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평론가 이용재씨와 그의 딸(1991년생, 공교육은 무너지고 사교육은 팽창, 이에 교육의 목적을 다른 곳에 두고 정규 공교육을 등짐)은 이런 계기로 다음날 전국투어에 오른다. 국보 건축 답사를 떠난 것이다.
경상도를 시작으로 전국 8도를 도는 긴 여정에 이 부녀가 만난 건축물들은 종묘 정전, 해인사 장경판전, 무위사 극락보전, 경복궁 경회루, 강릉 객사문, 금산사 미륵전,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 수덕사 대웅전, 법주사 팔상전, 창경궁 명정전 등 21곳. 여기에 저자만의 국보인 양동 마을 관과정, 닭실 마을 청암정 등 9곳을 합해 모두 30곳이다.
1만 킬로미터를 주행, 답사한 것을 토대로 초고를 완성했다. 초고가 맞는지 확인하고자 다시 그 길을 밟았으며 사진이 마땅치 않으면 다시 사진 한 장 찍기 위해 그 길을 되짚어 갔다고 한다. <딸과 함께 떠나는 국보 건축 기행>(디자인 하우스>는 이렇게 나온 책이다.
첫 주인공 국보는, 1995년에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종묘 정전(국보 제227호)'이다. 저자는 종묘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종묘가 아름다운 것은 디자인 때문이 아니다. 한국에서 가장 긴 건물인 종묘는 27대 519년의 왕조 역사를 담아야 하는 필요 때문에 정전 19칸, 영녕전 16칸으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 되었다. 종묘에서 가장 아름다운 월대가 이와 같은 규모로 만들어진 이유는, 건물과의 조화를 염두 한 것이라기보다는 제례 때 악사들과 팔일무를 추는 64인의 무용수들이 여덟 명씩 여덟 줄로 서서 춤을 출 때 서로 닿지 않도록 하다 보니 그리 된 것이다. 필요한 것을 필요한 만큼 썼기 때문에 의도되지 않은 아름다움이 태어난 것이다." -책속에서
딱딱한 국보 건축물과 역사, 쉽고 말랑하개 만나자
'궁(궐)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종묘, 오른쪽에는 사직을'에 따라 1394년, 훈정동(따뜻한 우물이 있는 동네) 일대 5만 6천 평에 종묘 공사가 시작된다. 이듬해 1차 공사가 완성, 태조 이성계의 선대 4대조의 위패를 모신다. 이후 152년간 종묘 조성 공사는 계속된다.
종묘만으로는 부족해 종묘 서쪽에 영녕전을 조성한다. '길이길이 평안한 집'이라는 뜻이다. 태조의 선대 4조 및 종묘에 봉안되지 않은 조선의 역대 왕들과 그 비(妃)들의 신위를 모신 사당이다.
1546년에 종묘 완공. 완성된 종묘 정전의 길이는 101미터. 1실에 1분 왕(王)과 비(妃), 19실에 49위를 모셨다. 정면 16칸 측면 4칸의 영녕전 16실에는 모두 34위를 모셨다. 정전 좌측부터 제1실 태조, 제2실 태종, 제3실 세종, 4실 세조, 5실 성종, 6실 중종, 7실 선조….
저자는 종묘에서 종묘의 건축 동기와 과정, 임진왜란 때의 수난과 재건축, 종묘의 전체적인 구조와 특징, 문화적 역사적 건축학적 가치, 2001년에 '인류 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유네스코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종묘제례 및 제례악, 일제강점기에 민족정기를 끊고자 일본이 저지른 만행 등을 들려준다.
그리고 함께 여행 중인 그 딸은 눈에 보이는 족족 시시콜콜하게 묻고 묻는다.
"아빠 그럼 위패는 나무판이야" 어떤 나무를 쓰는데?"
"닭소리나 개소리가 들리지 않는 깊은 산속에서 자란 밤나무"
"아빠, 19명이라고? 49명 모셨다고 하지 않았나? 조선의 왕은 27명 아닌가?"
"왕비들 포함, 후궁은 사절…, 나머지 힘없는 왕들은 영녕전에 모셨어."
"아빠. 연산군과 광해군은 안 보이는데?"
"응, 까불어서 안 모셔."
"왕의 엄마가 후궁인 경우도 있지 않았나!"
"아들이 보위에 오른 7명의 후궁은 칠궁에 따로 모셨어"
"어딨는데?"
"청와대 안에"
딸은 계속 묻고 아버지는 계속 대답하고.…부녀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종묘를 한 바퀴 돈다. 두 번째 여행지는(책의 목차 상) '해인사 장경판전(국보 제52호) '인간의 번뇌와 법문이 8만 4천 가지라. 이를 상징하는 8만 1258장의 경판으로 이루어진 재조대장경, 즉 팔만대장경을 모신 전각이다.
저자는 해인사 장경판전을 돌아보며 팔만대장경 제작과 소실 및 다시 제작, 한양으로의 이동과 임진왜란 때의 피난과 그에 따른 해인사 장경판전의 조성, 6.25때 이를 지키고자 기지를 발휘한 사람들, 일본의 팔만대장경판 비밀풀기 시도 등에 대해 소상히 들려준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이 책이 재미있게 읽히는 것은), 오래전 건축 관련 출판사를 설립하여 운영했으며 건축 잡지 편집장을 지낸, 건축평론가로 이미 <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 기행>시리즈를 낸 저자(외에도 수없이 많지만 생략하고)가 들려주는 건축학적 이야기다.
1488년 장경판전 건립, 대장경을 모신다. 남쪽엔 수다라장, 북쪽엔 법보전. 정면 15칸 측면 2칸. 수다라장과 법보전 두 건물의 각 벽면에는 위아래로 두개의 창이 이중으로 나 있다. 아래 창과 위창의 크기는 서로 다르고, 건물의 앞면 창은 위가 작고 아래가 크며, 뒷면 창은 아래가 작고 위가 크다. 큰 창을 통해 천천히 건물 안으로 흘러들어 온 공기는 골고루 퍼진 후에 작은 창으로 빠져 나간다.
… 소금, 숯, 횟가루, 모래를 차례로 놓은 판전 내부 흙바닥은 습기가 많을 때는 머금었다가, 습기가 없을 때는 내보내는 자동습도조절기...해인사 장경판전의 자연통풍 시스템은 여러 차례 이론으로 해명이 시도되었지만 아직까지 어떤 하이테크로도 재현될 수 없는 지혜가 숨어 있다… -책속에서
인간은 건축을 만들고, 건축은 인간을 만든다
저자의 설명은 계속 이어진다. 일반인들로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여행지나 문화재청 설명에서는 쉽게 만날 수 없는 지식이다. 설명 또한 쉽고 친근하다. 때문에 우리 문화재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이런 글 읽고 다시 만나는 문화재는 또 다른 가치로 다시 보일법하다. 그리하여 어떤 문화재나 여행지에서 "오래 되었다","유명한 문화재라더라","멋있다"라고 단지 수박 겉핥기식 감탄만 하던 이전과 달리 우리 문화재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과 새로운 문화재를 만나고자 하는 계속되는 관심으로 이어지리라. 이 책은 이런 관심의 동기, 그 출발점으로 충분하다.
이 책의 재미는 이뿐이 아니다. 저자는 그동안 우리들이 쉽게 써왔던 '수도'나 '고을' 등의 역사적 뜻, 여행지 지명의 뜻풀이까지 들려주고 있으니 이 책 한권으로 얻는 것들이 참 많다. 게다가 책의 한쪽에 중요한 문화재나 건축물, 역사적 중요한 인물이나 현대의 중요 건축가들까지 소개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덤이 두둑한 그런 책이다.
"인간은 건축을 만들고, 건축은 인간을 만든다. 우린 자녀들을 데리고 명품 건축에 가서 가르쳐야 한다. 건축가는 건물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인격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숭례문의 방화범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었다. 무관심은 가장 큰 죄악이다."-저자의 말 중에서
덧붙이는 글 | <딸과 떠나는 국보 건축 기행>(이용재 글과 사진 / 디자인하우스 / 2008.9.25 / 1만4800원)
2008.10.22 12:42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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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떠나는 국보 건축 기행
이용재 글.사진,
디자인하우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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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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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건축물' 역사가 너무 쉽고 말랑말랑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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