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은 만족스러운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비정규직 일자리를 선택했다는 오해와는 달리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51.5%가 자발적으로 일자리를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발적으로 일자리를 선택한 비정규직의 일자리 선택사유는 근로조건 만족(42.1%), 안정적인 일자리(28.0%), 직장이동 등(17.0%), 노력한 만큼 수입 등(12.9%)등이다. 300인 이상 대기업에 종사하는 비정규직은 80.5%가 자발적으로 비정규직을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9월 3일 전경련이 '비정규직접 시행에 따른 문제점과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밝힌 내용이다. 해석에 따라 다를 수 있겠다. 정규직 길이 막힌 가운데 선택한 비정규직을 본인이 선택했다 해서 자발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보고서 대상은 300인 이상 대기업이다. 2006년 기준 300인 이상 대기업 고용인원은 104만3554명이다. 300명 미만은 1351만9164명이다.
이런 글도 있다.
"저는 수학교육과를 졸업한 노조원입니다. 계산원 업무보다 수학문제 하나 더 푸는 것이 쉽습니다. 그러나 현재 나이 40세가 넘다보니 오라는 곳이 없더군요. 이곳 킴스 계산원, 저를 단 20분 만에 채용을 해주더군요. 지금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고객분들께 화 한 번 내지 않고 매일 매일 열심히 일합니다. 그런데 이 회사는 저를 나가라고 합니다. 용역전환, 저는 결사 반대합니다. 이곳 말고도 저를 원하는 곳이 있을까요? 몇 년이고 제 몸이 아파서 더 이상 근무를 못하는 시간까지, 그날까지 열심히 일하고 싶습니다. 이랜드 회장님, 저는 많은 월급도 바라지 않습니다. 다만 이 시간에 일할 수 있게 해주세요." - 뉴코아노조원이 쓴 '소망쪽지' 중에서
비정규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엔 간극이 있다. 그 간극이 심하게 충돌한 사건이 이랜드 파업과 뉴코아 파업이었다. 이랜드는 510일 만에, 뉴코아는 434일 만에 타결을 했다. 1년이 넘는 긴 시간이었다.
그 긴 시간 동안 꾸준히 지켜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시작할 때 잠깐, 점거 등 큰 사건 터졌을 때, 타결할 때 관심 잠깐 두는 게 세상 인심이다. 그러곤 끝. 싸움이 끝나면 사람들은 한시 바삐 자리를 거두고, 관심을 거둔다.
그게 되게 야속했나 보다. 前 민주노총 경기도본부 부본부장인 권미정씨가 <곰들의 434일>(메이데이)란 책을 펴냈다. 뉴코아 파업에 함께 한 권씨가 434일을 기록한 보고서다.
글쓴이는 뉴코아 노동자들이 투쟁을 결심한 이유, 당시 상황, 참여한 사람들을 책에 담았다. '백기투항' '굴복' 등 표현으로 마무리된 이번 파업을 그와 같은 짧은 단어로 기억되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도 담겨 있다.
애초 뉴코아 파업은 이랜드 그룹이 판매대 계산원(casher)을 외주화하겠다고 한데서 비롯했다. 2007년 비정규직 노동자 223명에 대해 외주화 방침을 밝히며 계약해지를 한 것. 비정규직 문제로 보이는 이 일에 대해 뉴코아 정규직 노조가 들고 나섰다.
글쓴이는 이 점이 중요하다고 방점을 찍었다. 정규직 노조에게 비정규직 노조는 방패막이일 수 있다. 경영상 이유로 구조조정이 필요할 때 비정규직이 우선 조정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정규직이 계속 느는 상황에서 정규직이라고 안전지대일 순 없다. 정규직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비정규직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게 비정규직 파업의 핵심이라는 것. 글쓴이가 하는 말이다.
물론 쉽진 않았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마음을 열지 않았다. 자신들을 이용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정규직은 정규직대로 섭섭했다. 자기들 진심을 몰라준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처럼 벽이 있던 양측이 조금씩 마음을 허물고 마침매 손을 맞잡는다. <곰들의 434일>엔 그 과정이 고스란히 담겼다.
권씨는 이번 파업 진행과정을 기록하면서 이윤 확대에 대한 욕심이 비정규직을 만들었다고 진단한다. 그가 보기에 이윤 확대에 대한 욕심은 무한하다. 즉 지금과 같은 구조에선 비정규직 확대는 필수라는 것. 뉴코아 노조 파업에 큰 애정을 쏟은 이유다.
비정규직과 관련한 통계와 각종 데이타는 책에서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는다. 이미 기사를 통해 숱하게 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글쓴이는 파업에 참가한 사람들에 눈길을 돌린다.
한사람씩 빠지기 시작하면 사람들 마음이 흐트러질 테니 수술 동의서 쓰고 간호사, 의사한테 잘 부탁한다고 말만 하고 뛰어와 다시 점거한 매장으로 돌아온 50대 노동자, 결혼한 언니들이 집에 다녀오도록 배려하고, 경찰이 막아서 못 들어와서 초조해하고 있을 언니들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던 나이 어린 노동자. 경찰들이 막아선 차벽 밑으로 기어 들어와 동료들 곁으로 오가던 당신들.(p196)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숱한 파업들이 있었지만, 함께 싸우면서 기록한 책은 적다. 그 점 만으로도 이 책은 가치가 있다. 중요한 것은 기억한다는 것, 잊지 않는 것이 아닐까.
2008.12.04 10:33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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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들의 434일 - 끝나지 않은 뉴코아 노동자의 투쟁
권미정 지음,
메이데이,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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