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종 불협화음을 이룬 두 사람의 대화

[아비뇽포럼을 보는 세 가지 시선③] '미국영화인협회' vs. '스크린쿼터문화연대'

등록 2008.11.24 14:08수정 2008.11.24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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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으로는 프랑수아 피용 프랑스 총리, 크리스틴 알바넬 프랑스 문화장관, 정보통신 분야에서 <프랑스텔레콤>의 디디에 롱바르 사장, 미디어 분야에 니콜라 드 타베르노스트 프랑스 민영텔레비전 <엠시스(M6)> 사장과 <비방디(Vivendi)> 그룹의 장-베르나르 레비 회장 그리고 영화 분야에서는 영화 <나의 왼발>(1989), <아버지의 이름으로>(1993), <블러디 선데이>(2002)를 연출한 아일랜드 감독 짐 쉐리단. 지난 18일 아비뇽포럼 마지막 총회를 장식한 인물들이다.

<미국영화인협회> 글릭먼 회장 아비뇽포럼 참석


 지난 18일 아비뇽포럼 폐막 총회에서 연설하는 댄 글릭먼 '미국영화인협회' 회장
지난 18일 아비뇽포럼 폐막 총회에서 연설하는 댄 글릭먼 '미국영화인협회' 회장박영신
또 있다. 댄 글릭먼 '미국영화인협회(MPAA)' 회장.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정치고문, 농림부장관을 역임한 바 있는 글릭먼 회장이 아비뇽포럼에 등장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아비뇽포럼의 기치는 '문화다양성 증진과 성장 동력으로서의 문화'다.

글릭먼 회장이 누군가. 영화, 방송, 음반 등 시청각 서비스 분야를 통틀어 세계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점하고 있는 대표적 이익단체 '미국영화인협회'의 수장이다. 이를 의식한 탓인지 글릭먼 회장은 비서가 자신의 아비뇽포럼 참석을 말렸다는 농담으로 발제를 시작했다. 글릭먼 회장의 발제는 그러나 불법다운로드 근절 대책에 한정됐다.

이렇게 끝났다면 좋았을 것이다. 적어도 글릭먼 회장의 입장에서는 말이다. 뜻대로 되지 않았다. '숙적'이라는 말은 이런 때 쓰는 걸까.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양기환 사무처장과 글릭먼 회장의 관계를 말할 때.

지난 16일 아비뇽포럼 개막식에서 양 사무처장은 포럼 주최자들에게 글릭먼 회장의 포럼 참석 이유를 집요하게 물은 바 있다. '프랑스문화다양성연대' 파스칼 로가르 의장은 '적을 사랑해야 한다'는 '적과의 동침'론을 설파했고 라두 밀레레아누 프랑스 영화감독은 글릭먼 회장의 참석을 희화화하기도 했다.

"적은 등 뒤가 아니라 눈앞에 두고 관찰해야 한다."


극적인 장면은 지난 18일 아비뇽포럼 폐막 오찬 석상에서 이뤄졌다. 양 사무처장과 글릭먼 회장이 격돌한 것. 두 사람의 대화는 즉석에서 이뤄졌다. 오찬 테이블에 앉은 글릭먼 회장을 발견한 양 사무처장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던 것. 양 사무처장은 질문했고 글릭먼 회장은 대답했다.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글릭먼 회장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몇 차례 자리를 피하려 했다. 그러나 이들의 만남은 주변 참석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바로 '주변의 눈' 때문에 글릭먼 회장은 자리를 박차지 못했다. 곤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스크린쿼터 축소·폐지는 미 정부의 공식 입장"


짧았지만 강렬했던 두 사람의 대화를 요약, 소개한다.

 지난 18일 아비뇽포럼 폐막 오찬 석상에서 숙적, '미국영화인협회' 댄 글릭먼 회장과 '스크린쿼터 문화연대' 양기환 사무처장이 극적으로 만났다.
지난 18일 아비뇽포럼 폐막 오찬 석상에서 숙적, '미국영화인협회' 댄 글릭먼 회장과 '스크린쿼터 문화연대' 양기환 사무처장이 극적으로 만났다. 박영신

양기환 : "할리우드 영화가 세계 영화 시장의 85%를 점유하고 있다. 이는 문화다양성을 주제로 한 아비뇽 포럼과 모순되지 않는가."
댄 글릭먼 : "전 세계적으로 영화 제작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물론 박스오피스만 보면 할리우드 영화의 점유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극장 입장객 수만 따지면 할리우드의 점유율은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인도의 경우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양기환 : "2001년도 WTO에 제출한 제안서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은 국제사회에 스크린쿼터 제도 자체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한국에는 집요한 압력을 행사해 결국 스크린쿼터가 축소됐다. 국제사회에 공언한 것과 한국에 대한 행동이 모순되지 않는가."
댄 글릭먼 : "물론 WTO에서는 정부의 정책을 인정하고 있고 우리도 동의한다. 그러나 스크린쿼터를 축소하고 궁극적으로 폐지해야 한다는 것이 미국 정부의 변함없는 공식적 입장이다. 또한 한국의 스크린쿼터 축소는 통상 협상의 결과였을 뿐이다."

양기환 : "미국이 유네스코 문화다양성협약에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당신은 이에 동의하나."
댄 글릭먼 : "부시 정부에서는 문화다양성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문화다양성을 존중한다. 다만 문화다양성협약이 보호무역이나 시장진입 장벽이 되는 것을 우려할 뿐이다."

양기환 : "혹 미국 영화계와 한국 영화계가 협력해서 공동의 이익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도 있는가."
댄 글릭먼 : "미국과 한국은 이미 긴밀하게 공조하고 있다. 지적재산권 보호를 위해 불법다운로드 근절 방안에 대해 협조하고 있다."

시종 불협화음을 이룬 두 사람의 대화는 서로의 원칙을 재확인하는 선에서 그쳤다. 영화, 방송, 음반 등 시청각 서비스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미국과 함께 문화다양성 증진이라는 공통분모를 찾고자 하는 아비뇽포럼이 장차 넘어야할 상징적 현실이었다.

[주요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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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뇽포럼 #미국영화인협회 #스크린쿼터문화연대 #댄 글릭먼 #양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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