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구제안 발표 중인 부시 대통령과 버낸키 연방 준비 은행장, 폴슨 재무부 장관, 콕스 증권 거래 위원장
White House
금요일 오전, 전날의 모습과는 달리 제법 긴 연설문을 부시 대통령은 차분하게 잘 읽어내려갔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닌 헨리 폴슨 재무부 장관과 밴 버낸키 연방 준비 위원장, 미 증권거래 위원장 크리스토퍼 콕스를 대동했다. 그러나, 폴슨의 성명서 발표 이후 마련되었던 자리인지, 부시 대통령은 폴슨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되풀이했으며, 기자들의 질문을 또다시 받지 않은 채 총총히 사라졌다. 그러나 성명서에 드러난 위기의식은 전례 없는 것이었다.
전날 목요일 아침, 백악관에 매우 심각한 표정으로 나타난 부시 대통령은 2분 동안의 짧은 성명서 낭독을 통해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금융 시장을 강화, 안정시키고 투자자들의 자신감을 회복시키는데 경주하리라는 것을 미국인들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 뒤, 구체적인 해결 방안 제시도 없고 기자들의 질문도 받지 않은 채 성급히 자리를 떠났다. 지난 월요일 가나 대통령과의 합동 기자 회견에서 경제 상황에 대한 간단한 언급만을 한 이후 처음이다.
긴급 상황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이 같은 늑장 대응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5년 카트리나 참사 때에도 4일 만에 수해 현장을 찾았던 그이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이 발발되었을 때, 러시아가 그루지야를 침공했을 때에는 발 빠르게 자신의 입장을 구체적으로 표명하기도 했었다.
<뉴욕 타임즈>에 따르면,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하고 9/11 이후 최악의 증시 폭락이 있었던 월요일 저녁, 부시 대통령 내외는 100여 명의 하객들과 함께 만찬을 즐기고 있었으며, 이후엔 백악관의 로즈가든에서 뮤지컬 <라이온 킹>의 배우들이 부르는 주제곡 메들리를 감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다음 날 부시 대통령은 허리케인 아이크에 의한 재해 지역을 둘러보기 위해 텍사스로 내려갔으며, A.I.G.에 대해 어떤 대책을 세울 거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우린 텍사스 겔바스톤의 주민들과 얘기를 나누기 위해 여기 온 것이고, 그들에게는 훌륭한 시장이 있다. 이들이 참 열심히 일한다"라고 대답해 주었다고 한다.
대통령의 구체적인 입장 표명을 기다려왔던 언론사들이 동요하기 시작하자 백악관은 결국 목요일의 성명서를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금요일, 상원 은행/주택/도시 업무 위원회의 의장인 민주당의 크리스 토드 의원은 현재의 상황이 정쟁으로 소모되어서는 안 되는 때이나, 부시 대통령에 대한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다면서, 지난 3월 베어 스턴 사태 때 이후로 경제 문제 논의를 위해 대통령이 의회 지도자들과 만난 적이 없다고 한탄했다.
그러면서 전날 저녁 행정부 책임자들-폴슨 재무부 장관과 버냉키 위원장-을 포함한 양당 의회 지도자들과의 긴급회의도 백악관이 아닌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의 사무실에서 가졌다며, 이 같은 위기일 때야말로 대통령이 리더쉽을 발휘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반문했다.
30년 대공황 이후로 최악이라는 이번 위기 상황에 부시 대통령의 존재는 재무부 장관 헨리 폴슨과 연방 준비 위원장 밴 버냉키의 그늘에 완전히 가려졌다. 큰일이 터지면 어쩔 줄을 모르는 부시 대통령의 면모가 다시 한번 확인되는 요즘이다.
신중하지만 여전히 의문스러운 오바마의 리더십금요일의 정부 구제안에 대해 성명을 발표한 '마지막 타자'는 오바마였다. 클린턴 행정부 하에서 경제 관련 장관 및 고위 책임을 졌었던 선거 경제 자문위원 7명을 대동한 채 성명을 발표했다. 오바마는 우선 폴슨 장관의 정부 구제안에 지지를 보낸다고 하면서, 그러나 월가 금융권에 대한 구제 못지않게 일반 국민들을 위한 구제에도 힘을 써야 하고 월가의 구제가 납세자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구체적인 경제 구제안 내용을 당분간 발표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금요일 오전, 오바마는 자신의 경제 자문 위원은 물론 워렌 버핏 같은 경제인의 의견을 두루 경청한 이후 담화문을 발표했다. 그는 폴슨 장관과 버낸키 위원장의 노력에 지지를 보내며 현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시장과 국민의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해 당파를 초월한 협력을 이뤄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재무부와 연방 은행, 그리고 자신의 참모들로부터 받은 보고를 바탕으로 해서 몇 가지 원칙을 가지고 구체적인 대응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초점을 둬야 하는 것은 일반 노동자 가정을 위한 구제안이라면서, 그런 점에서 일자리 창출과 집을 잃게 된 사람들을 위한 즉각적인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했다. 또한 이번 정부의 구제안은 잠정적이어야 할 것이며 금융 기관 전반에 대한 감시와 규제를 새로운 시대에 맞게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미국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므로 G-20 국가들과 협력을 도모할 것이라고도 했다.
당파를 초월한 국민적 화합을 강조했던 오전과는 달리 오후 유세장에서 오바마는 자신이 이번 경제 위기의 원인이라는 매케인의 비난에 대해 그가 지금 좀 겁을 먹은 것 같다면서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말과 행동을 가리지 않는 것은 물론 어떠한 원칙도 어기고 있다고 되받아쳤다.
또한 거듭되는 구제 방안으로 인한 막대한 정부의 지출과 현 미국의 어려운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중산층에 대한 감세 약속을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으며, 그 이유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이야말로 중산층의 기반을 튼튼하게 해야 하며, 그 방법의 하나로 감세는 중요한 수단이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보다 신중하고도 정확한 대안 제시를 위해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오바마에 대해 공화당은 그가 준비되지 않았다고 비난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아예 뒤로 숨어버리는 부시의 리더십과 저돌적이되 방향을 상실한 매케인의 리더십, 신중하지만 여전히 의문스러운 오바마의 리더십. 남은 46일간 경제이슈로 점철될 미국 대선의 향방을 결정할 중요한 팩터(factor: 요인)들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