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경쟁률 뚫고 왔더니...

범선 탐사 4박5일, 참가자들 이모저모

등록 2008.10.24 09:46수정 2008.10.24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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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8일, 경남 창원에서 열리는 람사르 협약 당사국 총회를 기념해 국토해양부가 주최하고, ㈔녹색습지교육원이 주관한 '범선 타고 느끼는 아름다운 연안습지' 행사가 지난 16일부터 20일까지 4박 5일간 열렸다. 12:1의 경쟁률을 뚫고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20여명의 범선 표류기(?)를 싣는다. [편집자말]
지난 16일부터 20일까지 무려 4박 5일 동안 우리나라 유일의 범선 코리아나호를 타고 연안습지를 돌아본 참가자들에게 물었다. "어땠어요?" 여러 엇갈린 대답 속에서도 공통적인 반응은 "이런 기회가 어디 흔한가요?" 였다. 맞다. 처음 있는 일이다.

초등학교 4학년인 박수영군부터 73세의 강정수씨까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대학생부터 의사까지 다양한 계층의 참석자들이 한 배에 몸을 실었다. 그러나 배 안의 사정은 이들이 생각했던 '로망'과는 다소 먼 풍경이었다. 럭셔리 호화 크루즈를 기대했던 걸까. 사람들은 배 안에 마련된 숙소를 보고 '뜨아' 했다. 좁은 침대와 모기떼 그리고 퀴퀴한 냄새. 결국 참가자 중 2명은 하루 만에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더욱 놀라웠던 것은 주관사인 녹색습지교육원 측에서 고심(?) 끝에 마련한 '널널한' 프로그램에 있었다. 안전에 대한 것만 빼고 뭐든 자율적으로 하라는 지시가 떨어진 것. 참가자들은 그제야 '선상에서 읽을 책과 낚시도구 등을 가져올 것'이라고 쓰인 안내문이 생각났다. 이·럴·수·가.

결국 이들이 선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돛을 올릴 때 힘깨나 쓰는 것과 조별로 전체 급식을 돕는 정도. 그 외의 시간은 낮잠을 늘어지게 자거나, 사진을 찍거나, 장기를 두거나, 카드를 하거나 하는 것으로 소요했다. 그렇게 딱 하루는 좋았다. 이틀째가 되자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러려고 온 건 아닌데. 그러나 이미 떠난 배, 멈출 수 없을 바에야 즐길밖에.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이렇게 바다에 오래있어 보나 하는  마음으로 쓰린 마음을 달랬다.

마치 미국 드라마 <로스트>의 한 장면처럼, MBC 시트콤 <크크섬의 비밀> 한 장면처럼 범선에 표류(?)한 참가자들. 오도 가도 못하는 범선에서 그들은 4박 5일 동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일부 참가자들을 만나봤다.  

"커플이요? 우린 세 남매예요"
이혜영(22)씨, 이소윤(18)양, 이도현(16)군

a  동생들과 도시에서는 보고 만질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하고, 자연과 동화하는 삶에 대해 알려주고 싶어 참석했다는 이혜영(우)씨와 동생 이소윤(좌)양.

동생들과 도시에서는 보고 만질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하고, 자연과 동화하는 삶에 대해 알려주고 싶어 참석했다는 이혜영(우)씨와 동생 이소윤(좌)양. ⓒ 최은경


'캐발랄' 젊은 친구들, 이혜영(22)씨, 이소윤(18)양, 이도현(16)군의 등장에 칙칙했던(?) 주변이 금세 밝아졌다. 서로 모르는 친구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국토해양부 대학생 기자단원인 큰누나 이혜영씨가 참여를 권해 함께 온 동생들이란다. 참가자 가운데 이 사실을 몰랐던 한 교수님은 소윤양과 도현군이 너무 친해 서로 사귀는 사이인 줄 알았다고 해서 한바탕 웃음이 나기도.


이혜영씨는 "도시 아파트에서만 사는 아이들이 어떻게 환경 보호의 중요성을 알 수 있겠어요. 우리 동생들도 마찬가지인데, 동생들과 도시에서는 보고 만질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하고, 자연과 동화하는 삶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어요"라고 참가 동기를 밝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코스에 대해 이혜영씨는 완도의 절경 구개등을, 이소윤양은 조도 전망대를 꼽았다.

"구개등에서 일출을 보면서 자연 앞에서 겸허해지는 제 자신을 발견했어요. 또 오랜 세월 닳고 닳아져 몽돌이 된 자갈밭 한가운데서 바다를 보며, 자연은 인간과 함께 조화로울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렇게 멋있는 곳들이 경제논리로 개발되고 파괴된다는 사실이 참 안타까워요." - 이혜영씨


"범선 꼭대기에 두 번이나 올랐는데, 정말 너무 좋았어요. 입시 스트레스 따윈 확 날려버릴 수 있을 만큼 멋있었어요. 두 눈을 감고 느끼는 바람도 참 좋았어요. 조도 전망대에서 바라본 우리 습지도 참 멋있었어요. 미대에 진학해 패션디자이너가 되는 게 꿈인데, 사진 찍어놓은 거 보고 집에 돌아가 스케치해 볼 생각이에요." - 이소윤 양

끝으로 '세계 5대 습지인 순천만 등 우리나라는 참 가진 게 많은 나라'임에도 그것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고, 과거 조상들이 자연과 함께 동화되어 살아가는 방법도 알려 하지 않는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라고 한 이혜영씨의 말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시험이 코 앞이지만, 만사 제치고 달려왔어요"
경북대 토목공학과 김남읍씨

a  범선 체험이 끝나자마자 시험을 봐야하는 김남읍씨. 토목과 자연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꼭 찾아내길 바란다.

범선 체험이 끝나자마자 시험을 봐야하는 김남읍씨. 토목과 자연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꼭 찾아내길 바란다. ⓒ 최은경


김남읍(27)씨는 대학생이다. 그것도 시험을 코앞에 둔. 토목공학이 전공인 김씨는 "아닐 것 같지만, 토목과 자연이랑은 연관이 깊다"고 운을 뗐다. 그는 "토목이라고 하면 무조건 자연을 훼손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자연과 함께 상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번 탐방을 통해 모색하고자 지원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기대했던 것과 달리 사실, 물때를 잘못 맞춘 탓에 수심이 낮아 목적지로의 접근이 쉽지 않았고 때문에 습지를 한 번 밖에 보지 못했다는 김씨. 그는 "토목공사로 인해 자연이 훼손되는 모습을 직접 봤더라면 소감이 좀 남달랐을 것 같은데, 생각만큼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한 것이 다소 아쉽다"고 전했다.

"습지가 너무 좋아, 애들도 떼어놓고 왔어요"
충남 서천에서 온 '열혈' 습지 학도 구미숙(37), 이예순(48)씨

a  바다에서 연안습지를 돌아보는 흔치 않은 기회라 꼭 참가하고 싶다는 '열혈' 습지 학도  구미숙(우), 이예순(좌)씨.

바다에서 연안습지를 돌아보는 흔치 않은 기회라 꼭 참가하고 싶다는 '열혈' 습지 학도 구미숙(우), 이예순(좌)씨. ⓒ 최은경


관계자를 제외하고 습지에 대한 상식이 가장 풍부한 참가자는 바로 이들이 아니었을까. 충남 서천에서 온 아줌마커플 구미숙(37), 이예순(48)씨가 바로 그 주인공. 습지라면 전국 각지를 쫓아다니면서 공부할 정도인 '열혈' 습지 학도들이다.

이씨는 "서천에서도 그렇지만, 우리는 주로 육지에서 바다를 관찰하며 살잖아요, 그런데 이번 범선 체험은 바다에서 연안습지를 돌아보는 코스라 꼭 참가하고 싶었어요, 이렇게 오랜 시간 밥걱정 반찬걱정 없이 바다 위에서 유유자적 습지를 집중적으로 돌아보는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 아닐까 싶어요"라며 호방하게 웃었다.

구미숙씨 역시 "바다에서 습지를 볼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잖아요. 평소 섬이나 습지 등에 관심이 많아 찾아다니면서 공부하는 편인데, 이번 탐험도 좋았어요. 강의 내용도 여러 번 들었던 내용인데, 계속 들어도 질리지가 않아요"라고 만족스런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제가 사는 충남 서천에서도 개발이 마구 이뤄지고 있어요. 산업단지를 조성하려는데 그건 자연에 역행하는 처사죠, 겨울이면 날아드는 철새를 생각하면 마음이 짠해요"라고 말한다.

범선 탐험에 동승한 초등학생 아이들을 보니, 아이들 생각이 나기도 한다는 구씨는 "엄마가 습지나, 갯벌, 생태에 관심이 많으니, 아이들도 관심이 높아져 자주 함께 다닌다"면서 그러는 동안 아이들도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개인적으로는 이런 자리가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친구들한테 공룡발자국 자랑할 거예요"
초등학생 박수영(11)군과 이성은(12)군

a  16일 오전 11시경 범선이 여수소호요트경기장에서 떠나자, 손을 흔들고 있는 아빠들. 정말 애들 혼자 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16일 오전 11시경 범선이 여수소호요트경기장에서 떠나자, 손을 흔들고 있는 아빠들. 정말 애들 혼자 가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 최은경


a  최연소 참가자 이성은(좌, 모자 쓰고 돛을 접고 있는 아이)군과 박수영(우)군. 둘 다 공룡발자국 본 게 제일 기억에 남고, 친구들한테 자랑할 거라고.

최연소 참가자 이성은(좌, 모자 쓰고 돛을 접고 있는 아이)군과 박수영(우)군. 둘 다 공룡발자국 본 게 제일 기억에 남고, 친구들한테 자랑할 거라고. ⓒ 최은경


최연소 참가자들인 박수영(11)군과 이성은군(12)은 현재 서울에서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는 4학년, 5학년 학생들이다. 아빠와 함께 범선 체험에 나선 줄 알았더니, 배가 떠나고 남은 자리에서 손을 드는 아빠들. 설마 '쟤들끼리만 가는 건가' 했지만, 진짜였다. 게다가 아이들은 서로 처음 보는 사이였다.

"큰 배를 타고 여행하고 싶어서 인터넷 검색하다가 신청하게 됐어요. 엄마, 아빠 모두 찬성하셨고, 특히 선생님도 좋아하셨어요. 4박 5일 동안 다 좋았는데, 특히 사도에서 공룡 발자국 본 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친구들한테 자랑할 거예요. 근데 선상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건 좀 지루하기도 했어요." - 박수영

"아빠가 알려줘서 신청하게 됐어요. 원래는 누나도 신청했는데, 저만 됐어요. 누나가 울면서 엄청 속상해 했어요. 여행 하는 내내 잔소리 하는 사람이 없어서 너무 좋았고, 좋은 경험한 것 같아요. 갯벌에서 게도 잡고, 사도에서 공룡발자국 본 게 특히 좋았어요. 특히 범선체험 마치고 받은 수료증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친구들한테 자랑할 거예요." - 이성은

성은군은 집에 가는 길 내내 "가고 싶지 않다"는 소리를 연발했다. 집에 가면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되고, 공부 하나도 안 했는데 곧 시험을 보기 때문이란다. 근데, 내 발걸음은 왜 이렇게 가볍지?
#범선 체험 #연안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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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이런 제목 어때요?>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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