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대한민국의 '배신'을 말하다

김용철, 정혜신, 진중권 등의 <배신 - 21세기를 사는 지혜>

등록 2008.11.20 09:18수정 2008.11.20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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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배신 - 21세기를 사는 지혜>겉표지

<배신 - 21세기를 사는 지혜>겉표지 ⓒ 한겨레출판

지난 3월부터 4월까지 열린 '한겨레21'의 인터뷰 특강을 정리한 <배신 - 21세기를 사는 지혜>를 보면서 감개무량함을 느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우리사회에 배신이라는 단어가 암암리에 퍼졌던 것을 공식적으로 언급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배신이라는 단어는 터부시되던 것이었다.


그럼에도 이 사회는 '배신'을 권하거나, 혹은 자기합리화하며 정당성을 확보하려 하지 않았던가. <배신 - 21세기를 사는 지혜>는 김용철, 정혜신, 진중권 등을 통해 그것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책을 펼치면 처음으로 등장하는 이는 김용철이다. 김용철이 누구인가? 삼성을 위해 일하다가 삼성의 문제를 고발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그의 발언에 사회가 술렁였고 언론은 난리가 났었다. 삼성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그가 하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는 그 무게감이 상당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를 보는 사회의 시선은 곱지 않기 시작했다. 삼성을 '배신'했다는 이야기 때문이었다. 인터뷰 특강에서도 그 이야기가 나온다. 그에 대해 김용철은 뭐라고 이야기하는가.

이 사회의 일원으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삼성의 문제를 고발한 것이기에, 삼성의 입장에서는 배신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이 사회에서는 배신이 아니라 올바른 것이라고 한다. 타당한 말이다. 신념이 느껴진다. 그렇기에 그가 인터뷰 특강에서 하는 말들은 더욱 신뢰감을 준다.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배신에 대해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람들이 배신당했다는 이야기는 자주 해도 배신했다는 말은 잘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함께 상대방의 생각은 고려치 않고 자신이 혼자 생각한 뒤에 그것에 맞지 않으면 배신당했다고 말하는 현상을 지적한다. 상대의 행동을 쉽게 배신으로 치부하는 배신의 과잉상태를 이야기하는 셈인데 이 또한 여러 가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보다 나은 인간관계를 위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어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진중권이다. 진중권은 대중과 지식인의 배신에 대해 언급하는데 경험담이 있어서 그런지 이야기가 한결 더 가깝게 느껴진다. 그 경험담이란 무엇인가? 황우석 사태와 같은 것이 아닐까? 진중권은 대중을 배신하는 사람이었다. 대중의 기대와 희망을 무참히 배신하고, 그로 인해 무수히 많은 욕을 먹고 또한 생명의 위협을 느꼈어도, 변하지 않았다.

그가 그렇게 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그것이 '먹물'의 자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대중의 인기를 얻기 위해, 대중의 눈치를 살피면서 입장을 바꾼다면, 그것이야말로 지식인의 책무를 배신하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대중은 연합해야 할 존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배신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스스로가 그것을 지켰던 사람이기에 그러할까? 그의 말이 유독 힘차게 들린다.


전 대통령비서실 국민경제비서관 정태인은 정권의 '배신'을 이야기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미FTA 등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배신해놓고 그것을 합리화하는 거대세력을 고발하는 것인데 그 내용이 심상치 않다. 배신을 당한 대가가 무엇인지를 일일이 짚어주는데 그 내용들이 하나같이 오싹하게 만든다. 배신당하는 것이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이라면 더욱 놀라게 될 것이다.

이 외에 등장하는 정재승과 조국이 하는 말들도 그 내용이 속 깊다. 내 집단의 이익을 옹호하는 대신 더 큰 집단에 대한 신뢰를 지키려는 노력으로써의 배신은 배신이 아니라 지식인의 책무라고 설명하는 정재승과 법의 정신을 배신하는 법률가들을 비판하는 조국의 말 또한 의미심장하기는 마찬가지다. 알면 좋은 내용이 아니라, 이 사회를 더 잘 살아가는데 알아야 할 내용인 것이다.

언제부터였던가. 이 사회는 배신을 하는 사람들이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또한 배신을 위대한 것인양 포장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배신이 아닌 소중한 것을 되레 배신이라고 몰아붙이는 것이 당연시되기도 했는데 사람들의 눈과 귀는 어느 것 때문에 막혀 있어 그것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다. 시원하게 보여주고, 들려주는 <배신 - 21세기를 사는 지혜>가 유난히 반갑게 다가온다. 

배신 - 21세기를 사는 지혜

김용철 외 지음,
한겨레출판, 2008


#정혜신 #정재승 #조국 #김용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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