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내려. 방송 갖고 이게 뭐하는 짓이냐. 방송 갖고 이러는 것 아니다."
"방송 사장 자리 갖고도 그러는 것 아닙니다."
지난 16일 오후 1시 조금 지난 시간, YTN 20층 메인 스튜디오가 있는 보도국, 말들이 비수가 돼 꽂혔다.
오후 1시에 방송되는 YTN <뉴스의 광장>은 보도국 전경을 앵커 뒷배경으로 내보내는 오픈 스튜디오 방식이다. 구본홍 낙하산 사장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노조가 이 시간에 맞춰 보도국에서 '낙하산 물러가라' 등의 팻말을 들고 피케팅을 벌였다. 그 장면이 고스란히 뉴스 뒷배경으로 나가자 보도국 간부들이 황망하게 저지하고 나선 것.
'배경화면'의 절규가 단순 방송사고?
방송 갖고 이러는 것 아니다! 방송 사장 자리 갖고도 그러는 것 아닙니다!
이를 어찌할 것인가. 한솥밥을 먹으며 때로는 다투기도 하고 때로는 언쟁도 있었겠지만, 이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방송을 두고 선후배가 날선 칼끝을 이렇게 서로의 심장에 겨누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 보도국 간부들로서는 어떤 상황이라도 방송은 정상으로 내보내야 하는 엄중한 책무가 있을 것이다. 느닷없는 돌출화면에 "그것은 자해행위"라고 외칠 만도 하다. 하지만 그런 후배 기자들의 심정은 또 어떨까. 그들 역시 '방송 갖고 이러면 안된다'고 피를 토하고 있는 것 아닌가. 온 몸으로 '배경화면'으로 절규하고 있는 것 아닌가.
어떻게든 방송을 제대로 내보내야 한다는 것이 YTN 간부들의 진심이고 신념이라면, 그들은 후배 기자들과 맞설 이유가 없다. 후배 기자들이, 노조가 두 달 넘게 구본홍 사장의 취임에 반대하고 있는 것 역시 방송을 제대로 지켜내기 위한 눈물겨운 헌신임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그들이 지켜내고자 하는 것이 온전한 방송이라면 적어도 방송을 갖고 이렇게 서로가 날 선 칼끝을 겨누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제대로 방송을 하면 된다.
YTN 사태는 누가 보더라도 주요 뉴스다. YTN으로서는 말할 나위도 없다. 그것은 배경화면 정도로 나갈 사안이 아니다. 배경화면 정도로만 나간 게 방송사고라면 사고다. 매일 주요 뉴스로 다뤄질 만한 사안이다. YTN만 그렇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방송이 신문이 비중있게 다룰 사안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 YTN부터 그렇다. YTN는 다음날 사과방송을 냈다. '방송사고'를 사과한다는 내용이었다.
시청자들을 존중해 사과할 수 있다. 시청자를 존중한다면 YTN은 사과만 해서는 안 됐다. 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를 상세하게 보도하고 방송해야 했다. 당연히 보도할 것을 제대로 보도하고 있지 않은 것, 방송해야 할 것을 방송하지 않고 있는 것이야말로 대형 '방송사고' 아닌가.
그것 또한 방송해서는 안된다고? 이 역시 "방송 갖고 그러면 안된다"고 할 것인가?
시청자 존중한다면, 사과만 해선 안 됐다
방송통신심의위원가 그런 결정을 내린 적이 있다. KBS가 감사원의 KBS 특별감사 결과 등에 대한 보도를 두고 KBS 주장을 일방적으로 보도해 시청자를 오도했다며 주의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방통심의위의 결정 자체에 대한 정당성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그것이 명분이 될 수는 없다. 방통심의위의 주의 결정은 어디까지나 '편파적'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공정하게 보도하면 될 일이다.
굳이 외국의 사례를 들자면 세계적인 방송, 언론들은 모두 그렇게 한다. 2003년 영국 정부의 이라크 대량살상무기 정보 왜곡 보도 논란으로 결국 사장까지 물러나게 된 '길리건 사건' 때 영국 BBC는 사건의 진행 상황을 낱낱이 보도했다. 이 사건에 대한 길리건 기자의 발언과 반응은 물론 보도국 간부와 BBC 경영진들의 반응과 입장 표명까지를 상세하게 보도했다. BBC는 몇해 전 노조가 파업을 추진했을 때 역시 노조의 입장과 회사측 입장을 상세하게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나 <월스트리트 저널> 같은 경우도 자사의 내부 문제나 회사 매각 문제 등에 대해 이해 당사자는 물론 보도국 간부나 회사 경영진, 주주의 입장 등을 취재해 소상하게 독자들에게 알렸다. 루퍼트 머독이 <월스트리트 저널>을 인수하려 할 때 <월스트리트 저널>은 편집 책임자와 기자들이 왜 머독의 인수에 반대하는지를 전면을 털어서 보도하기도 했다.
다른 문제는 모르겠지만, '방송' 문제로 YTN 보도국 간부들과 기자들이, 노조가 서로 칼끝을 겨눌 일은 아니다. YTN 사태에 대해 보도를, 방송을 제대로 하면 될 일이다. 그 일차적 책임은 바로 기자들의 피켓 시위를 가로막았던 보도국 간부들의 몫이다. 그런 다음에 기자들에게, 노조에게 '방송'에 대해 말하더라도 말해야 할 것이다. 간부된 입장과 처지를 생각한다고 하더라, 방송을 정상적으로 내보내는 것을 신념으로 하고 있다면 최소한 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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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외국의 방송사나 신문사들이 자사 관련 보도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직접 보거나 체험하신 분들의 댓글을 환영합니다. 필자 이메일로 연락을 주셔도 됩니다. bkb21@hanafos.com
2008.09.18 15:36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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