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위기로 시작된 신 브레튼우즈 화두와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 등으로 신자유주의의 근본적인 궤도 수정이 요청되고 있다. 최근의 논의는 '자유'와 '통제' 사이에 방점이 찍혀 있는데, 요점은 국경을 허물고 시장이 통합되는 추세에서 투기자본의 횡행과 고위험을 막기 위해 위험통제의 기구를 마련해야 하는데 그것이 '슈퍼 IMF'로 불리는 신 브레튼우즈 논의다.
세계 2차대전으로 공황을 경험했던 나라들이 1944년 '브레튼우즈' 협정을 성사시켰듯이, 이에 준하는 강력한 시스템이 등장할 채비를 갖추어야 한다는 주장이 광범위한 공감대를 얻고 있다. 이와 더불어 시장의 위험성이 커지면 그 고통은 가난하고 약한 자들이 지고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약자들을 위험으로부터 구출해야 한다는 논의가 미국 대선을 뜨겁게 달구며 젊은 오바마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중산층, 서민들에게는 '감세정책'을 고수익자들에게는 '증세정책'을 펼치겠다는 공약과 전국민 의료보험제도를 시행하겠다는 공약으로 미국인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한국의 주류는 아직도 신자유주의를 숭앙하며 정책기조를 이어갈 전망이다.
산업정책은 실패했으니 자유무역으로 가야 한다?
한승수 총리는 11월 9일 SBS 시사프로그램인 <선데이 뉴스플러스>에 출연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채택 전망과 관련, "과거 1930년대 대공항 당시 각국은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노력했지만 모든 나라가 손해를 봤다"며 "그래서 무역과 투자를 늘려야 하며, 자유무역적인 정책으로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2008-11-09, 연합뉴스) 이는 장하준 교수가 예시한 신자유주의 진영의 지론과 토시 하나 다르지 않다.
1930년대에는 각국 정부들이 다양한 관세 장벽을 서로에게 부과하는가 하면, '나부터 살고 보자beggar-the-neighbor'는 식의 정책까지 펼치면서 자국 산업의 성장과 안정을 추구했으나 이는 부질없는 시도에 불과했다. - 신자유주의적 관점 예시,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18~19쪽
장하준 교수에 의하면 이는 단선전인 편견에 불과하다. 산업화 국가는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중앙은행이나 효과적인 금융 규제가 없는 탓에 끊임없는 금융 불안을 겪어야 했으나 효과적인 금융 규제를 통해 2차 세계 대전 이후 금융 부문의 안정과 그에 따른 성장을 실현하게 되었다.(23쪽)
산업국가(이른바 선진국)들은 규제 정책을 통해 경제적 성공을 거둘 수 있었는데, 예컨대 18세기의 영국은 수입 규제와 수출 진흥 정책을 통해 당대 최고의 산업 국가였던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위협하였다.(21쪽)
미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 보호주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국가였는데, 19세기 중반부터 2차 세계 대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보호주의적인 정책을 펼치는 국가가 바로 미국이었다. 또한 유치 산업 보호정책의 지적인 모국으로서 독일과 일본이 이를 적극 수용해 성공을 거뒀을 정도였다.(22쪽)
이런 논의를 통해 볼 때 신자유주의자들은 경제적 흐름과 시대의 문맥을 읽기보다는 특정한 시대나 상황을 단순히 인용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논거로 활용했을 뿐이다. 장하준 교수는 자신의 책에서 신자유주의자들이 자신들의 논의를 강화시키기 위해서 예외적인 사례들을 일반적인 사례인 것처럼 소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승수 총리가 이를 토시 하나 빠뜨리지 않고 그대로 옮긴 셈이다.
자유무역을 통해 선(先) 성장 후(後) 분배를 이룬다는 것은 신자유주의자들의 오래된 주장인데, MB정부와 노무현 정부 역시 FTA 등 전폭적인 개방과 자유무역을 통해서 파이를 키운 뒤 이를 분배하는 정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자들도 노동자들의 생활수준 감소나 특정 분야에 대한 정부의 지원 축소와 실업률 증가, 이로 인한 삶의 근거지 상실 등의 문제를 인정하지만 단기적인 조정 비용으로 치부한다. 그래서 FTA를 통해 농산업이 재앙을 맞는다는 사실을 뻔히 보고 있음에도 아무런 대책 없이 이를 강행하려 한다. 장하준 교수에 의하면 불평등과 빈곤 확산은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오랫동안 지속되고 대다수 국민에게 고통이 미친다는 사실이 실증적으로 입증되었다고 한다.
쉽게 말해 정부가 돈 안 되는 것을 과감해 쳐버리고 파이를 늘렸다고 하더라도 이미 정부 부문의 대규모 민영화와 기업하기 좋은 정책 등으로 인해 조세 기반이 상당히 무너진 상태에서 무슨 재정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보위할 수 있을 것인가. 때문에 장하준 교수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자유무역 옹호론은 그럴 듯하지만 허약하기 짝이 없는 주장들이라고 비판했다. (33쪽)
신자유주의의 아이콘 '민영화'
신자유주의가 가장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분야는 '민영화'이다. 민영화는 순수히 시장에 의해 지배를 받으며 경영 성과 등을 지속적으로 감시받기 때문에 효율성이 증대된다는 입장이다. 민영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신자유주의자들은 '국영기업'을 부패와 비효율의 상징으로 매도한다.
즉, 국영 기업 운영은 부족한 예산 자원을 낭비하는 값비싼 시도이며, 국영 기업의 경영자는 실적에 대한 압력을 전혀 받지 않으며, 고용된 경영자이기 때문에 기업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동기도 없으며, 심지어 능력을 향상시킬 동기조차 없다는 것이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다. 경영에 대한 압력이 없기 때문에 경영자는 방만경영을 일삼고 관료들은 부패한다는 것도 신자유주의자들의 주된 비판점이다.
"아시아 3위 경제인 한국 경제를 감세, 규제완화, 민영화를 통해 변화시키고 글로벌 시장 불안에도 불구하고 경제 성장을 7%로 높이겠다" - (2008-03-03, 청와대 뉴스, Financial Times에서 이명박 대통령 언급 인용)
MB노믹스의 핵심은 '작은 정부' '공공개혁' '규제 완화'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추진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국민이 현 정권에 바라는 것이고 현 정권이 가장 잘하는 것이다. 제일 중요한 것이 산업은행 민영화, 신보ㆍ기보 통합, 주공ㆍ토공 통합이었다. (2008-11-02, 매일경제신문, 곽승준 전 국정기획수석 인터뷰)
이명박 대통령은 '효율성'의 관점에서 민영화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MB 정부의 브레인으로 통하는 곽승준(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공개혁'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공공부문의 비효율과 부실, 부패를 기정사실화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제기하는 민영화의 논리와 일맥상통한다.
장하준 교수에 의하면 민간 부문의 인센티브, 보상, 감독 체계 등이 국영 기업보다 낫다는 신자유주의적 관점은 근거가 없다. 실질적인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민간 기업의 경영자는 기업의 현재 주가를 극대화하려는 경향을 보이는데, 그것은 경영 목표나 기업의 장기적 이익 또는 국가경제 전반에 도움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주가 극대화를 위해 대규모 인원 감축을 하면 실업률이 올라가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초래하며, 당장 이익이 나지 않는 장기적인 투자 부문을 폐기함으로써 기업의 잠재적 성장가능성과 기업가치를 떨어뜨릴 공산이 크다. 특히 경영자가 스톡옵션으로 보상을 받는 경우는 기업의 장기적인 이익보다 경영자 개인의 스톡옵션을 위해 눈에 보이는 '지표'만 관리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117쪽)
'감시'에 있어서도 맹점이 그대로 드러나는데, 다양하게 분포된 수많은 주주들이 민간 기업의 경영 실적을 제대로 감시하기는 사실 거의 불가능한데, 이는 주주들이 상대적으로 작은 지분을 갖고 있어서다. 실제로 감시하기 쉬운 시스템은 민간 기업이 아니라 국영 기업인데, 만약 국영 기업이 방만하게 운영될 경우 납세자인 국민의 세금이 낭비되므로 국민 대중은 최소한 민간 기업의 주주들만큼은 국영 기업의 경영자를 징계할 인센티브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국영기업은 중앙 집중적 구조로 되어 있어서 정부기관이 경영 감시를 쉽게 할 수 있다.(118쪽)
장하준 교수는 이명박 대통령과 곽승준 전 국정기획수석의 논리를 한 문장으로 논박하고 있다.
상당수 국가는 재정 수입을 늘리는 수단으로 민영화를 도입한다. 그러나 여러 연구에 따르면 민영화가 생각만큼 정부 예산에 보탬이 되는 것은 아니다. 국영 기업은 외국 투자자나 국내 내부자(insiders)'에게 헐값으로 팔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거래는 상당한 부패를 동반하기도 한다. - 123~124쪽
민영화가 오히려 부패를 부추길 수 있다는 사실은 경험으로 알 수 있는데, 재정부와 국세청, 법률사무소 김앤장 등 정부와 사기업이 대대적인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론스타의 사례나, 이명박 대통령의 친인척이 연계되어 있어 특혜 논란이 일고 있는 '인천공항 맥쿼리 펀드 매각설' 등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민영화는 정부 소유의 기업을 민간에 판다는 말인데, 매매 주체에 따라 이해관계가 엇갈리기 마련이다. 즉 정부 쪽에서는 수익성이 가장 떨어지는 국영 기업을 매각하고 싶겠지만, 민간 부문에서는 가장 수익성이 높은 국영 기업을 매입할 것이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국영기업을 누가 거들떠 보겠는가. 정부가 민간기업의 입맛에 맞게끔 상당한 자금을 투자했을 때는 새로운 문제가 제기된다. 국영 기업이 수익성이 높아진다면 이 기업을 매각할 이유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수익을 잘 내는 국영기업을 정부가 소유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영화를 시킨다는 것은 정부와 기업 간의 커넥션이 있다는 오해를 증폭시킬 우려가 크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국영 기업을 외국의 민간 업체에게 팔 때이다. 이 때는 자원에 대한 권리가 외국계 기업으로 넘어간다는 뜻이므로 이용자들이 상당한 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 외국계 기업에서 이용가격을 갑자기 두 배로 높인다고 했을 때 정부로서는 제재할 수단이 마땅치 않다.
장하준은 국영기업을 민영화시킬 때 단지 매각에 따르는 이익만 고려할 것이 아니라 분배와 정치적ㆍ사회적 비용 등 다양한 비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하고 있다. 전기나 수도 등 필요불가결한 자원을 국민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고 있다면, 이 공급활동에 따르는 손실을 단순히 손익계산서에 따라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비근한 예로 휴대폰 보급이 일반화된 오늘날에도 일정한 거리에 따라 의무적으로 공중전화를 설치하고 이를 이동통신사에 부담하게 하고 있는데, 손익계산의 차원에서 본다면 이는 불필요한 비용의 발생이므로 당장 공중전화를 뽑아버려야 한다. 그렇게 되면 정말 급하게 전화를 이용해야 하는 이용자는 전화를 쓸 수 없게 된다. 장하준 교수는 '민영화'를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놓기보다는 조직의 개혁이나 인센티브 체계, 감독 시스템의 개선작업을 통해 효율성과 생산성 등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민영화에 대한 장하준 교수의 주장을 종합하면, 단순히 민영화가 좋거나 나쁘다는 판단을 넘어서 민영화가 의미하는 것에 대해서 폭넓게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민영화는 경제적 효율성과 국민에 대한 서비스의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가 '공공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추진중인 민영화 정책은 국영기업에 대한 지나친 폄하와 매각 수익 등 단순지표에 치우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덧붙이는 글 | 다음 블로거뉴스에도 올렸습니다
2008.11.10 10:11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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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 장하준의 경제 정책 매뉴얼
장하준.아일린 그레이블 지음, 이종태.황해선 옮김,
부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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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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