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미국산 쇠고기, 자식은 국내산 쇠고기

멜라닌 소동까지, 이러다 먹을 거리에 노이로제 걸리겠다

등록 2008.10.23 20:59수정 2008.10.23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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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거리  한때 미국산 쇠고기로 떠들썩하더니 이번에는 멜라닌 사건으로 세상이 요란스럽다. 언제 우리 아이들에게 마음놓고 먹을 거리를 권하는 세상이 도래할 것인지 걱정스럽다.
먹을 거리 한때 미국산 쇠고기로 떠들썩하더니 이번에는 멜라닌 사건으로 세상이 요란스럽다. 언제 우리 아이들에게 마음놓고 먹을 거리를 권하는 세상이 도래할 것인지 걱정스럽다.김학섭
▲ 먹을 거리 한때 미국산 쇠고기로 떠들썩하더니 이번에는 멜라닌 사건으로 세상이 요란스럽다. 언제 우리 아이들에게 마음놓고 먹을 거리를 권하는 세상이 도래할 것인지 걱정스럽다. ⓒ 김학섭

 

'아이들에게 무엇을 먹일 수 있을까', 겁이 나는 세상이 드디어 도래하고 말았다. 한때 고춧가루에 톱밥이, 생선 안에 쇠뭉치가, 빵에 이물질이, 유전자 옥수수, 미국 산 쇠고기 파동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중국산 먹을거리에 멜라닌이 발견되어 전세계가 발칵 뒤집어지고 있다. 언제 우리 아이들에게 마음 놓고 먹을 것을 권할 수 있는 세상이 도래 할 것인지 걱정이 태산 같다.

 

가게에 가서 물건을 살 때 어떤 물질이 그 안에 들어 있는지 꼼꼼하게 따지고 구입하라는 전문가들의 조언이 언론을 통해서 연일 보도되고 있지만 보통 사람은 확인을 한다고 해도 어떤 물질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고 있는 소비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이제는 선뜻 가게에 가서 어떤 물건을 구입해야 안심하고 아이에게 먹을 수 있는지 두렵기까지 하다. 이러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는 세상이 도래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22일 저녁, 아들 내외가 저녁을 함께 하자고 했다. 결혼을 하고 바로 분가해서 살고 있는 터라 저희들도 먹고 살기에 바빠 자주 만나지 못하고 있는 처지여서 여간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손녀의 재롱이 보고 싶어 매일 속을 끓이던 터여서 만나자는 약속 시간이 되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일과 시간이 끝나고 밤 9시가 되어서 아들 내외가 아이를 앞세우고 우리집으로 들어섰다.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는 탓일까. 내외의 얼굴이 예전같지 않았다. 손녀는 내 얼굴을 오랜만에 보아서인지 영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미안한 생각이 든 며느리가 아이가 아직 잠이 덜 깨어서 그런 것 같다며 서둘러 아이를 내 품 안에 밀어 넣는다. 나는 귀여운 손녀 앞에서 한참 재롱을 부리고 나서야 손녀와 친해 질 수 있었다.  

먹을 거리  외국산을 마음놓고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봅니다.(위사진은 본문 기사와 관계가 없습니다.)
먹을 거리 외국산을 마음놓고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봅니다.(위사진은 본문 기사와 관계가 없습니다.)김학섭
▲ 먹을 거리 외국산을 마음놓고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기대해 봅니다.(위사진은 본문 기사와 관계가 없습니다.) ⓒ 김학섭

아들이 소주 한 잔 하자며 쇠고기를 내 놓았다. 우리 내외는 육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터여서 명절이나 손님이 오는 일 외는 쇠고기를 먹는 일이 거의 없다. 혹 육식을 하고 싶을 때는 삼겹살에 소주 한잔 걸치는 것이 고작이었다. 어쩌다 한우라고 사오면 맛이 엉망이어서 쇠고기에 대한 인식이 별로 좋지 않은 터였다, 속아 산 것 같지만 증거가 없으니 항의도 할 수 없어 우리 내외는 아예 쇠고기와는 담을 쌓고 살았다.

 

그런데 아들이 쇠고기를 사 온 것이다. 아들 내외가 오자 집 사람이 정성껏 준비한 음식을 내오고 가스레인지에 불판을 올려놓고 기름장을 만들고 나는 구멍가게에 가서 소주 한 병과 아내와 며느리를 위해 사이다 한 병을 사왔다. 한참 부산을 떨고 난 후에야 식구들이 불판을 중심으로 모여 앉게 되었다. 이윽고 포장지가 뜯어지고 쇠고기가 불판에 놓였다.


“미국 산 쇠고기입니다. 삼겹살 먹느니 그 값으로 사와 봤습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손녀 생각부터 먼저 났다. "그럼 저 아이에게 이 고기를 먹인단 말이냐?"하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혹여 자식이 아버지를 생각해서 사온 음식을 트집이라도 잡는다고 말할 것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고기가 구워지고 묵은 김치에 고기를 싸서 소주 한잔 걸치고 나니 기분이 좋아졌다. 먹으면서도 찜찜한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도 맛은 가짜 한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조금 후 아들은 다른 포장에서 쇠고기를 꺼내 불판에 따로 올려놓는 것이었다.

 

“아버지, 이건 아이가 먹을 한우 고기입니다. 굉장히 비쌉니다.”

 

순간 자식 놈도 애비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은 미국산 쇠고기를 먹어도 되지만, 장래가 있는 아이는 비싸더라도 안심할 수 있는 한우를 먹여야 한다는 생각, 이런 생각이 진정 우리 부자만의 생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국민이 건강해야 나라도 튼튼해진다. 멜라닌 사건으로 다시 세상이 요동치고 있다. 정부에서도 이번 사건을 기회로 먹을거리에 대해서만 단호하게 대처해 주기를 바란다.

2008.10.23 20:59ⓒ 2008 OhmyNews
#먹을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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