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이면 전국의 25개 법학전문대학원(이하 로스쿨)이 일제히 개원한다. 5일, 첫 로스쿨 합격자가 발표된다. 앞으로는 로스쿨 수료자만 '변호사 자격 시험'에 응시할 수 있게 된다. 그동안 법조인의 등용문이었던 사법시험은 로스쿨 개원에 맞춰 합격자 수를 점차로 줄여 나가다가 2016년경 완전히 폐지될 예정이다.
사시와 로스쿨 사이에 낀 샌드위치 세대의 고민
그렇다면 사법시험과 로스쿨의 사이에 낀 샌드위치 세대라 할 수 있는 기존 사법시험 수험생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난해와 올해에 걸친 두 번의 2차 시험에서 모두 불합격의 쓴 잔을 들이키고 다시 1차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송병석(29·중앙대 법학과 졸)씨와 하루를 함께하며 이들의 분위기를 살펴봤다.
[오전 07:00] 신림동에서 혼자 생활하는 송씨는 4평짜리 미니원룸에서 눈을 뜬다. 아침은 우유 한 잔에 바나나 하나. 아침을 든든하게 먹어야 좋다는 것은 알지만 서두르지 않으면 학원 수업에서 좋은 자리를 맡을 수 없다. 원룸에서 걸어서 5분 남짓한 거리에 있는 학원을 가는 동안에도 이어폰을 끼고 법조문이 녹음된 테이프를 듣는다.
[오전 08:00] 점심까지 학원 수업이 진행된다. 홀로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사람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법시험의 어마어마한 분량을 소화해 내려면 학원 수업을 따라가는 방법이 가장 안정적이다. 80분 수업에 10분 휴식. 인기 강사의 수업은 한 강의실에 200-300명가량의 학생들이 들어찬다.
책 한 권을 펼쳐 둔 채 필통 하나를 놓으면 남는 공간이 없는 책상에, 옆 사람과 어깨를 맞부딪힐 정도로 비좁은 공간이지만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요즘은 진도별 모의고사 기간이라 1시간 정도 객관식 시험을 본 다음 문제풀이를 하는 형식으로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사시준비 그만두고 로스쿨이나 해 볼까?
[오전 12:30] 수험생들을 상대로 하는 이른바 뷔페식 고시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식권 100장에 24만 원, 한 끼에 2,400원 꼴이지만 반찬은 푸짐하다. 흑미밥에 감자국, 탕수육, 숙주나물무침, 김치, 오징어 숙회, 김치전, 후식으로 사과 반쪽까지.
송씨와 함께 식사를 하는 후배 김성현(27)씨는 몇 년째 계속되는 수험생활에 지쳐 "학과동기인 누구는 로스쿨 3차 면접까지 봐서 최종 발표만 기다리고 있다던데, 나도 로스쿨이나 해 볼까"하고 푸념 아닌 푸념을 한다. 하지만 로스쿨 입시를 위해서는 법학적성시험인 LEET(Legal Education Eligibility Test)나 영어 성적, 각종 자격증 취득 등을 새롭게 준비해야 한다. 그러기에는 그동안 사법시험에 투자한 기회비용이 너무나 크다.
식당에서 7년째 일하고 있는 윤상미(35)씨는 "로스쿨이 도입되면서 사법시험 준비를 그만 두는 학생이 꽤 되는 걸로 안다"며 "지난해부터 식당을 이용하는 학생들이 눈에 띄게 줄었다"고 말했다. 법무부가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2008년 사법시험 1차 시험 응시자는 1만7829명으로 지난해의 2만 3438 명에 비해 대폭 감소했다.
[오후 1:00] 독서실에서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다. 내년 2월 18일로 예정된 1차 시험이 두 달 앞으로 다가오면서 날카로워진 주변 사람들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독서실 내부에서는 휴대전화 진동소리는 물론, 책장 넘기는 소리나 기침 소리도 크게 내서는 안 된다.
이런 살벌한 분위기에서 법조문부터 시작해 기본서와 수험서, 판례집과 문제집까지 깨알 같은 글씨의 두꺼운 법서들을 하루 200페이지 이상 반복해서 꾸준히 읽어야 한다. 좀처럼 집중이 되지 않을 때는 합격자들의 수기를 읽으면서 마음을 다잡곤 한다.
너도 그러지 말고 차라리 지금이라도...
[오후 6:00] 저녁 식사 후, 집에 전화를 드린다. 부모님 목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가짐이 새로워지기도 하고, 아직까지 집에서 모든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여, 송씨는 부모님께 전화를 자주 하는 편이다.
한달 방세 30만 원에 학원비 40만 원, 식비 20만 원에 독서실비 10만 원. 여기에 책값과 잡비가 더 필요하니 수험생의 월 생활비는 100만 원을 가뿐히 넘긴다. "어느 집 딸은 회사 다니다가 이제 로스쿨에 간다던데 너도 그러지 말고 차라리 지금이라도…"라는 어머니의 말에 "열심히 할게요"하는 대답만 하며 전화를 끊는다. 설령 로스쿨로 진로를 바꾼다고 하더라도 연간 등록금만 2천만 원에 육박하는 학비를 감당해 낼 자신은 없다.
[저녁 7:00] 독서실 지하에 마련된 세미나실에서 4명의 스터디 팀을 만나는 시간이다. 시간을 맞추고 공부 내용을 정하는 등 의견 조율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지만, 슬럼프에 빠지게 되더라도 다른 팀원을 보면서 기력을 되찾기가 쉽다는 장점 때문에 송씨는 스터디 팀을 선호한다. 학원 진도에 맞춰 자료를 하나 하나 정리해서 발표하고 토론하는 팀도 있지만, 송씨의 팀에서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객관식 문제의 답을 맞춰 풀고, 헌법 조문을 암기하여 서로 검토하는데 그친다.
[새벽 1:00]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독서실을 나서는 시간, 앞으로 사법시험이 없어지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을 어렵게 꺼냈다. 송씨는 짧고 굵직한 답변을 내놓고 집으로 향했다.
"막차 타야죠."
법조인 양성, 어떻게 달라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