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후보 TV토론민주당 대선 후보 버락 오바마와 공화당 대선 후보 존 매케인.
AP=연합뉴스
일단 미러간의 제2의 냉전 분위기의 원인 제공은 미국측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주도의 나토는 살금살금 영향력을 확대해 상당수의 동유럽 국가들은 물론이고, 구소련 국가들에까지 그 영향력을 확대해나갔다. 이는 러시아의 위협 인식을 크게 강화시키면서 "만약 러시아가 멕시코와 캐나다와 동맹을 맺는다면 미국이 가만히 있겠느냐"는 불만을 폭발시켰고, 이는 결국 그루지야 사태로 이어졌다.
여기에 더해 미국이 러시아의 강력한 반발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체코 및 폴란드와 미사일방어체제(MD) 협정을 체결하면서 미러간에는 '말의 3차 대전'이 벌어졌다. 러시아 군부는 "폴란드의 MD 기지가 러시아의 핵미사일 공격을 받을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했고, 러시아 외무장관은 "우리의 대응은 외교로만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 군사적 조치 가능성까지 언급하고 나섰다.
이처럼 러시아가 군사적 경고를 하고 나서자, 미국도 맞대응에 나섰다.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MD 서명식을 마치고, "러시아는 지금이 (냉전시대인) 1988년이 아니라 2008년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미국은 폴란드의 영토를 미국의 영토처럼 방어하고자 하는 확고한 안전보장 조약을 갖고 있다"고 응수했다. 러시아가 폴란드를 공격하면 미국이 개입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러시아에 엄포를 놓을 수는 있지만, 러시아의 반격을 무마시킬 수 있는 힘은 부족한 상황이다. 반면, 러시아는 미국의 이익을 위협할 수 있는 다양한 카드를 갖고 있다. 미국에 버금가는 핵보유국이자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러시아는 유엔에서 사사건건 미국의 발목을 잡음으로써 미국을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다.
또한 유럽연합이 가스 수입의 3분의 1을 러시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러시아는 에너지 카드를 이용해 미국과 유럽연합의 결속에 제동을 걸 수 있다. 그루지야 사태가 터진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의 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까닭이기도 했다.
러시아의 무기수출 카드도 주목된다. 이미 러시아와 시리아는 차세대 지대지 미사일을 비롯한 무기거래를 추진해왔다. 그런데 지난주 미국이 알-카에다 소탕을 명분으로 시리아 영토를 공격하면서 시리아에서는 반미 여론이 극에 달하고 있고, 이는 러시아제 무기 구매로 이어질 가능성을 높여 놓았다.
또한 러시아는 미국이 흑해에 군함을 파견하자, 베네주엘라에 전폭기와 순양함을 파견하면서 맞불을 놓고 있다. 더구나 러시아와 베네주엘라 정부는 지난주 2009년에 합동 공군훈련을 실시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미러 강경파, 이란을 재물로 삼나?관심의 초점은 이란으로 모아지고 있다. 다음 전쟁터는 이란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소문이 횡횡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경제위기에 직면한 미국과 러시아의 강경파들이 경기부양책의 하나로 '이란 전쟁'을 유도하거나 방관할 가능성이 있다.
우선 오바마와 매케인 모두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란의 핵무기 보유를 저지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다만 오바마는 '대화를 통한 해결'에, 매케인은 '제재와 압박을 통한 해결'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이란 핵무기 보유 저지의 핵심에는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중단이 있다. 그런데 이란은 이를 '양보할 수 없는 권리'라고 못 박고 있다. 이란 핵문제 해결이 북핵 해결보다 훨씬 까다로운 이유이다.
이에 따라 차기 미국 정부는 한편으로는 이란의 핵개발을 저지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을 통한 경기부양'을 위해 이스라엘의 공격을 방조하거나 이스라엘과 함께 공격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특히 시기적으로 볼 때, 이란이 우라늄 농축 활동을 계속하면 내년이나 후년 경에 무기급 고농축 우라늄 확보가 가능하다는 평가도 있다. 이 때까지 외교적 해법이 나오지 않으면, 미국과 이스라엘에서는 '예방적 선제공격론'이 맹위를 떨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는 러시아의 계산과도 복잡하게 맞물려 있다. 러시아는 한편으로는 미국 주도의 이란 제재에 김을 빼면서 상황을 관리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란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포기하면 러시아가 핵연료를 제공하겠다'는 중재안을 제시하는 등 외교적 노력을 기울여왔다. 그러나 2008년 들어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러시아 경제까지 위태로워지면서 러시아의 행보가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즉, 러시아도 경기부양책의 하나로 이란 전쟁을 방조하거나 유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러시아의 주가와 유가 모두 반토막이 난 상황이다. 이는 '고유가' 덕분에 가능했던 푸틴의 대내외적 지도력의 위협 요인으로 간주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은 러시아에게 큰 매력이 될 수 있다.
이란 전쟁은 유가 폭등을 가져와 러시아에게 막대한 소득을 안겨주고, 중동에서 반미 열풍을 더욱 거세게 만들어 러시아가 반대급부를 얻을 수 있으며, 이란과 시리아 등에 무기 판매를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이란의 핵무장 능력이 약화되는 것 역시 러시아로서도 마다할 이유가 없다. 2012년 대선 재출마을 저울질하고 있는 푸틴의 계산이 주목되는 까닭이다.
이처럼 이란이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 확보를 비타협적인 목적으로 삼고, 미국과 러시아가 저마다의 셈법으로 전쟁을 불사하거나 방조한다면, 세계질서는 엄청난 회오리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그 여파는 한반도에까지 미칠 수밖에 없다. 금융위기와 석유위기가 맞물리면 한국경제는 회복 불능 상태에 빠져들 수 있고, 북한은 핵무기 보유를 더욱 정당화하려고 할 것이며, 중동 전선이 확대되면 미국으로부터 파병 요구도 나올 수 있다.
이에 따라 관심의 초점은 ‘부시 이후의 미국’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느냐에 모아진다. "러시아는 적도, 친구도 아니다"는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오바마의 러시아에 대한 적대감은 상대적으로 덜 하다. 러시아와의 관계 악화에도 불구하고 오바마는 러시아와의 핵무기 감축 협상에 다시 나서겠다고 공언한다. 러시아가 극도로 경계하는 동유럽 MD 배치에도 신중한 편이다. 매케인이 사실상 유엔을 대체할 '민주주의 동맹'을 만들어 러시아를 비롯한 비민주 국가를 압박하는 것을 선호하는 반면에, 오바마는 유엔 개혁에 방점을 찍고 있다.
정책을 놓고 볼 때, '오바마의 미국'이 냉전의 유령을 물리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박수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 차기 미국정부의 화해 정책에 푸틴의 러시아가 호응할 것이라고 장담하기도 어렵다. 더구나 차기 미국 대통령과 푸틴은 2012년 대선을 머릿속에 그리지 않을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정욱식 기자는 평화네트워크(www.peacekorea.org)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평화네트워크에서는 미국 대선 직후인 11월 6일 '미국 대선과 세계질서, 그리고 한반도'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 계획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를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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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네트워크 대표와 한겨레평화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관심 분야는 북한, 평화, 통일, 군축, 북한인권, 비핵화와 평화체제, 국제문제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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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이후의 미국'은 제2의 냉전을 막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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