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만원 호텔도 좋아...비싸야 좋은 건 아니다

짠돌이 신혼부부의 제주 겉핥기3

등록 2008.11.22 11:15수정 2008.11.22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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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 있어 다시 찾고 싶어야 명소인데 성읍민속마을은 그렇지 않았다. 그곳을 떠올리면 난 으레 장사(물건 파는)가 생각났다. 그래서 나 혼자 여행할 때는 가지 않았다. 안 사면 그만이지만 민속마을로 지정해놓고 물건을 팔다니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고, 때문에 가고 싶지도 않았다.

이번에도 그랬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작은 주차장이 있기에 차를 댔더니 한 여자분이 반색을 하며 나왔다. 그리고 가이드를 하겠다며 우리를 한 집으로 안내했다. 그 분은 청산유수로 집 구조며 옛날 생활 방식을 이야기 해주고는 대문 있는 쪽 헛간 문을 열었다. 거기가 바로 상품을 파는 곳. 이런 식이라면 동남아 쪽, 한국인 관광객 상대 상행위와 뭐가 다를까?


성읍민속마을 사람냄새가 나는 집은 밖에서 엿보기만 해도 훈훈한 기운이 돌았다.
성읍민속마을사람냄새가 나는 집은 밖에서 엿보기만 해도 훈훈한 기운이 돌았다.이현숙

제주 똥돼지 지금은 인분을 먹고 살지 않지만, 제주 흑돼지는 유명하다. 맛도 아주 그만...
제주 똥돼지지금은 인분을 먹고 살지 않지만, 제주 흑돼지는 유명하다. 맛도 아주 그만...이현숙

그곳에서 파는 것은 오미자 엑기스와 말 뼛가루. 그 여자분 약효를 열심히 설명했다. 하지만 장황하지는 않았다. 아마 이 분, 우리를 보자마자 알아챘을 것이다. 짠돌이라는 걸. 나는 여행에서 절대 물건을 사지 않는다. 오일장 외에는. 이런 때 가장 유효한 질문이 있다. 자기 자신에게 하는 질문이다. '이거 없으면 생활이 불가능해?' 이 물음 하나면 쉽사리 물건에 손이 가지 않는다.

우리 생각을 눈치 챘는지 그분, 자신들의 처지를 설명한다. '제주' 하면 감귤이나 해산물인데 이쪽 동네는 바다와도 멀고 감귤도 잘 안 된단다. 열매가 잘고 맛이 없다나. 때문에 자신들은 이런 식으로 생업을 이어간다고. 그 말이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청정한 관광지, 제주에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정의현성 남문성곽 500년 현청 소재지로 성곽 안이 넓고 잘 정비돼 있었다.
정의현성 남문성곽500년 현청 소재지로 성곽 안이 넓고 잘 정비돼 있었다.이현숙

성읍민속마을 성곽 앞의 마을. 대부분 관광객들이 지나다닌다.
성읍민속마을성곽 앞의 마을. 대부분 관광객들이 지나다닌다.이현숙

다시 차를 타고 성곽으로 이동했다. 이번에는 신랑 덕이다. 예전에 성읍민속마을은 물건을 파는 곳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바로 벗어나 다른 곳으로 가버렸는데, 이제야 제대로 성곽을 보게 되었다. 성곽은 훌륭했다. 성곽 안은 산책하면서 한 바탕 놀고 가도 될 정도로 넓었다. 정의현성이라고 하는데 현청 소재지로 500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도 친절하게 설명하고 물건을 파는 안내자가 있었다. 주로 단체관광객들에게 접근해 안내를 하는데 우리는 또 그 사람들이 접근할까봐 눈치를 봐가며 동네를 돌아다녔다.

제주에는 민속오일장이 있는데 오늘이 장날이었다. 이제 제주시로 들어갈 차례였다. 성산에서 제주시까지는 먼 거리. 지도를 샅샅이 살피던 이 남자 은근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산굼부리만 들렀다 가자. 아유 여기 아부 오름이 있는데, 영화촬영지래. 그곳까지 들렀다 가는 건 어때?"


지도를 들여다보니 그 길 근처에 비자림도 있다.

"그러면 아마, 비자림도 가고 싶을 걸. 그러다간 오늘 제주시엔 들어가지도 못할 거고, 그러면 아마 오일장은 포기해야 할 거야."


내 말이 그럴 듯했는지 이 남자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냥 달린다. 그래도 제주시에 들어가서 두 군데는 들렀다. 삼성혈과 관덕정, 그리고 그 다음이 민속오일장이었다. 오일장이면 대부분 난전에 장을 차리는데 제주는 실내였다. 제주에 특히 비가 많이 오기 때문인지. 그래도 이렇게 큰 장이 오일에 한 번만 열린다니 이해가 가지 않아 상인에게 물었다. 다른 날도 열려 있긴 한데 장날처럼 풍성하진 않단다.
제주민속오일장 비가 잦은 때문인지 지붕이 있는 오일장이었다
제주민속오일장비가 잦은 때문인지 지붕이 있는 오일장이었다이현숙

간식거리 어디가나 붐비는 곳. 맛있는 떡볶기, 오뎅.
간식거리어디가나 붐비는 곳. 맛있는 떡볶기, 오뎅.이현숙

장은 정말 컸다. 여느 시골장보다 풍성하고 사람도 많았다. 섬나라답게 대표 주인공은 생선. 그 중에서도 갈치와 고등어가 제일 탐이 났다. 사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사야지 마음 먹었지만, 글쎄. 역시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마찬가지다. 칼을 비롯해 농기구며 한약재, 청소용구들이 즐비하게 자리 잡고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제주의 주인공 제주의 대표적인 산물은 역시 갈치와 고등어가 아닐까?
제주의 주인공제주의 대표적인 산물은 역시 갈치와 고등어가 아닐까?이현숙

일용할 물품 오일장에 반드시 등장하는 일용할 물품들...역시 사람 사는 곳은 똑같다.
일용할 물품오일장에 반드시 등장하는 일용할 물품들...역시 사람 사는 곳은 똑같다.이현숙

과일도 있었다. 나는 이상한 과일을 보고 마치 무엇에 감전된 사람처럼 다가갔다. 감귤과 함께 있었는데, 핑크빛에 연두색 뿔이 여럿 달린 과일이었다. 이름은 용과라고 써 있었고, 크기에 따라 가격도 매겨져 있었다.

제주의 과일 감귤과 용과. 아직도 풀리지 않은 궁금증 용과...
제주의 과일감귤과 용과. 아직도 풀리지 않은 궁금증 용과...이현숙

"이것도 과일인가요?"
"아, 용과요. 과일이지요."
"이건 어떻게 먹어요?"
"그냥 껍질 벗겨서 먹는데, 달착지근하고 기관지에 좋아요."


나는 구경만 했다. 왠지 자주 접하지 않은 먹을거리에는 손이 가지 않는다. 장을 돌아다니면서 몇 번을 망설였지만 결국은 사지 못했다. 집에 돌아와 검색을 해봐도 용과라는 과일은 나오지 않았다. 여전히 궁금하다. 그 과일 나무나 속이... 그런데 울 신랑은 자두를 골라놓고 나를 불렀다. 마땅치 않았지만, 흥정을 다 해놨으니 어쩔 수 없이 샀다. 돌아서면서 노파심에 물었다.

"이 자두 제주에서 나나요."
"아니요. 육지 것입니다. 제주에는 감귤 종류밖에 없어요. 이런 거 다 육지에서 오는 겁니다."


에그, 육지에서 배로 실어오느라 몇 날 며칠 걸렸을 테니, 뭔 맛이 있겠는가. 보기에는 아주 좋아보였지만 맛은 영 젬병. 오는 날까지 울 신랑 먹어치우느라 애썼다. 난 자두와 친하지 않아서 도와 줄 수도 없었고.

오늘은 제주 시내에서 자기로 하고 드디어 고대하던 고등어 갈치회를 먹으러 간다. 오일장에서 멀지 않은 노형동에 잘 하는 식당이 있단다. 물항식당이라고. 이름 값을 하는지 초저녁인데도 손님이 많았다. 처음이라 주문하는데도 갈팡질팡. 갈치와 고등어를 같이 먹고 싶다니까, 한 접시에 같이 나오는데 4만원이란다.

"그럼, 쯔끼다시나 매운탕도 나오나요?"
"손님 여긴 그런 식당이 아닙니다, 매운탕을 드시려면 따로 시키셔야 돼요."


점잖게 타이르는 종업원에게, 나 한 방 먹었다. 유명한 식당이라 찾아 왔는데, 유명하기 때문에 손님에게도 고자세인지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그런데 고등어회는 맛있었다. 난생 처음 먹어 보는 건데, 갈치회는 그저 그렇고 고등어회는 달착지근한 게 감칠 맛이 났다. 굳이 참치회와 비교한다면 참치보다 단맛이 약간 더 나고 얕은 맛이 혀에 착착 감기는 맛이었다. 제주에 몇 번을 와도 군침만 흘리고 돌아갔는데, 이럴 땐 같이 다니는 보람이 있다. 갈치회, 고등어회맛을 다 보고 소주도 마셨다.

갈치, 고등어회 이렇게 한 상이 나온다. 회에는 무조건 매운탕이 따라 나온다는 상식은 통하지 않았다.
갈치, 고등어회이렇게 한 상이 나온다. 회에는 무조건 매운탕이 따라 나온다는 상식은 통하지 않았다.이현숙

계산을 하면서 숙박할 곳을 물었더니 바로 뒤쪽에 숙박시설이 많단다. 많이(소주 두 잔) 마신 건 아니지만 피곤하기도 하고 술 기운도 있어 빨리 쉬고 싶었다. 한 군데는 물으니 5만원이라고 한다. 혹시나 하고 옆에 있는 호텔에 가 물으니 4만원이란다. 4만원짜리 호텔도 시설이 아주 좋았다. 여행을 다녀보니 비싸다고 꼭 좋은 건 아니었다. 가격은 붙이기 나름이라는 거 마지막 날에 알게 되었다.

덧붙이는 글 | 제주는 10월 초에 다녀왔습니다


덧붙이는 글 제주는 10월 초에 다녀왔습니다
#성읍민속마을 #제주 민속오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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