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스물 두 살의 여인 옥아

[서평] 짓밟힌 조선 여인의 넋! <패랭이꽃>

등록 2008.10.23 21:44수정 2008.10.23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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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우봉규 장편소설 <패랭이꽃>

우봉규 장편소설 <패랭이꽃> ⓒ 동쪽나라

해방 후 친일파는 죄에 대해 책임을 지기는커녕 오히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양서 식민지 시기보다 더 굳건한 지배층으로 자리 잡았으며, 분단과 독제체제를 심화시켰다. 이로 인해 식민지에서 독립한  신생국으로 하여금 그 존립 기반이 될 최소한의 가치관과 역사의식을 무너지게 만들었고 잘못을 했으면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상식조차 부정하게 만들었다. 이것이  50여 년 넘게 지나면서 일반 대중에까지 일상화됨에 따라 정의는 칼을 쥔 자의 것이며 역사는 언제나 권력자의 편이라는 자조 섞인 역사인식을 갖게 했다. 그 결과 한국 사회는 마침내 잘못을 잘못으로 인정할 능력조차 상실한 사회가 되어버린 것이다. - 책 속에서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으로 있는 김민철씨의 이 말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지금 작금의 현실 상황을 목도하고 있다. 보수언론의 노골적인 권력 편들기와 민심 왜곡하기, 자기네들의 생각에 맡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실적 역사마저 자기네들 입맛대로 고치려는 역(逆) 역사왜곡하기.


그런데 난 내 귀가 닫혀있어서인지 모르지만 거의 들어보지 못한 게 있다. 보수우익이라고 자처하는 그들의 입에서 일제가 우리 민족에게 행한 행위에 대해서 사죄는커녕 사과하라는 말을. 그리고 위안부 문제 해결에 대한 어떤 노력의 말도.

점차 하나 둘 세상을 떠나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외침과 배상과 사과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말을 한승조 교수 같은 사람은 종군위안부 문제를 '수준 이하의 좌파적인 심성 표출의 하나에 종군위안부 문제가 있다.……전쟁 중에 군인들이 여성을 성적인 위안물로서 이용하는 것은 일본만의 것이 아니며 일본이 한국 여성을 전쟁 중에 그렇게 이용하는 것도 일시적인 것이자 예외의 현상이었다'고 버젓이 말하며 종군위안부 문제를 꾸준히 제기하는 이들에게 '노파를 내세워 보상금을 요구한다'고 비판하는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린데,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그래서 난 일제에 의해 짓밟히고 짓밟힌 한 조선 여인의 모습을 그린 소설 <패랭이 꽃> (우봉규 / 동쪽나라)을 읽으며 참으로 부끄러웠고 부끄러웠다. 소설의 여주인공인 옥아에게 조선의 남자로서 부끄러웠음이 솔직한 심정이다. 책을 읽는 내내 그랬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나서 덮은 다음에도 그랬다.

소설은 30년대 부터 50년 한국전쟁까지의 시간적 배경과 한반도와 만주 간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소설은 해방이 되기까지 일제의 위안부로 살아야 했던 여인 옥아의 삶과 조선의 백성들과 여인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조선 남정네들의 비겁함을 말없이 꾸짖고 있다.

소설은 옥아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아버지이면서 스승인 스님 회산과 함께 절에서 생활한다. 회산은 세상사에 관심이 없는 듯하지만 일제의 눈을 피해 만주 간도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독립군에게 은밀히 독립자금을 대준다.


스물두 살의 꽃다운 옥아. 회산과 생활하면서 옥아는 수정처럼 맑고 우아하게, 그러면서도 강직하고 곧게 자라난다. 사람들은 그런 옥아를 아씨 스님이 부르며 따른다. 그런 그녀가 위안부로 끌려가게 된다.

옥아가 처음 끌려간 곳은 기시와다 방적공장. 그곳에서 옥아는 어린 조선의 여인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게 되고 발각된다. 회산이 이구를 통해 그녀를 빼오려 하자 그녀는 거부한다. 함께 온 소녀들에게 우리말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결국 이것이 빌미가 되어 옥아는 관동군 소속 제17부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게 되고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러나 가시밭 같은 지옥의 늪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옥아는 자존감을 지킨다. 여자로서 하루에 수십 명의 남자를 받아주면서도 그녀는 자신보다 아파하는 조선의 여인들을 걱정한다. 그리고 조선의 여인들을 매일 같이 잡아다 일본군 위안부로 핍박하는 일본군 장교 야마모토, 아니 조선인 오한구를 경멸하고 대항하기도 한다.

야마모토, 아니 오한구(얼마나 많은 오한구 아니 야마모토가 이 나라의 젊은 꽃들을 꺾었는가), 그는 일본인의 충실한 개가 되기 위해 조선의 힘없는 여인들을 개보다 더 비참하게 죽인다. 스무 살도 안 된 소녀 무연이를 가마솥에 삶아 죽이는 만행을 저지른다. 그는 못을 박은 판자 위에 발가벗은 소녀의 몸을 굴린다. 분수처럼 피가 솟고 살덩이가 못 판에 너덜거리도록 조선의 소녀에게 고통을 주다가 가마솥에 넣어버렸다. 그런 모습을 위안부로 끌려온 소녀들과 옥아는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며 피눈물을 흘린다. 옥아를 그런 모습을 바라보면서 속으로 이렇게 외친다.

'임금에 대한 충성이 저쩌고를 밤낮으로 외다가 온 강토를 몽땅 유린당하고도 끝까지 양반의 머리칼이 어쩌고저쩌고를 읊는 그 조선 양반. 자신과 자손의 영화에만 눈먼 자여, 그대의 영혼이 세상에 남아 있다면 이곳에 와서 이 광경을 보라! 이곳에 와서 이 모습을 보라!'

이 장면을 단순한 작가의 소설적 상상력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패랭이꽃'은 소설이지만 소설이 아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종군위안부 여성들에 대한 역사적 진혼곡이다. 우봉규는 이 하나의 작품을 위해 종군위안부와 관련된 60여 편의 논문과 비평, 책들을 참고하고 연구했다.

그의 이런 노력을 역사학자인 성균관대 임경석 교수는 '우봉규는 일본군의 성노예가 되어 몸과 영혼이 갈가리 찢겼던 여성들의 고통스런 삶과 내면 의식을 그렸다. 더러는 핍진한 묘사를 통해서, 더러는 직접적인 설명을 통해서 그 참혹한 진상을 드러냈다. 역사학자들이 미처 감당하지 못한 소임을 한 작가가 문학적 형상화를 통해서 거뜬히 수행해 낸 셈이다. 역사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경의를 표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역사가들의 한 줄의 기록보다 문학 작품이 역사적 현장을 더 세밀하고 사실적으로 그리기도 한다. 우봉규의 소설 '패랭이꽃'이 그렇다. 작가는 옥아라는 한 여인을 통해 지옥과도 같은 위안부 여성들의 삶을 그렸다. 또 옥아를 통해 비겁한 조선의 남성들, 특히 있는 체, 잘난 체하는 양반들의 허위의식을 통렬하게 비꼬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비참하고 굴종된 삶 속에서도 옥아는 당당했고 자존감을 지켰다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 속 옥아를 떠올리면 눈물이 난다. 보잘 것 없고, 가슴이 저린 패랭이꽃이지만 자신만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순결한 꽃을 보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일제 강점기부터 전쟁까지의 시간은 우리 민족에게 질곡의 시간이다. 특히 일본 지배하에 있었던 36년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구조를 바꿔놔 버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감점기의 세월을 보내면서 우리는 소극적이고 타율적이 됐다. 민족에게 죄를 짓고도 죄를 뇌우치지 않은 뻔뻔한 사람이 되어갔고 늘어났다. 특히 이 나라의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더욱 그랬다. 그래서 작가 우봉규는 소설 속에 실제 역사적 인물들의 친일행적을 알리는 글을 중간중간 실어놓았다.

그 몇 사람의 이력(박스 기사)을 보면 우리가 정말 많이 모르고 모르구나. 우리의 교육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역사는 과거이면서 현재이고 미래이다. 우봉규의 '패랭이꽃'을 읽으면서 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들 뒤에서 웃는 사람들이 있었다

첫 번째 인물 김활란 : 그녀는 '여성박사 1호, 전문학교 유일한 여성교장, YWCA 창립자' 등의 아려진 인물로 해방 후 우리나라 대표적인 여성 지도자로 활약한 인물이다. 그러나 한때 그녀는 야마기 카쓰란으로 창씨하였다. 또 방송과 강연을 통해 일제이 침략정책을 미화하고 일반 여성이나 여학생들게 어머니나 딸, 동생으로서 징병과 징용을 촉하였고 동족 여성들을 일본군의 노리개로 보내기도 했다.

두 번째 인물 모윤숙 : 그녀 또한 한때 조선의 딸이기보단 동방의 딸을 노래하며 조선의 여인들에게 대동아 공영권의 이념을 교화시켰다.

세 번째 인물 김석원 : '용약! 군문에 진입하라. 홍대 무변한 황은에 보답하는 길은 성스러운 싸움터에 나가 죽을 각오로 영, 미 귀축의 적을 때려잡는데 있다.' 그의 이 열변에 부지한 조선인들은 감동의 도가니에 빠졌고 박수 연발이었다고 한다. 그는 일제가 만주를 침략할 때 기관총 부대 중대장으로 참전하여 진두 지휘관으로 엄청난 전승을 기록했다. 그는 후에 이 나라 군대의 가장 훌륭한 장군이 되었다.

이밖에도 노래 '울밑에선 봉선화야'로 유명한 홍난파, 청각장애를 극복하고 미술계의 거성이 된 운보 김기창 화백, 살기 위해서 친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불행한 여인, 훗날 이 나라의 대표적인 여성 정치가 김순천. 친일 잡지인 <조광>을 창간하고, 조선일보의 주인이 되어 일제에 의한 교화정책의 하수인 역할에 충실했던 사람, 방응모, 해방 후 이승만 정권이 2인자였던 이기붕의 아내 박마리아.

이들의 친일 행적이 소설 중간 중간에 사료와 함께 실려 있어 소설의 의미를 더해주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짓밟힌 조선 여인의 넋! <패랭이꽃> / 우봉규 / 동쪽나라/ 9,500원

종군위안부 문제를 다룬 소설로 고혜정 작가의 <날아라 금빛 날개를 타고>가 있다.
함께 읽으면 좋을 듯 싶다.


덧붙이는 글 짓밟힌 조선 여인의 넋! <패랭이꽃> / 우봉규 / 동쪽나라/ 9,500원

종군위안부 문제를 다룬 소설로 고혜정 작가의 <날아라 금빛 날개를 타고>가 있다.
함께 읽으면 좋을 듯 싶다.

패랭이 꽃 - 짓밟힌 조선 여인의 넋

우봉규 지음, 한인현 그림,
동쪽나라(=한민사), 2008


#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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