묶음표에 갇힌 한자말 (15) 전지(戰地)

[우리 말에 마음쓰기 486] ‘삼교(三敎)’와 ‘세 종교-세 가지 종교’

등록 2008.11.28 13:52수정 2008.11.28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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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전지(戰地)

 

.. 실제로 위안부를 배로 실어 전지(戰地)로 보낼 때에 일본 육군이 관리하는 일본 선적의 군용선을 사용했는데 ..  《요시미 요시아키/이규태 옮김-일본군 군대위안부》(소화,1998) 51쪽

 

 앞에는 ‘배로 실어’라고 말합니다만, 뒤에는 ‘군용선’을 씁니다. ‘군용선’이 한 낱말이겠지만, ‘군대배’쯤으로 다듬으면 어떨까요. ‘사용(使用)했는데’는 ‘썼는데’로 손봅니다. 보기글 앞쪽처럼 “군용배로 실었는데”로 손봐도 되고요.

 

 ┌ 전지(戰地) = 전쟁터

 ├ 전쟁터(戰爭-) : 싸움을 치르는 장소

 │

 ├ 위안부를 배로 실어 전지(戰地)로 보낼 때

 └→ 위안부를 배로 실어 싸움터로 보낼 때

 

 일본사람들은 ‘전지’로 흔히 쓰는 듯합니다. 이와 달리 한국사람들은 ‘전지’라는 말을 거의 안 씁니다. 쓴다고 해도 ‘전쟁터’라 합니다. ‘-터’는 토박이말로 붙이고, ‘전쟁’만 한자말로 붙입니다. ‘-터’ 앞에 토박이말 ‘싸움’을 붙이면 한결 낫지만, 이만큼 마음을 기울여 주는 이는 드뭅니다.

 

 그나저나, 일본말로 된 책을 한국말로 옮길 때에는, ‘싸움터’로 풀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적어도 ‘전쟁터’쯤으로는 풀든지요. 그렇게 안 하고 일본 한자말을 그대로 쓰자니, 어쩔 수 없이 묶음표를 치고 한자로 ‘戰地’까지 써 넣게 됩니다. 처음 번역을 할 때 얼마나 마음을 쏟느냐에 따라서, 이 번역을 읽을 사람들 품이 줄어드느냐 늘어나느냐가 달라짐을 새삼 느낍니다.

 

ㄴ. 삼교三敎

 

.. 이에 나무木ㆍ불火ㆍ흙土ㆍ쇠金ㆍ물水, 즉 오행의 근원과 유교ㆍ도교ㆍ불교, 즉 삼교三敎의 진리를 모두 깨달아 ..  《홍대용/이숙경,김영호 옮김-의산문답》(꿈이있는세상,2006) 21쪽

 

 ‘즉(卽)’은 ‘곧’으로 다듬고, “오행의 근원(根源)”은 “오행은 뿌리가 어떻게 되는지”로 다듬습니다. ‘진리(眞理)’는 ‘참뜻’이나 ‘속뜻’으로 풀어냅니다.

 

 ┌ 삼교(三敎)

 │  (1) 유교ㆍ도교ㆍ불교, 또는 유교ㆍ불교ㆍ선교를 통틀어 이르는 말

 │  (2) 유교, 불교, 도교에서의 세 가지 가르침

 │

 ├ 삼교三敎의 진리를

 │→ 세 종교 참뜻을

 │→ 세 가지 종교 속뜻을

 └ …

 

 보기글을 보면 ‘삼교’는 한자를 밝히고 ‘오행’은 한자를 밝히지 않습니다. ‘삼교’는 한자를 밝히지 않으면 알아들을 수 없는 낱말이고, ‘오행’은 한자를 밝히지 않아도 알아들을 수 있는 낱말이기 때문일까 궁금합니다.

 

 ┌ 나무木ㆍ불火ㆍ흙土ㆍ쇠金ㆍ물水 (△)

 ├ 木ㆍ火ㆍ土ㆍ金ㆍ水 (x)

 └ 나무ㆍ불ㆍ흙ㆍ쇠ㆍ물 (o)

 

 세상을 이루고 있다는 ‘다섯 바탕’을 가리켜 ‘五行’이라고 한답니다. 나무와 불과 흙과 쇠와 물입니다. 나무이니 ‘나무’이고, 물이니 ‘물’입니다. 보기글에서는 ‘나무’ 뒤에 ‘木’을 붙이고, ‘물’ 뒤에 ‘水’를 붙입니다.

 

 모르는 일이지만, ‘다섯 바탕’을 나라밖 사람한테 이야기한다고 할 때, ‘tree木’처럼 적으면서 이야기를 하려나요? ‘water水’처럼 적으면서 이야기를 할까요?

 

 ‘물water’도, ‘나무木’도, ‘tree나무’도, ‘water水’도 아닙니다. 우리한테는 ‘나무’와 ‘물’일 뿐입니다.

 

 ┌ 세 종교 ← 삼교 / 三敎

 └ 다섯 바탕 ← 오행 / 五行

 

 오늘날 한국사람은 불교와 기독교와 천주교 세 가지를 가장 많이 믿습니다. 지난날 ‘삼교’가 유교와 도교와 불교였다면, 오늘날에는 불교와 기독교와 천주교가 되리라 봅니다. 그리고, ‘삼교’라는 낱말을 오늘날에도 쓰려면 새 뜻을 담아야지 싶습니다. 오늘날에는 그다지 쓸 만하지 않은 낱말 ‘삼교’라 한다면, 국어사전에서 털어낸 다음, 홀가분하게 ‘세 종교’로 적을 때가 한결 나으리라 봅니다. ‘오행’이라는 낱말도 굳이 쓸 까닭이 없이 ‘다섯 바탕’으로 적으면 헤아리기에 훨씬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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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8 13:52ⓒ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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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 한자말 #한자 #우리말 #우리 말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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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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