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원 방 빼! 이주비 3만원 줄게"
재개발 보상도 못받고 다시 거리로

[부동산 빈곤층⑤] 주거빈곤의 종착역 쪽방·고시원 사람들

등록 2008.11.09 19:01수정 2008.11.10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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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10.21 대책'으로 부동산 살리기에 나섰다. 국민 세금으로 그동안 폭리를 취했던 건설사를 살리는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부는 "가계 주거부담 완화"라는 명분을 내건다. 더구나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든 폭락하든 항상 주거 불안에 시달리는 빈곤층을 위한 대책은 어디에도 없다. <오마이뉴스>는 몇 평짜리 보금자리에서마저 내쫓기고 있는 '부동산 빈곤층'의 절규를 듣고 대안을 모색해본다. [편집자말]
 서울 용산구 동자동 동자4구역 재개발 지역.
서울 용산구 동자동 동자4구역 재개발 지역.장윤선

"기자님, 우리 사는 거, 이런 거 좀 쓰시면 우리 생활이 좀 바뀔 수 있는 거요?"

말문이 막혔다. 뭉툭한 손마디로 종이컵에 일회용 커피분말을 쏟은 뒤 껍질로 훌훌 저어 불쑥 내밀던 50대 아저씨. 그는 기자가 취재 오면 꼭 이 말을 묻는다고 했다. IMF 이후 지난 10년간 쪽방촌에 몰려든 기자는 많았지만 삶의 질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는 항변 같았다.

서울 남대문경찰서 뒤편 양동 쪽방촌. 일제시대 적산가옥으로 보이는 옛 여관촌 나무대문은 늦가을 찬바람에 활짝 열렸다 도로 쾅 닫혔다. 사람 하나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복도. 어두컴컴한 시멘트 길을 따라 양옆으로 다닥다닥 방문이 붙어 있고, 문을 열면 두 평 남짓 삶터가 있었다.

그가 말을 이었다. "보세요."

간신히 한 명 누울 수 있을까. 관을 두 배로 부풀린 듯한 좁은 방엔 소형 냉장고가 있었다. 냉장고 위에는 구형 칼라TV, 그 위엔 라디오. 방바닥엔 전기장판·담요·재떨이와 담배·칫솔· 치약·양치컵·비누·라면·신발을 올려놓도록 사각으로 접힌 신문…. 창은 없었다. 사람의 의식주가 한 공간에 몽땅 섞여있다.

그는 이명박 정부를 비난했다. 사회복지제도가 더 축소돼 올 7월부터 '자활장려금' 9만원이 끊겼다는 것이었다. 쪽방 생활자 중 기초수급자가 많은데 매월 정부로부터 받는 37만원 가운데 9만원이나 깎다니 "아주 나쁜 놈들"이라는 비판이었다.

그는 이 집에 월 22만원을 내고 살았다.  이전에는 남는 돈 15만원으로 부식거리와 쌀, 담배와 술을 샀다. 그러나 9만원이 깎이는 바람에 이제 생활비는 매월 6만원에 불과하다.


이 곳도 언제든지 재개발 가능성이 있다. 민간업자들이 이미 몇채의 주택을 구입했다. 만일 재개발로 헐린다면 그는 다시 서울역 지하도에 종이 박스를 깔고 누울 수밖에 없다.

 헐린 고시원. 이미 문짝마저 뜯어내 건물 내부는 이미 흉물스럽게 변해 있었다.
헐린 고시원. 이미 문짝마저 뜯어내 건물 내부는 이미 흉물스럽게 변해 있었다.장윤선

밑바닥 서민들의 하루쉼터, 개발로 허물어지나


1959년 이곳에 들어와 정착한 '양동 552번지' 쪽방 주인은 "옛날 이 일대가 뽕나무밭이었다, 없이 살아도 참 아기자기한 달동네였는데 개발 광풍이 대단하다"며 "일용직 막노동으로 사는 사람들인데 단돈 7000원 내고 하루 잘 숙소마저 없어진다면 그들에겐 갑갑한 노릇"이라고 혀를 찼다.

입동을 하루 앞둔 6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고시원촌은 을씨년스러웠다. 골목길 하나 사이로 이미 철거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지하철 4호선 서울역 11번 출구로 나오면 높은 빌딩들이 겹겹이 둘러쳐 있지만 그 사이의 동자4구역 재개발은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E고시원에 사는 박아무개(45)씨. 최근 그는 하루에 한번 꼴로 주인에게 전화를 받는다. 방을 빼달라는 주문이다. 그 때마다 박씨는 "대책 없이는 단 한발짝도 나갈 수 없다"고 버틴다. 말은 그렇게 내뱉지만 솔직히 속은 불편하다.

3개 층에 모두 40명이 살던 고시원이었지만 지금은 박씨를 포함 너댓명만 남아있다. 방을 뺀 경우에는 문짝을 뜯어낸 뒤 유성페인트로 '이주'라 써놓아 흉물스럽다.

문이 달린 방은 사람이 사는 곳이고, 문을 뜯어낸 방은 사람이 떠난 공간이었다. 관리하지 않는 정수기와 낡은 세탁기, 푸른색 간판만이 그나마 고시원임을 알수있게했다. 그가 사는 방은 가로 130㎝, 세로 250㎝다. 사람 하나 누우면 꽉 차는 아주 비좁은 공간이다. 그는 서울역에서 7년간 노숙했다.

매일 1000원씩 돈을 내고 짐을 맡겼는데 그보다는 고시원이 나을 것 같아 인근에서 가장 값이 싼 이 곳으로 이주했다. 한달 방값은 13만원. 2006년 9월 23일부터 이 방에서 살았다. 주민등록상 주소지도 이 고시원으로 돼있다. 만 2년간 이 고시원에서 '월세살이'를 한 셈이다.

 박아무개씨의 고시원 방. 그는 2년간 이 방에서 살았다.
박아무개씨의 고시원 방. 그는 2년간 이 방에서 살았다.장윤선
2007년 9월 용산구가 이 동네를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했지만 박씨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설마 살던 사람을 무작정 내쫓겠나 했다. 어떻게든 관청에서 대책을 마련해줄 거라고 믿었다. 그렇지만 그것은 '헛된 기대'였다.

"'오늘이라도 당장 나가라' 어느 때는 직접 찾아와 방문을 두드리죠. '당신이 나가야 우리도 보상금 잔금 받을 수 있다, 당신이 버티니 우리도 손해'라고 윽박질러요. 심지어 남아있는 고시원 생활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걸겠다고 협박도 해요. 그렇지만 뭐…."

그에게 뾰족한 대안이 있을 리 만무하다. 젊은 시절부터 옷가게 점원, 아파트 경비원, 건설업 임부, 자활근로 별별 일 다 했지만 손에 쥔 돈은 없다. 그나마 월 13만원을 내고 짐이라도 넣어둘 공간을 확보해둔 정도다. 여기서 밀려나면 정말 갈 곳이 없다고 했다.

 이아무개씨의 방. 그는 매월 18만원을 주고 이 방에 살고 있다.
이아무개씨의 방. 그는 매월 18만원을 주고 이 방에 살고 있다.장윤선

"고시원은 고시 준비하는 곳이라서 이전비 못 준다"

H고시원에 살던 이아무개(43)씨도 박씨와 처지가 같다. 그는 3년 전부터 동자동에 살았다. 그 전에는 서울역에서 노숙했다. 그는 지체장애3급으로 다리가 불편하다. 어릴 때부터 소아마비를 앓은 탓이다.

그 역시 지난 8월 주인으로부터 "나가라"는 압력을 받았다. 주인은 살던 사람 나가는 것이니 인정상 이주비 7만원을 주겠다고 했다. 그러나 주인이 선심 쓰듯 건넨 그 돈은 재개발조합측이 도의적으로 건넨 금액 가운데 일부였다.

이 고시원에서 같이 살던 이들 가운데는 3만·5만원을 받고 떠난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용산 동자동에서는 '7만원' '5만원' '3만원'이라 불리는 이들이 있다.

주인이 이씨에게 7만원만 준 것은 건 이씨가 '미 해당자'이기 때문이다. '재개발 사업시행 인가 이후 공람 공고일'을 기준으로 그 전부터 살던 사람이라면 해당자로 판명해 일정부분 보상금을 주겠지만 그 후부터 살던 사람은 해당사항이 없으므로 아무것도 줄 수 없다는 입장이라는 것.

이씨는 다만 얼마간의 이주보상비라도 받을 생각으로 용산구청과 서울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준비 중이다.

동자동 쪽방 고시원 생활자들과 함께 사회복지운동을 벌이는 '동자동 사랑방' 대표 엄병천씨는 "고시원 생활자도 엄연히 주거용으로 살았기 때문에 당연히 세입자 대책을 세워줘야 한다"며 "임대 아파트는 커녕 주거이전비마저 주지 않으려고 하는 데는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엄씨는 "용산 동자4구역 재개발조합 법무팀장은 고시원 생활자들을 주거생활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태도"라며 "'고시원은 공부하는 곳으로 업무용 공간이기 때문에 주거공간이 아니다, 따라서 주거이전비도 줄 수 없다'는 입장인데 경기도 소방방재청에 따르면 고시원 생활자의 80%가 주거형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고 밝혔다. 

 용산구 동자동 재개발 예정지. 이곳에는 고시원, 쪽방 등이 많다.
용산구 동자동 재개발 예정지. 이곳에는 고시원, 쪽방 등이 많다.장윤선
재개발조합 측에서는 '용산 동자동 고시원 생활자들을 주거생활자로 인정해 주거이전비 보상을 해주면 향후 전국 고시원 생활자들이 너도나도 해달라고 할 게 뻔하다"는 입장인데 이것이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라고 비판했다.

현재 동자동사랑방 등은 세입자 대책을 요구하며 재개발조합 측과 싸움을 벌이고 있다. 상가세입자들을 제외하면 5명이 남은 상태인데 이들에 대한 주거이전대책을 세우라는 주문인 것이다.

이런 상황이지만 이씨는 아직 꿈이 있다. 늦깎이라도 결혼해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어렵겠지요. 번듯한 직장도 없고, 전세비도 없으니까요. 누가 시집 오겠어요? 그래도 아직 젊으니까 일자리 구하고 전세방을 얻으면 결혼할 수 있겠죠? 기자님들이 이렇게 관심을 갖고 계신데 분명 뭐가 될 거라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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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빈곤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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