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끈한' 빼빼로야, 내 사랑을 고백해줘

여덟 여자의 '빼빼로 데이' 감동 프로젝트

등록 2008.11.10 11:12수정 2008.11.10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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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11월 11일, 부산의 여중생들이 서로 '특별한' 선물을 주고 받은 것에서 유래된 '빼빼로 데이'. 그 선물은 바로 우리에게 친숙한 과자 빼빼로인데, 빼빼로처럼 날씬해지라는 의미에서였단다.


그 이후 이 날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져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기념일로 자리 잡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날씬한 몸매를 위해서가 아닌, 연인, 친구, 가족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날로 바뀐 거랄까.

빼빼로 데이를 앞두고 길거리 매장에 각양각색의 빼빼로가 가득 진열되어 있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파는 그저그런 상품엔 눈도 주지 않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역삼동에 위치한 초콜릿공방 카카오트리에 모인 여덟 처자들이 그 주인공.

빼빼로 데이를 앞두고 그 누구보다 특별한 선물을 하기 위해 한 자리에 모인 이들의 속 깊은 사랑, 그 사연 한 번 들어보자.

빼빼로 만들기, '생각대로' 안 되네

a  참가자 연보라(18)씨가 직접 만든 빼빼로의 모양을 살펴보고 있다.

참가자 연보라(18)씨가 직접 만든 빼빼로의 모양을 살펴보고 있다. ⓒ 이지수




지난 7일 오후 1시, 쇼콜라티에 송승희씨가 운영하는 초콜릿 공방 '카카오트리'의 문을 열자 달콤하고 향긋한 초콜릿 향기가 먼저 기자를 맞았다.   

이윽고 이날의 주인공들이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냈다. 남다른 선물을 준비하는 이들 모두는 잔뜩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박선아(26)씨는 쑥스러워하면서도 "내일이 남자친구 생일인데, 생일과 빼빼로 데이를 기념해서 선물과 함께 특별한 빼빼로를 주고 싶어 참가하게 됐다"고 말했다.  


전국을 뒤흔들었던 멜라민 파동이 계기가 되기도 했다. 매장에서 산 초콜릿에 혹시라도 멜라민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민혜련(22)씨는 "내가 먹는 것은 신경 쓰지 않아도 선물하는 것만큼은 안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a  참가자인 김시현(20)씨가 빼빼로의 초콜릿을 빨리 말리기 위해 입으로 바람을 불고 있다.

참가자인 김시현(20)씨가 빼빼로의 초콜릿을 빨리 말리기 위해 입으로 바람을 불고 있다. ⓒ 이지수

얼마 뒤 참가자들이 모두 모이고, 다양한 색깔의 초콜릿 액체가 담긴 컵이 탁자에 나란히 놓였다. 참가자들은 빼빼로 막대를 초콜릿에 깊숙이 담갔다가 꺼내서 조심스럽게 굳혔다. 일면 간단해 보이지만, 말만큼 쉽지 않은 공정이었다.

일단 쭉쭉빵빵(?) 미끈한 빼빼로를 만들려면 끈질긴 '인내심'이 필요했다. 초콜릿이 굳을 때까지 빼빼로를 들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몇 분 뒤 한쪽 손에 빼빼로를 두 개씩 든 연보라(18)씨의 표정은 힘겨워 보였다. 초콜릿이 마를 때까지 계속 들고 있으려니 팔이 너무 아팠던 것.

초콜릿이 굳지 않은 채로 쟁반 위에 올려놓으면, 초콜릿이 쟁반에 붙어버려 칼로 초콜릿을 잘라내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긴다. 뿐만 아니라, 미끈한 빼빼로가 아니라, 울퉁불퉁 모양이 자연스럽지 않은 빼빼로가 탄생하기에 여간 신경쓰이고 번거로운 작업이 아니었다.

그런데, 참가자 박선아(26)씨가 팔이 아프지 않게 빼빼로를 빨리 굳히는 방법을 찾아냈다. 빼빼로를 들고 입으로 바람을 불어 건조시키는 것이다. 이 방법은 꽤 효과가 있었다. 곧 다른 참가자들도 선아씨처럼 빼빼로를 들고 바람을 불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선아씨는 다른 불평을 호소했다.

"입으로 계속 부니까, 이젠 머리가 아파."  

"부러진 빼빼로 막대, 또 없나?"

a  참가자 박선아(26)씨가 빼빼로를 만들다가 손에 묻은 초콜릿을 맛보고 있다.

참가자 박선아(26)씨가 빼빼로를 만들다가 손에 묻은 초콜릿을 맛보고 있다. ⓒ 이지수

빼빼로를 만드는 데 고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간혹 달콤한 보상도 뒤따랐다. 빼빼로 막대를 초콜릿에 담그다 보면, 손에 초콜릿이 묻을 때도 많았다. 그러면 손가락은 자연스럽게 입으로 들어갔다. 참가자들이 초콜릿을 맛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기회. 

초콜릿의 달콤한 맛은 중독성이 강했다. 참가자들은 재료 중 부러진 빼빼로 막대를 발견하면 오히려 좋아했다. 이들은 부러진 막대에 초콜릿을 묻혀 맛있게 먹었다. 선물할 건데, 너무 많이 먹는 것 아니냐고 물었더니, 참가자들은 "정상적인 것은 하나도 안 먹었다"며 반박했다.

빼빼로를 모두 굳힌 다음, 참가자들은 빼빼로에 무늬를 넣기 시작했다. 빼빼로 무늬는 참가자들 수 이상으로 다양했다. 그들은 빼빼로에 점이나 줄무늬를 그려 넣기도 하고, 귀여운 글씨를 써넣기도 했다.

그 중에서는 권경연(27)씨의 빼빼로가 눈에 띄었다. 경연씨는 빼빼로를 만들기 전 기자에게 '남들과 똑같은 것은 싫다, 독창적인 빼빼로를 만들겠다"고 선언(?)한 바 있었다.

그러던 그녀가 실제 자신의 말을 지켰다. 빼빼로 막대마다 층층이 다양한 색깔을 입힌 것 하며, 그 위에 다소 거칠게 입힌 듯한 초콜릿 무늬는 마치 예술 작품을 보는 듯했다. 경연씨는 감탄을 금치 못하는 기자에게 한 마디 했다.

"거봐요. 제가 독창적으로 만들 거라고 했죠?"

그러나 무늬를 넣는 것 또한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참가자들은 대체로 빼빼로 만드는 과정 중에서 무늬 넣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했다. 계속 한 자세로 무늬를 그려야 하는 데다가, 조금이라도 빗나가면 무늬가 망가지기 때문이었다.

a  참가자 권경연(27)씨가 직접 만든 독특한 빼빼로를 보여주고 있다.

참가자 권경연(27)씨가 직접 만든 독특한 빼빼로를 보여주고 있다. ⓒ 이지수

무늬를 그려 넣은 빼빼로를 다시 굳힌 다음, 참가자들은 곧바로 포장작업에 들어갔다. 빼빼로를 하나씩 정성스럽게 포장지에 넣은 뒤 포장용기로 마련된 화분에 꽂아 넣는 것이었다. 포장은 빼빼로를 만드는 일 만큼이나 오래 걸리는 일이었다.

한 탁자에 모두 모인 참가자들은 이날 서로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곧 즐거운 이야기꽃을 피웠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빼빼로를 만든, 직접 만들어 선물하는 것의 기쁨을 아는 행복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서로 빼빼로 데이에 대한 의견도 나누었다. 빼빼로 데이가 상업적이라는 비판에 대해 김시현(20)씨는 "1년에 한 번씩이라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챙겨주게 되어 오히려 좋다"며 "너무 비싼 거보다, 정성스럽게 챙기는 것이 더 좋다"고 말했다.

선아씨도 빼빼로 데이에 대해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선아씨는 "빼빼로 데이 덕분에 남자친구와 둘이서 좀 더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며 "빼빼로를 주고 받는 것이 연인들 사이에서는 매우 재미있는 일"이라고 했다.

빼빼로 데이 감동 프로젝트, 모두 성공하길 바라오 

이야기를 한창 나누다 보니, 어느새 포장작업도 끝나고 예쁜 빼빼로 화분이 완성되었다. 3시간에 걸친 빼빼로 작업이 모두 끝난 것이었다. 모양은 비슷하지만 금세 누구 것인지 알아볼 수 있을 만큼 화분마다 개성이 돋보였다.

이제 남은 임무는 완성된 화분을 '무사히' 전달해 주는 것. 남자친구 회사에 몰래 찾아가겠다는 선아씨, 빼빼로 데이가 올 때까지 남편 몰래 집에 숨겨두겠다는 보현씨의 이야기는 기자의 마음까지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부디 이들의 따뜻한 마음이 빼빼로 데이에 성공적으로 전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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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빼로데이 #빼빼로 #송승희 #카카오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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