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된 집에 아직도 남아 있는 딸 아이의 생활계획표.
장윤선
20년 전 상도4동 산 65번지 달동네에 들어온 김씨는 1995년 1000만원 주고 이 집을 전세로 얻었다.
토지의 소유주는 왕족의 사당을 관리하는 '사당 관리인'이었다. 그러나 그 땅위에 무허가 주택이 지어졌고, 매매와 전월세 계약도 자유롭게 이뤄졌다. 가옥주가 싼값에 임대해 줬고, 김씨는 가격에 만족해 이 집을 선택했다.
김씨뿐 아니라 이 동네에 둥지를 튼 대개의 사람들은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0만원, 전세 200만원 등 아주 저렴한 값에 전월세를 살고 있다.
그런데 지난 2006년 이 사당관리인이 한 민간주택 건설회사인 S사에 이 일대의 땅을 팔면서 무허가 주택들에 대한 '부당이익금 반환 및 건물 퇴거·철거 소송'이 진행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7년 5월 서울시 도시건축공동위원회는 이 동네를 주택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했다. 그해 12월 20일 재개발조합 설립인가가 났고, 이 일대 5만9114㎡(1만7882평)에 대한 재개발 사업이 본격화 됐다.
이 사업에 따라 이 지역에는 용적률 236.69% 이하, 층고 17층 이하 범위에서 56㎡(17평형-임대) 160가구, 79㎡(24평형-일반 아파트) 176가구, 109㎡(33평형) 366가구, 161㎡(49평형) 159가구 등 모두 861가구가 들어설 예정이었다.
아무리 넓은 토지를 소유해도 재개발이 시작되면 아파트 분양권은 소유주 당 1장뿐이다. 동작구청의 재개발사업 진행에 따라 S사는 결과적으로 아무런 이익을 보지 못하게 됐다.
상황이 이쯤에 이르자 S사는 동작구청이 추진하는 재개발사업을 인정할 수 없다며 세입자들과 구청을 상대로 무려 12개의 민사소송과 5개의 행정소송을 냈다.
세입자와 동작구청에 걸린 17개의 민사와 행정소송들동작구청 도시관리과의 한 관계자는 "S사는 재개발 추진에 제동을 거는 소송을 줄곧 제기하고 있다"며 "이 소송이 다 끝나야만 세입자들에 대한 이주대책도 세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원 소유주인 사당 관리인과 현 소유주인 S사가 동작구청과 재개발조합, 이 지역 세입자들을 상대로 낸 소송은 크게 4가지다. ▲ 부당이익금 반환 및 건물 퇴거·철거 소송 ▲ 재개발 구역지정 결정취소 소송 ▲ 조합설립인가 취소 소송 ▲ 재개발사업 추진위원회 승인처분 무효 확인소송 등이다.
이 가운데 승소한 '퇴거·철거 소송'을 기반으로 S사는 상도4동 달동네를 철거하고 있다. 철거하는 과정에서 집을 못 비워주겠다고 버티는 세입자들과 용역 사이에 '폭력사건'이 불거졌다.
문제는 이들이 동작구청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동작구청이 패소하면 상도4동 세입자들은 얼마 안 되는 주거이전비조차 받을 길이 없게 된다는 점이다. 동작구청이 승소해도 쥐꼬리만한 주거이전비로 적당히 갈 곳도 없지만, 그마저도 받을 길이 끊기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 동네 주민들은 더 애를 태우고 있다.
4인 가족과 장인·장모가 함께 산다는 박아무개(53)씨는 갈 곳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여기 살던 사람, 딴 데 가 살기 어려워요. 저만해도 보증금 150만원에 월세 10만원을 내고 삽니다. 이렇게 5년만 버티면 재기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재개발 때문에 쫓겨나게 되면 정말 갈 곳이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