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금문교 유조선 충돌, 한 사내가 22년간 걷다

존 프란시스의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를 읽고

등록 2008.09.30 15:37수정 2008.09.30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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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책 겉그림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

책 겉그림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 ⓒ 살림

▲ 책 겉그림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 ⓒ 살림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가 오체투지(五體投地) 중이다. 나이든 두 성직자가 땅에 엎드리면 몸에서 고통이 묻어나고, 입에서는 신음 소리가 베어 나올 것이다. 그런 뒤 마음속으로 열을 세고 일어나면 등은 그만큼 들썩거리고, 온 몸은 가눌 수 없이 힘에 겨울 것이다.

 

두 분이 그토록 온 몸으로 땅을 기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히 생명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함일까? 아니면 이명박 정부를 질타하기 위함일까? 그런 면도 없지 않지만 근본적인 것은  그게 아니다. 돈이면 최고라는 경제적 물신주의에 흠뻑 젖어 사는 우리 사회, 곧 우리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기 위함에서다.

 

존 프란시스의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도 그와 비슷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1971년 금문교 밑에서 유조선 두 척이 충돌했다. 애리조나 스탠더드 호와 오리건 스탠더드 호다. 그 일로 기름은 샌프란시스코 만까지 퍼져갔다. 그때 지독한 가스 냄새로 사람들은 두통과 복통을 호소했다. 청년 여섯 명은 스탠더드 오일 본사 앞에서 항의 시위를 펼쳤다.

 

프란시스는 그들의 분노를 바로 눈 앞에서 목격했다. 그때 그에게 밀려든 고민은 그것이었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피해 주민들이 보상을 받고, 기름으로 뒤덮인 해변을 닦는 것으로 그치는, 그 이상의 뭔가를 생각했던 것이다. 그것을 계기로 그는 22년간을 걸어 다녔고, 17년간은 말없이 지냈다. 도보와 침묵 순례를 통해 생명의 존엄성을 더 귀히 여기는 사회가 되도록 견인차 역할을 했다.

 

"걷기와 침묵은 속도를 늦추어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고 그들에게 귀를 기울이게 해 주었다. 그리고 나 자신을 바라보고 나 자신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기회를 준다. 내가 발견한 바에 의하면 침묵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침묵은 단순히 내가 입을 다물 때 생기는 말의 부재가 아니다. 침묵은 총체적이면서 독립적인 현상으로, 외적인 요소 없이 그 자체로 존재한다. 나는 침묵 속에서 나 자신을 재발견한다."(83쪽)

 

물론 도보와 침묵 여행 중에서도 그는 대학 공부를 마쳤고, 석사학위와 토지자원 분야에서도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처음 도보와 침묵 여행을 할 때만 해도 부모는 물론이요, 동료들과 지역 언론까지도 반대와 비난을 퍼부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에 소홀함이 없을 때 그에게 등을 돌렸던 모든 사람들이 찬사를 보냈고, 그의 도보와 침묵에 동행하는 이들도 늘기 시작했다.

 

사람은 자신의 눈높이대로 행동한다. 그가 무엇을 품고 사느냐에 따라 그의 발걸음은 뒤따르기 마련이다. 이미 우리사회는 경제적 물신이라는 마약에 모든 눈길이 쏠려 있다. 이명박 정부는 나름대로 그것을 구색에 맞춰 요리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마약은 중독이 되면 될수록 그 발걸음조차 가누기 힘들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 기억해야 한다.

 

아무쪼록 생명의 존엄성을 깊이 있게 각인시킨 젊은 프란시스의 묵언과 도보 여행기를 통해 나이든 두 성직자의 오체투지 순례를 한 번쯤 깊이 있게 생각해 보고,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그 이정표도 그려보고, 나름대로 고민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2008.09.30 15:37ⓒ 2008 OhmyNews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 - 22년간의 도보여행, 17년간의 침묵여행

존 프란시스 지음, 안진이 옮김,
살림, 2008


#존 프란시스 #두 성직자의 오체투지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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