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제고사가 치러진 8일 오전 서울 미동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시험 시작 전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가림막을 양쪽에 설치하고 있다.
권우성
비앙카는 한국 엄마들이 아이들을 교사 가까이에 앉히는데, 거기는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앉는 자리라고 했다. 이것은 한국 교육제도에 익숙한 사람들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우리식 관념으론 공부 잘하는 순서대로 교사 가까이에 있게 된다.
바로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수준별 학습이나 우열반이 절대로 허용돼선 안 되는 이유다. 교사는 교육하는 자다. 교사와 가까이에 있다는 것은 다른 학생보다 교육을 더 잘 받는다는 뜻이다. 비앙카의 말에 의하면, 그것이 공부 못하는 아이들의 차지라는 것이다.
한국은 공부 잘 하는 아이에게 교육력을 더 쏟고, 못하는 아이는 배제하는 나라다. 그래서 배제당하지 않기 위해 사교육 선행학습이 판을 친다. 일단 우열반이나 수준별 반이 갈리면 그것이 평생 이어질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왜냐하면 뒤처진 아이를 이끌어주는 교육이나 사회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 시장 논리의 금융 문제로 '정작 우산이 필요할 때 우산을 걷어버린다'는 말이 회자된다. 즉, 경기가 좋고 경영실적이 좋을 땐 지원하지만 경영이 무너져 정작 지원이 필요할 땐 지원을 걷어버린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기업이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
한국 교육이 바로 '우산을 걷어버리는' 체제다. 사교육을 못 받아 성적이 떨어지는 아이에게 집중 교육을 해야 하는데, 엉뚱하게 사교육 많이 받은 아이들한테 교육을 집중한다. 그렇게 냉혹한 체제에 살았던 한국 학부모들은 아이를 교사 옆에만 붙이려고 하는 것이다. 낙오시키지 않으려고.
미국은 선진국 중에서 가장 한국 교육과 비슷한 일류 학교 경쟁체제인데도 불구하고, 교사 옆에 오히려 공부 못하는 아이가 앉는다고 비앙카는 말하고 있다. 핀란드와 같은 평준화 체제로 가면 이 차이는 더욱 분명해진다. 거기에선 공부 못하는 아이에게 교사의 관심이 집중된다. 뒤처지는 아이를 끌어올리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우리처럼 자기 아이 1등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꼴찌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 교육방침이다.
남이야 어떻게 되건 말건, 나 하나 1등 하겠다고 악착같이 선생님 곁을 지키는 아이들을 만드는 한국의 교육제도. 어이없다.
탐욕으로 점철된 집단이 찬성하는 일제고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