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08.12.04 14:43수정 2008.12.04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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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부터 겨울비가 쓸쓸히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하루종일 비나 눈이 내린 뒤 주말에는 매서운 추위가 찾아올 거라 하네요. 날도 잔뜩 흐려 낮인데도 방안은 어둑컴컴합니다.
이렇게 음침한 날에는 라디오(KBS2FM)를 켜고 영혼을 울리는 클래식을 들으며 손에 잡힌 소설책을 읽는 것도, 나름 운치있고 슬기롭게 하루를 보내는 방법입니다. 그러다 허기가 지면 건너방에 모셔둔 고구마님을 깨우면 됩니다. 지난 가을 부모님이 밭에서 캐온 고구마를 종이상자에 담아 겨우내 얼어붙을까 집안에 들여놓은 것을 틈나는대로 빼먹고 있습니다.
아삭아삭하고 달달한 밤고구마라서 물에 흙을 씻어내고 칼이나 숟가락으로 껍질을 대충벗겨 냉큼 베어먹어도 참 좋습니다. 고구마의 뽀얀 속살은 사과나 배와는 다른 투박하고 소박한 맛을 뽐내기에 계속 입이 가게 됩니다. 다만 고구마가 딱딱해 이가 좋지 않으면 쉽게 베어먹을 수 없으니, 칼로 조각을 내서 먹는게 좋습니다.
날고구마를 베어먹고 남은 것들은 오래되어 낡은 프라이팬에 올려 불을 넣어둡니다. 솥뚜껑으로 프라이팬 위를 푹 덮어두고 10~15분 정도 느긋이 기다리면 군고구마가 탄생합니다. 가스불에 뜨거워진 프라이팬 속의 열기가 밖으로 새나가지 못하고, 솥뚜껑 때문에 그 안에서 넓게 퍼져 고구마가 타지않고 잘 익습니다. 몸집이 큰 고구마는 조각을 내어 넣어두면 또 잘 익습니다.
프라이팬에서 뒹굴며 잘 익은 군고구마는 구수한 김치찌개나 김치볶음과 먹으면 그 맛이 끝내줍니다. 김장김치를 얹어먹어도 좋습니다. 뜨거운 고구마를 "후후후" 불어가며 서너개를 먹고 나면 밥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한끼 식사로도 충분합니다.
옛날에는 쌀 등 식량이 부족해 보릿고개라는 말도 구황작물이란 말도 있었습니다. 흉년 따위로 기근이 심할 때 주식물 대신 서민들이 먹을 수 있는 농작물 중에 하나가 바로 이 고구마였습니다. 이제는 겨울철 빼먹을 수 없는 훌륭한 주전부리감이지만요.
추위를 몰고오는 비바람이 창문을 두드립니다. 이런 날 낡은 프라이팬에 고구마님을 올려보심은 어떨까요? 화학첨가물이 들어간 과자들보다 더 맛나고 몸에도 좋답니다!
덧. 군고구마가 식으면 식은대로 그 맛이 있습니다. 만약 뜨겁게 드시고 싶으면 고구마 껍질을 벗기고 밥통속에 넣어두시면 됩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U포터뉴스와 블로거뉴스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12.04 14:43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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