배포한 것으로 시작, 고등학생 및 대학생을 대상으로 자기방어를 활용한 성교육과 몸 훈련 및 무예수련을 본격적으로 하는 '다른 몸 되기 프로젝트' 등을 진행해 오고 있다.
이외에도 한국여성민우회의 농구모임 '자신만만', 언니네의 농구모임 '어시스터'와 축구모임 '짝토 야간 축구회',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는 모임인 '핑크 라이드' 등 다양한 종목의 스포츠를 즐기는 여성주의 활동가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10월에는 여성단체 내 스포츠 소모임들이 한데 모여 여성주의 운동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스포츠에 빠진 여성들은 실제로 몸과 마음의 변화를 경험했고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즐기고 있다. 택견 유단자인 '미정'씨는 "일단 주변의 남자들이 나를 함부로 보지 않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 '하늘'씨 역시 "스스로 몸을 움직인다는 것 자체가 성취를 주고, 아드레날린이 나를 기쁘고 신나게 한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5년 전부터 송파구 여성축구단에 합류해 코치를 맡고 있는 양수안나씨는 "선수 출신인 저도 운동하기 싫어질 때가 있는데 대부분 주부인 회원들이 열심히 뛰는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자극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포츠를 즐기는 여성들에 대한 편견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평소 자전거 라이딩을 즐긴다는 여성축구 동호회 회원 하늘(29)씨는 "일단 남자들의 경우 운동하는 여자들에 대해 남자를 좀 '이해해 줄 수 있는' 성격 좋고 예민하지 않은 여자쯤으로 보면서 특색 있고 귀엽다고 생각한다"면서 "그러나 본격적으로 팀 스포츠를 하는 여자들에 대해서는 독립성을 인정하기보다는 '결혼 못할 거다'라든지 '누가 너를 데려가겠느냐'라며 걱정하는 경우가 많더라"고 털어놓았다.
여성학자들도 최근의 이러한 흐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여성들의 스포츠 활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직접 참여하고 있는 변혜정 서강대 양성평등상담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간 고민을 하고 있다.
"반성폭력운동의 흐름 속에서 섹슈얼리티와 쾌락을 중심으로 여성의 결정권에 대한 담론들이 활발했지만 실상 여성들은 성폭력의 상황에서 이론과 달리 자신의 이야기를 주장하지 못했어요. 이런 상황에서 여성성이 체화된 여성들의 몸의 변화에 주목하게 됐지요. 스포츠를 통한 여성주의 자기방어 운동은 여성들에게 폭발적인 힘과 재미를 주는 자기변화 운동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이것을 확장시킬지가 고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