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다시 편 교과서와 문제집, 고교수학이 그렇게 어려운 지는 그때 처음 알았다. (자료사진)
김귀현
26년 동안 나름 편치 않은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수능을 다시 준비했던 4개월 동안만큼이나 힘들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집과 집 바로 앞의 독서실만을 오갔던 고립된 생활은 갓 제대한 한 젊은이를 반 우울증 환자로 만들었다. 이 생활을 겪은 후, 나는 절대로 고시생이 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답답하던 철망 밖으로 나왔는데, 이제는 더 좁은 골방 안에 들어앉아 있어야 한다는 현실. 그것도 고3때와 군대시절과는 달리 혼자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은 '세상을 다 가질 것만 같은' 예비역의 마음을 극심하게 옥죄었다. 그때 나에겐 1명의 대화상대가 절실했다. 왜 재수생들이 비싼 돈을 주고 학원에 다니는지를 그제야 깨닫게 됐다.
그래서 초기에는 포기하고 싶은 적도 많았다. '잘 될 거란 보장도 없고, 머리도 굳은 것 같은데 그냥 다니던 학교 졸업하고 취업이나 하지 뭐'란 생각이 끊임없이 나를 유혹했다. 제대하고 일주일 정도는 도저히 마음이 잡히지 않아 매일 같이 친구들과 만나 술을 마셨다. 그때마다 두 가지 의견이 나의 머릿속에서 전쟁을 치렀다.
'내일부터는 꼭 공부해야지' VS '그냥 포기할까?'나는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술을 끊고 공부에 전념하든지, 아니면 공부를 포기하고 다른 길을 알아보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고심 끝에 나는 미련 없이 술을 끊기로 했다. 그동안 수능 본다고 소문내고 다닌 게 창피해서라도 쉽게 공부를 포기할 순 없었다. 그래서 다니던 학교를 자퇴하는 것으로 배수의 진을 치고,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
'좋은 대학' 입학해 날 떠난 그녀가 날 찾길 바랐다이를 악물고 공부를 해야 했던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공부하는 동안 옆에서 잘 보살펴줄게"라고 약속했던 여자 친구가 병장 진급을 앞둔 시점에서 홀연히 나의 곁을 떠났다.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1000일 가까이 사랑을 나눴던 그녀가 단지 전화 한통으로 이별을 통보해오다니…. 휴가 중 얼굴이라도 한 번 보며 마음을 정리할 시간을 달라던 나의 마지막 요구마저 외면한 채, 그녀는 냉정하게 수화기를 놓았다.
수능공부를 위해 들었던 나의 펜 속에는 그녀에 대한 증오심도 가득 서려 있었다. 나는 그녀가 보인 냉정한 모습을 떠올리며, '중간에 포기하지 않기'로 했던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채찍질로 삼았다. 수능이 끝난 후, 그녀에게 보란 듯이 외치고 싶었다. 너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지만, 나는 너와 한 약속을 결국 지켜내고 말았다고….
나는 여전히 그녀를 사랑했다. 좋은 대학에 가면 혹시라도 그녀가 나를 다시 찾지 않을까 하는 '순진한' 생각도 새벽부터 나를 독서실로 향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장기간 다른 남자와 연애를 하고 있다는 소식만 간혹 들려올 뿐이었다.
4년보다 길었던 4개월이 지나고, 11월 수능일이 다가왔다. 수능 전 극심한 가슴앓이를 했던 순간들과는 다르게, 수능 당일은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했다. 공부 기간도 짧았고, 고등학교 때 워낙 공부를 못했던 터라 마음을 비워서 그런지, 큰 부담감 없이 시험을 치렀다.
수능이 끝나고, 입학원서를 쓰던 그해 겨울은 그렇게 초연한 시간들이었다. 큰 욕심은 비우고 평소 내가 가고 싶었던 사회복지학과만을 골라 지원했다. 그리고 나는 새벽마다 할머니가 하느님께 기도했던 '집에서 밥 해먹고 다닐 수 있는' 대학에 입학했다.
속칭 말하는 SKY대학은 아니었지만, 고등학교 친구들은 나의 대학 입학 소식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나도 만족스러웠다. 특히나 24살에 맞는 새내기 생활, 궁합도 안 본다는 4살차 동생들과 함께 하는 풋풋한 대학 생활이 너무나도 기대됐다.
꿈에 그리던 대학 입성, 그 후에는...내일(13일)이면 다시 수능일이다. 생각해보면 3년 전 수능을 준비하느라 끙끙댔던 나의 모습도 안쓰러웠고, 내일 수능을 치러야 할 예비 대학생들의 모습을 봐도 안쓰럽긴 마찬가지다. 맘껏 뛰놀고,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10대부터 '고시생'을 만들어버리는 한국에 태어난 '원죄'인지도 모르겠다.
수능 때문에 울고 웃었던 순간들은 어느덧 훌쩍 지나가고, 나는 이제 우리나라의 입시제도와 대학 서열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불온한' 생각을 가진 대학생이 되어 버렸다.
수능 점수 1점에 목매고, 명문대 입학이 사랑했던 그녀에게 '복수하는 길'이라 여겼던 내가 현 입시제도와 학벌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변한 것이다. 이런 거 보면 세상 참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