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만 5시간! 하나도 안아파요~아프지 않다고 말하며 도리어 주변 사람들을 안심시킨다. 선천적으로 면역체가 없어서 강아지도 못만지고 놀이터도 못가는 유리처럼 여린아이지만 큰 소리로 웃으며 밝은 생각만 하는 속 깊은 아이다.
김유현
원경이는 하이퍼 아이지엠 신드롬(hyper igm syndrom)이라는 '선천성 면역 결핍증'을 앓고 있다. 이 병은 우리 몸의 항체를 이루는 iga, igd, ige, igg, igm중 igm이란 세포가 너무 많아 병균과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이 없어, 항생제에 의존해야만 하는 희귀 난치병이다.
가장 오래산 아이가 10살. 올해 원경이는 딱 10살이다. 감기나 작은 상처에도 아주 위험할 수 있어서 놀이터에서 노는것도 강아지를 만져보는 것도 어려운 원경이다.
기자가 만난 그 날은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원경이가 주사를 맞는 날이라고 했다. 정기적인 면역 주사를 맞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원경인 오히려 "주사 맞는 게 하나도 아프지 않다"며 환하게 웃어보인다. 그러나 주사를 맞는 그 부위는 이미 벌겋게 부어 올랐다.
아무렇지도 않게 엄마랑 농담도 주고받는 모습은 엄마와 딸 사이가 아니라 친구라고 보여질 정도이다.
"엄마 아파서 미안해!"라며 울면서 엄마를 위로하던 그 장면이 방송에 나온 이후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게 했었기에, 사람들은 당연히 원경이에게만 집중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뒤에 항상 그림자처럼 있던 엄마 문희정씨의 삶을 보고 싶었다.
원경이 엄마 문희정씨 새로운 일에 착수하다
그녀는 올해 이화여대 신학대학원에 덜커덕 입학을 했다. 면접 당시에도 교수님들께서 과연 공부를 제대로 해 나갈 수 있을 것인지를 물었단다. 문희정씨는 사실 세종대 음악과(피아노전공)를 나왔다. 음악인의 삶을 살고 싶어서 아버지의 반대에도 재수를 해서 들어간 것이다. 해외 유학도 꿈꾸며 나름 야무진 계획을 세우며 열심히 살았던 그였다. 결혼 후 원경이를 낳고 3년간은 그래도 무탈하게 지내왔다.
문희정씨는 아이가 아프면서 사회제도 때문에 상처를 많이 입었다. 희귀병 아이들에게는 어떤 제도로도 만족할 만한 혜택이 돌아오기가 힘들다는 냉정한 현실만 부딪혔던 것이다. 희귀병 가족들은 그래서 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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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픈것도 서러운데 없기까지 하라고요? 의료보호 1종을 따내기까지 1년간 안다녀본 곳이 없을 정도로 발품을 팔아가며 싸웠다는 문희정씨. 통장에 300만원이상이 넘어가면 바로 전화 연락이 와서 무슨 돈이냐고 묻는 나라가 이상한것 아니냐고 한다. 전세금도 금을 그어놓고 그 이상 집도 얻지 말라는 말에 달동네가서 살라는 말이냐고 되묻는다. '아픈것도 너희들 사정, 돈 없이 사는 것도 너희들 사정'이라는 식의 제도가 제대로 된것이냐고 문희정씨는 묻고있다. ⓒ 김유현
그래서 문희정씨는 교회가 이들 가정의 문제들을 돌봐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예배학을 전공하려고 마음 먹은 것이다. 배고팠던 사람만이 배고픈 이의 심정을 알아준다는 말이 꼭 맞다.
"교회가 성경 공부로만 끝내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도움과 적용 방법을 연구해야 해요."예배를 통해 희귀병 환자 가족들은 위로와 은혜 받기를 늘 간구하는 것이다. 그만큼 삶이 보통사람들에 비해 더욱 지쳐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시선 뿐 아니라 실제 이들의 경제적인 부분들도 더욱 어깨를 무겁게 한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방송에도 나가고 CF도 찍고 음반이며 책도 나왔으니 돈 좀 있겠다'며 괜한 너스레를 떠는 것 아니냐"며 오해를 하고는 한다.
그러나 유명한 연예인이 아니기에 받는 돈은 얼마되지 않는다고 한다. 기본적인 보험의 적용 대상도 안 되는 희귀병 환자의 가족들은 그런 말 한 마디마다 마음은 이미 걸레처럼 너덜거릴 정도로 닳고 닳아버린지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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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귀병 앓는 이들을 위한 전문 멘토역할 해볼터 오랜 병원 생활을 하면서 문희정씨는 환자와 환자 가족에게 어떤 것들이 구체적으로 필요한 것인지 깨달으면서 특히나 희귀병 환자와 가족들을 위해서 다각적인 도움을 주는 멘토이자 전문가로서 이들을 위한 공동의 네트워크를 형성해 나가려고 한다. 의료보호 1종을 따내기까지 온갖 차별과 편견들에 맞서 싸우면서 그토록 지키고 보호해 주고 싶은 딸 유리공주 원경이를 위한 엄마 문희정씨의 각고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 김유현
엄마는 "실땅님!"올해부터 문희정씨는 김석년 서초교회(기성) 목사의 제안으로 '패스 브레이킹 연구소'에서 기획실장으로 사역을 돕기 시작했다. "'실땅님~'이라고 원경이가 놀려요"라며 웃는다. 일을 하기 전까지 마음에 갈등이 심했단다.
"아이가 아직 어리고 아픈데 과연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그때 목사님의 적극적인 지지로 힘을 얻어 일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