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뭣이라, 닐 다이아몬드가 온다고?"

추억의 가수 닐 다이아몬드 공연에 아줌마 가슴이 설레다

등록 2008.12.05 10:05수정 2008.12.0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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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다이아몬드가 UVA(버지니아 대학교)에 온대."
"그게 누군데?"
"나도 몰라."


고등학생인 두 딸의 대화다. 하긴 10대인 아이들이 올해 68살이 되는 닐 다이아몬드를 어찌 기억하겠는가. 그가 아무리 한 때를 풍미했던 가수였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미국의 최대 명절로 꼽히는 추수감사절(11월 27일). 내가 일하고 있는 대학에서는 올해 처음으로 추수감사절이 낀 1주일을 휴가로 보냈다. 아이들도 추수감사절 전날 일찍 수업을 마친 뒤 목요일, 금요일을 쉬게 되었다.

모처럼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게 된 아이들. TV 앞에 앉아 느긋하게 명절 특선 프로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멀지 않은 버지니아 대학교에서 닐 다이아몬드가 콘서트를 한다는 광고를 본 것이다. 

"뭐, 뭐라고? 누가 콘서트를 한다고?"
"닐 다이아몬드. 처음 들어본 이름이야."
"(아니, 그 유명한 닐 다이아몬드를 모르다니) 그, 그래? 다이아몬드가 온대? 가봐야겠다."
"…@#$%^&"

아이들에게 익숙한 비욘세나 브리트니 스피어스, 에미넴도 아닌 난생 처음 들어보는 닐 다이아몬드에 대해 엄마가 예민한 반응을 보이자 아이들은 서로 이상한 눈빛을 주고 받았다.


더구나 평소 짠순이 노릇을 해 온 엄마가 비싼 돈을 들여 가수의 콘서트를 가겠다고 하니 충격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의 놀란 반응과는 상관없이 내 입에서는 벌써 그의 감미로운 히트곡들이 '매들리'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 멜린다 워즈 마인 틸 더 타임 댓 아이 파운드 허(Melinda was mine 'til the time that I found her) ♬♪♩~
- 스위트 캐롤라인 (빰빰빰) 굿 타임즈 네버 심 소 굿(Sweet Caroline, Good times never seem so good) ♬♪♩~
- 아이 엠 아이 세드(I am, I said) ♬♪♩~
- 송 송 블루 에브리바디 노우스 원(Song sung blue everybody knows one) ♬♪♩~
- 유 돈 브링 미 플라워즈(You don't bring me flowers) ♬♪♩~


           
a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던 인기 팝 가수 닐 다이아몬드.

수많은 히트곡을 남겼던 인기 팝 가수 닐 다이아몬드. ⓒ flickr.com


그 때 그 시절, 닐 다이아몬드를 만나다

팝송에 심취해있던 추억의 70년대 그 때 그 시절. 고등학교, 대학을 거치면서 내 귓가에 맴돌던 노래가 있었다.

이제는 팝뮤직의 전설이 된 비틀즈, 아름다운 하모니를 자랑하던 사이몬 앤 가펑클, 섹시 스타 엘비스 프레슬리, 청아한 목소리의 존 덴버, 뛰어난 가창력의 바브라 스트라이젠드와 역동적인 아바 그룹.

70년대 당시는 라디오 방송이나 음악 다방에서 국내 가요보다는 외국 팝송을 더 많이 틀어줬다. 그리고 이런 팝 가수 가운데 나를 사로잡은 남자 가수가 있었다. 바로 닐 다이아몬드였다.

닐 다이아몬드가 누구던가. 잘 생긴 외모에 우수 어린 눈빛, 매력적인 콧소리와 절제된 음성을 자랑하던 젊은이들의 우상이 아니었던가. 그는 잔잔한 목소리로 고독을 속삭이기도 했고, 목소리를 높여 심오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또한 직접 노랫말을 짓고 곡을 만들기도 했던 '싱어 송라이터'이기도 했다. 그의 많은 히트곡들은 라디오나 음악 다방의 '인기 DJ 오빠'들을 통해 스피커로 마구 쏟아져 나오곤 했다.

이제는 좀 쑥스러운 고백이 될 테지만 당시에 나는 친구 미숙이와 함께 음악 다방에 가서 음유시인으로 불리던 레오나르도 코헨과 닐 다이아몬드를 즐겨 신청했었다. 내가 좋아했던 노래는 레오나르도 코헨의 'Bird on the wire' 'So Long Marianne'와 닐 다이아몬드의 'Solitary man' 'Be' 'Sweet Caroline' 등이었다.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삶의 의미와 고독을 생각하기도 했고, 어떻게 전개될지 모를 미래에 대한 꿈과 환상을 그려보기도 했다. 그러면서 인생이란 게 과연 시인 박인환의 말처럼 ‘외롭지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기만 한 걸까를 고민하던 시간이었다.

그런 아득한 꿈 같은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거울 앞에 선 내 누님' 같은 중후한 중년이 되어 있었다. '눈 깜짝할 새에'. 이젠 나도 늙었나 보다. 어른들이 쓰던 이런 표현을 스스럼 없이 쓰는 걸 보면. 아, 덧 없는 인생이여!

그런데 지금 바로 내 앞에 추억의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할 ‘추억의 남자’가 목마 타고 온다는 것이다. 기온이 뚝 떨어진 이 추운 겨울에.

가? 말아?

고민이 시작되었다. '가? 말아?' 내 고민의 핵심은 바로 '현실'이란 놈이었다. 나는 이제 추억의 시간을 반추하고 낭만에만 젖기에는 '너무나 현실적'인 아줌마가 되어 있었다.

밤 8시에 콘서트를 한다는데 오고 가는 시간만 세 시간은 걸릴 테고, 거기에 콘서트 시간까지 합치면 족히 다섯 시간 이상은 걸릴 텐데 그 먼 길을 가겠다고? 또 공연 끝나고 으쓱한 밤길을 돌아와야 하는 것도 그렇고. 그리고 무엇보다 돈이 큰 문제인데 가? 말아?

뭐 어때? 그냥 한 번 크게 맘 먹고 가보지. 내가 언제 그를 다시 만날 수 있겠냐고. 그도 늙었고 나도 이미 늙었는데.

“가수 콘서트는 한 번도 안 가봤으니 이번에 한 번 가봐야겠다. 닐 다이아몬드가 온다고 하니."

고민을 하던 내가 우선 아이들의 반응을 떠보기 위해 닐 다이아몬드 공연에 가겠다고 '선언'을 했다.

“나도 가수 콘서트는 한 번도 안 가봤어.”
“이놈아. 앞길이 구만리인 10대 인생과 흰머리, 주름살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는 에미 인생과 어떻게 비교를 해?”

"돈도 비쌀 텐데?”
(인터넷으로 알아보니 제일 싼 티켓은 55불이었다. 하지만 서비스 비용과 기타 비용, 주차비 따위를 합치면 족히 80불은 되는 돈이 필요했다. 비싼 것은 200불도 넘고.)

"얘야, 닐 다이아몬드는 그냥 돈이 아니라고. 추억이야. 돈으로 살 수 없는 추억이라고. 네가 그런 걸 알기나 해?"
"@#$%^&?”

말은 그렇게 했지만 현실은 결국 현실일 터였다. 로맨스보다 더 피부에 와닿는 리얼리티! 나는 과연 닐 다이아몬드를 만날 수 있을까?

a  지난 6월 영국의 카디프에서 있었던 닐 다이아몬드 공연 실황.

지난 6월 영국의 카디프에서 있었던 닐 다이아몬드 공연 실황. ⓒ flickr.com


#닐 다이아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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