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8.11.18 14:35수정 2008.11.18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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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7시가 약간 안 된 즈음. 아내는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장모님이셨다. 장모님께서는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 하셨다. 그 때 나는 출근 준비를 하려 샤워를 하던 참이었는데, 밖이 순간 적막해지고 어색한 기운이 도는 걸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밖에 나가보니 역시나 아내의 표정은 굳어 있고, 욕실에서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애통함이 느껴졌다.
나는 급히 사무실에 전화하여 사정을 알렸다. 직장과 가까운 아내는(걸어서 3분) 사무실에 직접 가서 급한 서류 정리를 한 후 내려오기로 하였다. 처가에 가기까지 약 두 시간의 여유가 생긴 순간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아내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결심한 것이 집안 청소와 내려가는 차에서 먹을 간식 만들기였다. 이제 20개월 된 딸아이 때문에 어지러워진 방을 정리하니 '휴' 한참이 지난다. 다행이 아직 시간이 좀 남아 재빨리 간식 만들기에 들어갔다.
집안을 둘러보니 커다란 고구마 두 개가 보였다. 맛탕을 할까 했는데, 그러기엔 시간이 좀 부족한 듯 싶었다. 허나 고구마 튀김을 하기에는 적당한 여유였다.
"옳거니! 고구마 튀김을 해보자!"
<고구마 튀김 만들기>
1. 고구마 껍질 손질
대개 고구마 튀김은 껍질을 안 벗기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내 손에 있던 녀석은 상한 곳이 좀 있어 손질하게 되었다.
2. 적절한 크기로 자르기
아이도 있기에 너무 크게 자를 수는 없었다. 딸아이도 손에 잡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손질하였다.
3. 튀김가루 입히기
반죽을 하여 튀김 옷을 입혀 하는 게 정석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그렇게까지 하기에는 시간이 좀 부족하고, 식용유를 많이 입힌 것은 아이를 생각해 꺼리는 편이다. 그래서 튀김 가루를 입히게 되었다.
나는 평소 요리를 할 때 재료를 남기지 않는 편이다. 심지어 가루조차 남기는 걸 꺼려한다. 본래 진정한 고수는 재료 하나 남기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자주 이용하는 방법이 요리 재료를 통에 넣고 그 위에 적절한 양의 가루를 붓는 방식이다.
모든 고구마에 가루를 묻힌 후 남은 통의 모습이다. 가루가 거의 남지 않았다. 이번에도 내 계산은 정확했고, 나는 알뜰한 살림을 하였다. 후후후.
4. 달걀 옷 입힌 후 프라이팬에 튀기기
달걀 두 개를 그릇에 풀었다. 이 때, 나는 특제 소스를 첨가하곤 한다. 특제 소스라 하여 뭐 대단한 게 있는 건 아니다. 튀김을 좀 더 부드럽게 해주기 위해 약간의 우유나 두유를 첨가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딸 아이가 먹다 남긴 검은 콩 두유를 살짝 넣었다. 달걀 자체는 약간 색이 어두워지나 실제 튀기게 되면 전혀 차이가 없다.
5. 완성
위에 잠깐 언급했듯 우리집은 식용유 사용을 자제하는 편이다. 그래서 프라이팬에는 최소한의 식용유만을 부었다. 또한 접시에 키친 타올을 올려 놓고 한참 동안 기름을 빼는 과정을 거쳤다. 아래 사진은 고구마 튀김의 완성본이다. 그리 대단한 장식을 하거나 뛰어나게 예쁜 건 아니지만 제법 그럴 싸한 모습이다. 이것은 아내와 딸아이가 먹게 될 부분이다.
아래 사진은 고구마 끝 부분과 약간 오래 튀긴 부분이다. 이건 내가 먹을 부분이다. 그런데 가만 보니 양이 제대로 된 것과 거의 비슷해 보인다. 이런….
요리를 마칠 때쯤 하여 아내가 돌아왔다. 나에게 뭘 하느냐고 묻는다. 그래서 "당신이 울적해 하기에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고 싶어 깜짝 이벤트를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런…
아내는 내가 샤워하는 동안 어제 먹다 남긴 파전을 혼자 먹었다 한다. 사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전 날은 우리 결혼 기념일이라 저녁에 조촐한 파티를 했고, 며칠 집을 비운 사이 남은 음식이 상할까봐 혼자 먹었던 것이다. 당연히 아침부터 기름진 음식을 먹었으니 고구마 튀김이 제대로 먹힐 리 없다. 결국 내 고구마 튀김은 오히려 아내의 속을 느끼하게 하는 데 일조할 뿐이었다.
'흑흑, 이거 완전 낭패로다.'
처가에 내려가는 길. 아내는 그래도 신랑이 해준 음식이 고맙다고 고구마 튀김을 꾸역꾸역 먹는다. 많이 먹지는 못했지만 그 정성을 봐주고, 고맙다 하며 먹어주는 게 사랑스럽다.
하지만 결국 처가 도착 후 이 고구마 튀김은 조카들의 손에 넘어갔고, 조카들은 맛있다며 한 두 개 집어 먹더니 어느 순간 한 통을 다 비워놓았다. 하하하, 이런. ^.^;;
우린 삼일장을 잘 치러냈다. 예배를 드리고 마음을 잘 다스리며 할머니를 보내드렸고, 염을 하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상여를 들고 길을 걸으며 마지막 가는 길까지 잘 배웅해 드렸다. 수백명이 넘는 손님 역시 잘 대접하여 보내드렸다.
비록 깜짝 이벤트는 절반의 성공으로 그쳤지만 마지막 날에는 한결 평안해진 아내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깜짝 이벤트의 성공보다 더 보람있고,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덧붙이는 글 | 필자의 블로그와 각 메타 블로그 사이트에 함께 올립니다.
2008.11.18 14:35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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