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9년 완공된 에펠탑은 당시 흉물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100여년이 지난 지금 에펠탑은 파리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입니다. 우리에게는 사람과 함께 나이를 먹어가는 근대건축물이 생길 수 없을까요. 계속 성형을 하며 젊음을 지키는 도시와 손수 가꾸며 곱게 늙어가는 도시, 과연 우리가 바라는 도시 모습은 무엇일까요. 여기 오랫동안 사람들과 추억을 나누다 쓸쓸히 사라졌거나 사라질 운명에 처한 건축물들을 소개합니다. 도시가 곱게 나이를 먹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편집자말> |
▲ 최근 철거가 시작된 온양온천역사 ⓒ 박성규
▲ 최근 철거가 시작된 온양온천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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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구 온양온천 역사(驛舍) 해체작업이 시작됐다. 1922년 6월 1일 만들어진 역사가 기억 속으로 사라질 날이 멀지 않았다.
충남 아산이 고향인 내 어린 시절 기억에는 온양온천역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옛기억이나 추억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오래된 낡은 역사일 뿐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특별할 수 있다. 옛 추억이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썰렁하고 허탈한 느낌이다.
당시 구 온양온천역 광장에는 작지 않은 분수대가 있었다. 광장엔 홍합과 번데기·다슬기·피조개 등을 먹기 좋게 만들어 파는 리어카 장사꾼들이 많았다. 또 극장도 있었다.
그곳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다. 보기에도 멋진 양복과 정장을 한 남녀를 자주 볼 수 있었고…. 아산으로 신혼여행을 온 사람들이었다. 역사가 근 1300년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인 온양온천은 당시 제주도와 함께 가장 인기있는 신혼여행지였다고 한다.
마땅히 특별한 재미를 느낄 만한 곳이 없었던 나를 비롯한 비슷한 또래 아이들은 온양온천역 광장을 자주 찾았다. 어른들도 마찬가지였다. 군침을 돌게 하는 먹을거리가 있었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볼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때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나와 성룡이 되기도 하고, 어느 때는 이연걸, 어느 때는 이소룡이 돼 그들의 무술을 흉내 내기도 했다. 그 때 내 모습은 권상우가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 장면 그대로였다.
영화를 공짜로 볼 수 있다는 유혹에 빠져 일명 개구멍이라고 불리는 담벼락에 생긴 구멍을 통해 극장 안으로 들어가 영화를 즐기기도 했다. 그러다 들켜 귀볼을 잡혀 끌려나온 적도 있었으며, 군밤도 적지 않게 맞았다.
▲ 구 온양온천역사의 철거 전 모습 ⓒ 박성규
▲ 구 온양온천역사의 철거 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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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날에는 분수대 안으로 들어가 물에 발을 담그고 땀을 식히며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냈다. 어른들에게 혼날까봐 가끔 늦은 시간 사람들이 없는 틈을 노려 헤엄을 친 적도 있다.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홍합국물이 끝내줬다. 성인이 돼 그 때 그 국물맛을 떠올리고 찾았지만 결국 그 맛을 찾지는 못했다. 그래서 아쉬움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필자에게 온양온천역은 그런 곳이었다. 놀이터 같은 곳. 그때마다 항상 묵묵히 나를 지켜봐 준 곳 중 하나가 오래된 친구 같은 구 온양온천 역사다. 극장이나 다른 건물들은 그 모습이 없어지거나 바뀐 지 이미 오래다.
이런 사연으로 인해 나에게는 어린 시절 기억을 가장 많이 떠올릴 수 있는 대표 장소가 구 온양온천역이다. 마치 추억을 담아 놓은 주머니 같은 곳이랄까.
나는 어릴 적 온양온천이 그렇게 유명한 곳인지 몰랐다. 그 유명세는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서 알게 됐다.
"온양온천은 국내에서는 가장 오래된 온천으로 백제·통일신라 시대를 거쳐 그 역사가 근 1300년이 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고려시대에 온수군이라 불리었던 것으로 보아 실제 온천의 역할을 수행해 온 기간은 600여년이 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세종대왕 15년(1433년) 정월에 안질치료차 행차한 후, 세조·현종·숙종·명종·영조·정조 등 여러 임금께서 온궁을 짓고 휴양이나 병의 치료차 머물고 돌아간 다수의 기록과 유적들이 남아있으며, 또한 현종·숙종·명종 때에는 온천에 임행하여 과거를 보게하여 인재를 발굴하였던 기록이 남아 있다."
아산시 문화관광 홈페이지에 나온 내용이다.
그러한 온양온천의 옛 추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던 상징적 건축물인 구 온양온천 역사가 지금 해체되고 있으며,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옛 추억을 더듬으러 아산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기억할 만한 곳은 이제 현충사가 유일할 것이다.
옛 추억을 더듬으려 아산을 찾는 사람이 있다면 기억 속에 그때를 기억할 만한 곳은 이제 현충사만이 유일할 것이다. '온양'이라는 지명도 사라진 지 오래고…. 이처럼 구 온양온천이 허무하게 사라지기 전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 우여곡절을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그 이유는 전국 어디에선가 이뤄지고 있을 제2·제3의 구 온양온천역 문제를 환기하기 위함이다.
▲ 아산시가 제시한 철도하부공간(구 온양온천역사 포함)에 조성될 광장의 조감도. ⓒ 박성규
▲ 아산시가 제시한 철도하부공간(구 온양온천역사 포함)에 조성될 광장의 조감도.
ⓒ 박성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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