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그림김수정 님 만화책 <꼬마 인디언 레미요>. 미완성 작품입니다.
최종규
김수정 님이 1986년부터 한 해 동안 그리다가 만 만화 《꼬마 인디언 레미요》(서울문화사,1990)를 펼칩니다. 책 앞머리에 김수정 님은, “외풍이 작가를, 아니 작품을 어떻게 침몰시키는가 하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준 한 본보기다. 아무리 좋은 기획과 튼튼한 구성을 바탕으로 시도되었다고 해도 작가, 편집자, 독자와의 호흡이 맞지 않을 때 그 인물(주인공) 들은 중도에서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책장을 넘깁니다. 꼬마 인디언 레미요 자기가 잘못하는 바람에 추장인 자기 아버지가 흰둥이한테 죽게 되었지만, 그런 줄도 모르는 레미요는 꾸밈없이 흰둥이들 마을에 내려가서 보안관 도우미를 합니다.
레미요한테는 계급도 지위도 돈도 이름도 힘도 아무 쓰잘데기없는 노릇, 부질없는 쓰레기에 지나지 않습니다. 씩씩하고 튼튼하고 훌륭한 추장인 아버지 삶조차 레미요한테는 마음을 끌지 못합니다. 자연과 벗삼아 싱싱하고 살갑게 살아가는 일에만 마음이 끌립니다. 그렇지만, 깔끔한 그림결에 사랑스러운 줄거리로 솔솔 풀려나가던 만화책이 중간에 엉성하게 끝맺음을 하고 맙니다. 이 까닭을 저로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아쉬울밖에 없습니다.
흰둥이 계집아이와 꼬마 인디언 레미요는 오순도순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넌 어쩌면 그렇게 총을 잘 쏘니? 나이도 어린 게?” “맞히려고 하면 잘 안 맞는데, 안 맞히려고 하면 맞아.”(101쪽)
- 2 -열두 번째 ‘사진잔치(사진전시회)’를 지난 9월 1일부터 하고 있습니다. 고향마을 인천으로 돌아온 지난 이태 사이에 느낀 골목길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서, 동네 골목길에 자리한 문화쉼터에서 조촐하게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시골 구석구석까지 20층 30층 40층 아파트가 세워져서 도시내기나 시골내기나 거의 마찬가지 삶으로 바뀌어 가는 오늘날, ‘골목길 사람’은 바깥으로 한참 밀려나 있는 듯 보이지만, 골목집과 골목길과 골목사람은 예나 이제나 조용히 제자리를 지켜 오고 있습니다. 지붕 낮은 조그마한 골목집에서 살아가는 사람한테는 예나 이제나 ‘현실’인 골목 문화입니다. ‘까마득한 옛날 풍경’이나 ‘흘러간 추억’이나 ‘사라지는 아름다움’이 아닌 골목 삶터입니다.
그렇지만, 몸소 살아내지 않으니까 이렇게밖에 못 느끼지 싶습니다. 머리로는 알고 생각을 굴린다 할지라도, 몸뚱이로는 부딪히지 않고 온몸으로 부대끼는 매무새가 없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고 느낍니다. 책은 읽어도 책에 담긴 줄거리를 자기 삶으로 녹여내지 않고, 대학교를 나오고 나라밖 나들이나 유학을 다녀오기는 했어도 지식과 정보를 자기 걸음걸이에 담아내지 않으니, 달리 손쓸 수 없는 노릇이지 싶습니다.
사진잔치를 알리는 쪽지를 만들어서 ‘골목집은 삶이고 골목길은 문화고 골목꽃은 예술’이라고 적어 놓는 한편, 사진잔치를 취재하는 기자한테도 같은 말을 입이 닳도록 들려주지만, 정작 기자들이 자기 일터로 돌아가서 쓴 기사를 보면 ‘사라짐-추억-풍경’ 같은 낱말만 가득가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