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약자석저기 앉았다 맞을 뻔한 산모 친구도 있는데 난 양호한건가?
박봄이
"에라이, 젊은 년이 어디 어른이 앞에 서 있는데 '나빤데기'를 꼿꼿이 들고 쳐다봐!"허… 오랜만에 들어보는 '나빤데기'… 그제야 '아, 자리 양보해달란 말씀이시군.' 사태파악이 되어 주섬주섬 짐을 들고 일어섰다. 그런데 날이 겨울인지라 두꺼운 옷하며 짐하며 몸이 생각처럼 재빨리 움직여지진 않더군. 화를 낼 기력도 없었으니 어서 비워주고 구석으로 몸을 숨기자는 생각뿐이었다.
"저런, 저런, 못 배워먹은 년 같으니라고. 저희 부모가 서 있어도 모른 척 할 년이여, 아주 그냥!"노약자석도 아니고 일반 좌석에 앉아서 어른이 기침하는데 얼굴 3초 바라봤다는 이유만으로 난 못 배워먹은 년에 부모한테도 자리 양보 안하는 천하에 몹쓸 년이 되어 버리고야 말았다.
그래. 내가 다 잘못했고 내가 죄인이다 치자. 제발 소리나 안 질렀으면 좋겠다. 앉으셨으면 됐지, 귀가 먹먹할 정도로 소리를 질러대는 까닭은 뭔가. 이 어르신, 도통 나를 향한 살벌한 비난이 멈추질 않는다.
"나라가 아무리 망조가 들었다지만 어디 대가리 피도 안 마른 어린년들이 노인 앞에 두고 처자는 척을 하지를 않나, 상것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야. 말세다, 말세야."잠도 곱게 자면 되지 '처'자는 건 뭔가. 그때 노약자석에 앉아계시던 할아버님과 할머님께서 한 말씀씩들 하신다.
"애고, 고만해요! 젊은 사람들이 피곤하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지하철 전세 냈소? 고만 좀 떠들어요! 나이 먹은 게 뭔 유세라고!!"그제야 멈칫 하시는 어르신. 무안한 듯 헛기침을 몇 번 하시더니 금세 자는 척을 하신다.
젊은 사람도 힘든 세상이랍니다사람이 나이가 들어 온 삭신이 쑤시고 기력이 딸리는 거 누가 모르랴. 우리 부모님만 하더라도 '아이고, 허리야~'를 입에 달고 사시는데.
그런데 그 많은 사람들 틈에서 욕먹으며 '천하에 몹쓸 년' 소리를 들은 것보다 속상했던 건, 내 나이가 겨우 서른이라 팔팔하지만 밤새고 일한 후엔 힘들다는 것, 몸살이 오면 '처'자는 척이 아니라 정말 잠들어버릴 수도 있다는 것, 젊은 사람도 1년 365일 매일 싱싱하진 않다는 것. 더군다나 요즘 같은 세상엔 이 나라에서 젊은이로 산다는 게 어쩌면 노인들보다 더 힘들 수도 있다는 것… 그걸 정말 몰라주는 어르신의 모습이었다.
당해보고 나니 감히 노약자석에 앉았다 얻어맞을 뻔한 임산부였던 내 친구의 용기가 대단했지 싶었다. 일반 좌석에서도 이 정도인데 녀석은 무슨 용기로 노약자석에 앉을 생각을 했던 걸까.
"노약자석이 노인들만 위한 자리냐? 노인, 장애인, 임산부를 위한 자리야. 난 내 자리에 앉은 거뿐이었다고! 그런데 어떻게 임산부의 배를 때리려할 수가 있느냐고!!"목청 높여 울분을 토하던 그 친구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영 떠나질 않았다.
어르신들, 앞에 앉은 젊은 사람들이 모두 일부러 모른 척 하진 않을 겁니다. 그들에게도 나름 사정이 있을 테니 정 힘드시면 '젊은이, 내가 좀 힘든데 자리 좀 양보해주겠나?'라고 말씀 하세요. 우리나라 젊은이들, 노인공경 만큼은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이들이니 웃으며 양보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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