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화) 탐험아름다운 만큼 거칠었던 길
유지형
'내가 여기서 황천에 가는구나, 그래서 그곳이 황개천이었구나.'
영영 이어질 것 같았던 막막함은 어느 작은 마을의 돌담을 따라 겨우 끝이 나고, 파란 화살표에 대한 알 수 없는 배신감에 치를 떨며 나는 도로를 찾기 시작했어. 겨우 찾아낸 포장길을 따라 걸으며 쌩쌩 달리는 차들과 자전거 하이킹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없이 반가웠지. 때마침 눈앞에는 기다리던 목적지, H 동네의 이름이 새겨진 커다란 바위가 서 있었어.
긴장이 풀렸는지 그제서야 온 몸의 통증이 느껴졌어. 잔뜩 열을 받아 후끈거리는 양팔은 잡풀과 덩굴에 쓸려 베인 상처, 모기에게 통행세를 매혈한 덕에 부풀어 오른 흔적이 가득했지.
발목으로부터 전해지는 찌르는 듯한 감각 탓에 빨리 숙소를 찾아 쉬고 싶었어. 편의점과 우체국에서 물건을 사고 나서 부지런히 걸어 숙소를 찾아보기로 했지.
앗, 이 민박집 뭔가 이상하다다시 화살표가 이어질 H 해수욕장으로 향하는 길, 차도 인적도 없는 도로변에 홀로 자리한 한 민박집에 들어갔어. 아침 일찍 떠날 도보 여행자라고 사정해 방 하나를 겨우 얻었지. 우선 짐을 내려놓고 H 공소를 방문하기로 했어.
"원래 손님을 안 받는데…. 여자 혼자 다녀서 어쩌려고 그래?" 주인의 이야기가 이상하게 앙금처럼 가라앉았어.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 올라가 찾아간 공소는 정면의 성당과 후면의 유치원이 결합된 양식이었어. 슬리퍼를 갈아 신고 실내에 들어서자 "쉿-, 조용히 하자"하고 아이들을 타이르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지. 가만 앉아 기도하고 사진을 찍은 후 조용히 성당을 나왔어.
저녁거리와 차가운 맥주를 대신해 시원한 제주우유 한 팩을 사들고 동네의 용천수 탕에서 물장구를 치고 돌아왔지. 그런데 숙소로 들어서는 유리문이 잠겨 있었어. 똑똑 노크를 했더니 주인이 당황하며 문을 열어주었어. 뭔가 이상하네?
방에 발수건 할 수건이 없어 한 장을 달라고 해 들고 왔지. 샤워와 빨래를 마치고 께름칙한 기분이 들어 수건으로 방바닥을 한 번 훔쳤는데 시커먼 먼지가 잔뜩 묻어나왔어. 역시 이상하네?
파리 한 마리, 바퀴벌레 두 마리를 죽이고 적적한 기분이 되어 TV를 켰어. 어쨌든 빨리 자고 내일 일찍 출발하겠다는 생각에 여름에는 어울리지 않는 두꺼운 요를 깔고 그 위에 배를 깔고 일기를 적어나가고 있었어. 김밥 한 줄을 야금야금 먹고 있는데 하얀 요 자리에 까만 깨 같은 것이 톡 떨어져 있었지. 김밥의 깨인가? 내가 먹는 김밥엔 깨가 없는데.
시선을 돌려 요를 쳐다보았더니 깨 같은 것들이 여기저기서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었어. 이건 벼룩인가, 침대벌레인가, 빈대인가, 대체 무엇인가?! 나는 햇빛에 시커멓게 탄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어.
애초부터 '뭔가 이상하네?'의 연속이었어. 귀곡산장(!) 같은 숙소의 위치, 주인의 미심쩍은 응대, 잠겨버린 현관문, 텅텅 비어버린 다른 객실들, 시커먼 먼지가 가득한 방의 상태, 비워지지 않은 휴지통, 파리 한 마리와 바퀴벌레 두 마리, 바깥이 전혀 보이지 않는 실내, 게다가 요 위에 한가득 모여 춤을 추는 정체불명의 벌레들까지….
내 머리는 이미 온갖 가능성을 셈하고 있었지. 누가 와서 잡아먹는 건 아냐? 팔아가는 건 아닐까? 동네에서 본 단란주점 간판들은 왜 내 기억에 콕 박혀 반짝이며 돌아가고 있는 거야?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거야? 이 모든 것들은 무엇을 얘기하려는 신호인 거지?!
잠긴 문, 빈 객실, 시커먼 방... 악!아무리 생각해도 이 방에서 편히 잠을 잘 수가 없었어. "나갈 테니 방값 돌려주세요"하고 주인에게 말할 배짱도 없었어. 그저 물기 가득한 빨랫감을 돌돌 말아 구겨 넣고 발소리를 죽인 채 계단을 내려와 신발장의 등산화에 발을 넣고 붙들리지 않기 위해(?) 황급히 뛰쳐 나왔어. 시커멓게 내려앉은 어둠, 저 멀리 수평선에서 명멸하는 붉은 조명은 불안감을 더했지. 곧 해수욕장 근처에 닿아 여행자들로 북적이는 민박집에 방을 얻었어.
"혹시 저 위쪽 민박집 아세요?""우린 몰라요. 서로 다 알지를 못하니까, 왜요?"심드렁한 반응이었어. 겨우 몇 분 남짓 떨어진 곳에 있는 같은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서로를 모른다니, 이 동네는 정말 미심쩍은 부분이 가득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