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황석영의 자전적 성장소설 <개밥바라기별>을 빛 좋은 세상에서 만났다. 그동안 사이버 공간에서 만났던 그 소설이다. 올해 2월 27일 처음 연재를 시작한 <게밥바라기별>은 5개월 동안 네이버 블로그에 연재되는 동안 숱한 화제를 낳았다. 그리고 180만 여명의 네티즌들로부터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다. 그 동안 인터넷 매체란 너무나 가벼워서 본격문학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는 통념을 깨뜨린 것이다. 우리 문단에서도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질 만큼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 여파가 피부에 와 닿는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한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가 거의 매일 연재 블로그의 덧글란과 'guest'란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들과 부대끼며, 문학과 예술, 세상사에 대해 정담을 나눴고, 때론 치열한 토론을 해왔다는 사실이다.
독자들 스스로 ‘별 광장’이라 이름 붙인 ‘개밥바라기별’ 연재 블로그는 실제로 광장이나 다름없었다. 전국 곳곳에서, 멀리 미국과 캐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에서 독자들이 별 광장을 찾았다.
이렇게 수많은 독자들은 그날 올라온 황석영 작가의 작품에 대해 대화하고, 다른 수많은 문학작품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문학만이 아니다. 영화와 음악과 미술에 대해, 소고기 협상과 촛불집회를 비롯한 시국에 대해, 그리고 소소한 개인사에 이르기까지 별 광장에서는 새벽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개밥바라기별’은 모두가 함께하는 ‘별 광장’이었다
<개밥바라기별>은 작가 황석영의 자전적 성장소설로, 고교를 자퇴한 뒤 베트남 전에 참전하기까지 소년 시절 기록이다. 사춘기 때부터 스물 한 살 무렵까지의 길고 긴 방황에 대해 그는, 주인공 ‘준이 겪는 소년 시절의 방황’을 통해 실제로 경험했던 청춘의 나날을 이야기하고 있다.
살아가면서 누구나 상처를 받았던 때가 있다. 그것이 방황이든 괴로움이든 언젠가 한번쯤 겪는 홍역 같은 것이다. 이 소설은 그런 그 시절의 아픈 기억과 편린들을 낱낱이 밝히고 있다. 그래서 한 인간이 어떻게 성장해 가는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지를 이야기한다. 작가 황석영을 있게 한 진솔한 이야기다. 이야기 속에는 그의 예술관과 세계관이 형성되는 과정과 문학적 원형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개밥바라기별>은 성장에 대해 묻는 소설이다. 무엇이 우리를 성장시키고 사람답게 만드는가를 묻고 있다. 우선 책을 읽노라면 목차부터 다르다. 간단하다. 재밌다. 1장 그날들 속으로, 2장 영길, 3장 준, 4장 인호, 5장 준, 6장 상진, 7장 준, 8장 정수, 9장 준, 10장 선이, 11장 준, 12장 미아, 13장 준 연방 지척에 선 누군가를 부르는 것 같다 정겹다.
그들은 누군가. 작가 황석영과 그의 짝패들이다. 미열이 나는 성장기를 거쳐본 사람들은 안다. 그 처절했던 시기가 바로 통과의례로 거쳐야했던 모든 젊음들의 초상이었다고. 이 소설을 읽으면서 어쩌면 사춘기에 방황하고, 회의하고, 갈등하며 머리를 싸맸던 스스로의 모습을 되새기게 한다. 작가와 그 짝패들이 꺼내 놓았던 추억 속에 내가 있다. 나도 한 패거리가 된다.
못다 한 내 성장의 아픔이 담긴 '개밥바라기별'
누군들 그러고 싶지 않겠나. 사소한 것 하나도 그저 넘어가는 것이 없고, 시시콜콜 따져들고, 쫀득쫀득하게 이것 하라 저것 하라는 속박, 그러나 그것이 죽기만큼이나 싫었던 그 시절, 누구나 마른 장작이었다. 그래도 가뭄에 콩 나듯 ‘죽이 맞는 친구’를 만나게 마련이고, 그런 친구와 밤새도록 얘기하고, 캠핑도 가고, 여행도 가고, 산에 오르면서 발산하는 젊음을 삭혔다. 그게 <개밥바라기별>과 상응하는 성장기다.
다들 거웃이 거뭇거뭇할 때쯤에는 이성에 마음이 설렜다, 그러다가 사랑에 빠지고, 몇날며칠을 사랑앓이를 했다. 그러다가도 불투명한 앞날에 대해 고민하고, 회의하고, 절망하면서 보냈던 숱한 날들, 이 소설 속에는 못 다한 내 성장통이 아린 기억으로 남아 있어 아쉬웠다.
누구에게나 지나간 시간 속에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지 가슴 아린 기억이 남게 마련이다. 늘 '지금여기'(Here and Now)에 충실하려 애쓰지만, 그 자리에는 결코 지워지지 않을 흉터가 남아 있다. 다 아문 줄 알았던 상처들은 고스란히 가슴 한구석에 자리를 잡는다. 그러나
그것들은 단지 상처가 아니다. 그렇게 서둘러 닫아버린 상처 안에 잃어버린 꿈들과 붙잡지 못한 희망,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이 함께 들어 있다.
"나는 이 소설에서 사춘기 때부터 스물한 살 무렵까지의 길고 긴 방황에 대하여 썼다.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끊임없이 속삭이면서 다만 자기가 작정해둔 귀한 가치들을 끝까지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전제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너의 모든 것을 긍정하라고 말해줄 것이다. 물론 삶에는 실망과 환멸이 더 많을 수도 있지만, 하고픈 일을 신나게 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태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때려치운다고 해서 너를 비난하는 어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다. 그들은 네가 다른 어떤 일을 더 잘하게 될지 아직 모르기 때문이다." _「작가의 말」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지만 소설은 그걸 재미있게 보여준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려 애쓰는 인물도 나오고, 제도교육에 충실한 범생이도 나온다. 그들의 대화에서 많은 걸 느낄 수 있다. 무엇이 사람을 성장시키고 사람답게 하는지를.
무엇이 사람을 성장시키고 사람답게 하는가
<개밥바라기별>은 작가 황석영이 작정하고 쓴 자전적 성장소설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 준이 겪는 길고 긴 방황은 실제 작가 자신의 청춘의 기록이기도 하다. 작가는 그간 가슴속에 묻어둔 상처를 헤집어 그 시절과 다시 대면한다. 고등학교 자퇴, 방랑, 일용직 노동자와 선원으로서의 생활, 입산, 베트남전 참전, 방북, 망명, 투옥에 이르는 황석영의 실제 행보는 한 개인사로는 버거운 불행이었을지 모르지만 독자인 우리에게는 행운이다.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 하고 싶은 일을 신나게 해내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태어난 이유이다. 다만 자신의 소중한 가치는 절대 잃지 말고.”
작가의 말처럼 이 소설은 오래 덮어두었던 기억들을 헤집어 들여다보게 한다. 그걸 들여다보면서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아프고 괴로웠던 순간들이 나를 키우고 다독인 시간이었다는 것을. 빛나는 순간은 내일에 있지 않고 오늘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것을. 그게 <개밥바라기별>을 읽는 참맛이다.
2008.12.04 17:14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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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바라기별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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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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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국기자는 2000년 <경남작가>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한국작가회의회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 수필집 <제 빛깔 제 모습으로>과 <하심>을 펴냈으며, 다음블로그 '박종국의 일상이야기'를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김해 진영중앙초등학교 교감으로, 아이들과 함께하고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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