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놀이터는 우리가 만든다

강북구 청소년 문화 축제 기획하는 ‘세 개와 강아지’

등록 2008.10.30 14:13수정 2008.10.30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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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문화기획단 <세 개와 강아지> 강북구청소년문화축제 '추락'을 준비하고 있는 친구들이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준혁(경신고2), 송한솔(화계중3), 서인석(중앙고2), 송성호(북공고2)이다. 3년간 문화기획자로 활동하며, 올해에만 6번의 '청소년 문화 놀이터'를 기획했다.
청소년 문화기획단 <세 개와 강아지>강북구청소년문화축제 '추락'을 준비하고 있는 친구들이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준혁(경신고2), 송한솔(화계중3), 서인석(중앙고2), 송성호(북공고2)이다. 3년간 문화기획자로 활동하며, 올해에만 6번의 '청소년 문화 놀이터'를 기획했다. 고영준

“학교가 끝나면 이곳에서 보통 11시까지 있다가 갑니다.”


학원이 아니다. 청소년 문화공동체 ‘품’의 활동공간에서 무엇인가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서인석 학생(중앙고2) 말이다. 한판 재미나게 놀기 위한 ‘놀이터’를 준비하는데, 또래 친구들 십여 명이 한 달 동안 매일 저녁 모인다.

노래하고 춤추는 무대, 떡볶이‧순대‧파전을 파는 장터, 청소년 작가들이 문화 실력을 뽐내는 전시회, 축제에 참여한 사람도 하나 되어 즐기는 놀이마당. 이 모든 것을 청소년 문화기획단 ‘세 개와 강아지’가 이끌어 간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다 보니, 요리와 설거지도 척척이다. 부모님이 시키는 집안일이라고 생각했으면 오히려 못했을 것이다. 요리, 청소 등 살림을 제대로 해야 편안하게 작업할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알아서 몸을 쓴다. 집안일을 돕지 않는다고 구박받던 취재자의 청소년 시절을 상기하면, 이들이 보여주는 살림 능력은 한참 앞서 있다.

살림하는 능력을 기본이고, 기획과 판단, 문서작성까지 일을 추진하는 실력이 전문가 뺨친다. 3년간 청소년 문화기획자로 일하며 얻은 성과이다. 교실 밖과는 담을 쌓고 진학을 위해 암기하느라 지친 친구들과는 첫인상부터 달랐다. 올해 초 ‘세 개’는 <핫도그>라는 문집을 냈다. 한 해 동안 축제를 기획하면서 터득한 노하우를 담은 책이다. 이들이 보여준 상상력과 걸어온 길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세 개와 강아지’가 품과 접속한 것은 3년 전이다. 친구 소개로 처음 품에 발을 들어놓은 뒤 품에서 지내는 게 좋아 줄곧 함께 했다고 한다. 뭐가 그리 좋으냐고 물어보니 “재미와 사람이 있다!”라고 대답했다. 상상력을 실재로 구현하는 재미, 함께 꿈꾸고 실현하는 든든한 친구들이 있다는 말이다.


‘세 개와 강아지’라는 팀 이름이 독특하다. 세 개는 세 명 서인석과 김준혁(경신고2), 송성호(북공고2)를 뜻하고, 강아지는 올해 새롭게 영입한 송한솔 양(화계중3)을 지칭한다. 초기에는 ‘여섯 개’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말 그대로 회원 여섯 명이 움직였다는 소리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세 명만 남았다. 이어 새로운 회원 ‘강아지’를 받아들인 것이다.

매일 저녁 축제를 기획하는 일을 하는데 학업을 제대로 하는 건지 괜히 걱정스러웠다. 이 친구들은 “어른들은 다 똑같은 것만 묻는다. 뭐 그러느냐”고 한방 먹였다. 자신이 정말 좋아하고 필요하다고 느끼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게 진짜 공부 아니겠느냐는 말에 내 편견을 수정해야 했다. 주변에서 걱정하는 눈빛은 두렵지는 않다고 말했다. 신명나고 우직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활동에 열매들이 나오면서, 부모님들도 인정해주시는 눈치다.


이들의 장래 희망에 대해서 물었다. 공부 걱정하듯이 이번에도 ‘그래가지고 뭐 먹고 살거냐’는 잔소리도 들렸을지 모르겠다. 이번에도 예사롭지 않은 대답이 쏟아졌다.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고 싶다.”(김준혁)
“교사나 공무원, 직장인 같은 제도권에 있는 직업이 아닌 기타 등등의 일을 하고 싶다.”(서인석)
“순간을 잘 포착하고 담아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손성호)

새내기인 송한솔 양은 “부모님의 영향 속에 있지만,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사’자 들어가는 직업들이 튀어나오는 것과는 한참 달랐다.

이들은 긴 시간 호흡을 맞춰서 서로가 무엇을 잘하는지 잘 알고 있다. 준혁이는 디제이(DJ), 인석이는 모델, 성호는 카메라맨, 한솔이는 엠씨(MC)가 어울린다고 했다. 자신이 잘 하는 것을 꽁꽁 숨기고 주어진 학업에만 몰두했던 취재자의 청소년 시절이 떠올랐다. 그때는 친구가 있어도 나에게 무슨 일이 어울리는지 이야기해줄 수 없었다. 내가 친구들에게 보여준 게 별로 없었으니.

지금 이 시간(밤 열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에게 할 말 없냐고 했다. 거침없는 말을 쏟아낼 줄 알았는데, 이번에도 내 예상은 빗나갔다. 공부가 자기 적성에 맞으면 열심히 하는 것이고, 자기들처럼 이런 일을 하는 게 맞으면 하는 것이지 누가 누구에게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청소년 놀이터가 ‘노래방’과 ‘PC방’로 획일화 되어가는 요즘, 새로운 놀이 문화를 만들어 가는 우리 친구들은 ‘문화독립운동가’ 같다. 이들이 만들어 낼 새로운 놀이문화가 기대된다.

“기획은 특별한 사람이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어렵지도 않고, 오히려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으니 재밌다. 같이 함께 하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생명평화연대가 발행하는 인수동 마을신문 <아름다운마을>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생명평화연대가 발행하는 인수동 마을신문 <아름다운마을>에도 실렸습니다.
#청소년 문화기획자 #세 개와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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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에 살고 있습니다. 마을에서 일어나는 작고 소소한 일들, '밝은누리'가 움틀 수 있도록 생명평화를 묵묵히 이루는 이들의 값진 삶을 기사로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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