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린 고시원. 이미 문짝마저 뜯어내 건물 내부는 이미 흉물스럽게 변해 있었다.
장윤선
밑바닥 서민들의 하루쉼터, 개발로 허물어지나
1959년 이곳에 들어와 정착한 '양동 552번지' 쪽방 주인은 "옛날 이 일대가 뽕나무밭이었다, 없이 살아도 참 아기자기한 달동네였는데 개발 광풍이 대단하다"며 "일용직 막노동으로 사는 사람들인데 단돈 7000원 내고 하루 잘 숙소마저 없어진다면 그들에겐 갑갑한 노릇"이라고 혀를 찼다.
입동을 하루 앞둔 6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고시원촌은 을씨년스러웠다. 골목길 하나 사이로 이미 철거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지하철 4호선 서울역 11번 출구로 나오면 높은 빌딩들이 겹겹이 둘러쳐 있지만 그 사이의 동자4구역 재개발은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서울 용산구 동자동 E고시원에 사는 박아무개(45)씨. 최근 그는 하루에 한번 꼴로 주인에게 전화를 받는다. 방을 빼달라는 주문이다. 그 때마다 박씨는 "대책 없이는 단 한발짝도 나갈 수 없다"고 버틴다. 말은 그렇게 내뱉지만 솔직히 속은 불편하다.
3개 층에 모두 40명이 살던 고시원이었지만 지금은 박씨를 포함 너댓명만 남아있다. 방을 뺀 경우에는 문짝을 뜯어낸 뒤 유성페인트로 '이주'라 써놓아 흉물스럽다.
문이 달린 방은 사람이 사는 곳이고, 문을 뜯어낸 방은 사람이 떠난 공간이었다. 관리하지 않는 정수기와 낡은 세탁기, 푸른색 간판만이 그나마 고시원임을 알수있게했다. 그가 사는 방은 가로 130㎝, 세로 250㎝다. 사람 하나 누우면 꽉 차는 아주 비좁은 공간이다. 그는 서울역에서 7년간 노숙했다.
매일 1000원씩 돈을 내고 짐을 맡겼는데 그보다는 고시원이 나을 것 같아 인근에서 가장 값이 싼 이 곳으로 이주했다. 한달 방값은 13만원. 2006년 9월 23일부터 이 방에서 살았다. 주민등록상 주소지도 이 고시원으로 돼있다. 만 2년간 이 고시원에서 '월세살이'를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