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지극 정성이 터미널환자를 살렸습니다!

[동포아리랑⑧] 식물인간 살린 아내의 간병기

등록 2008.12.07 18:20수정 2008.12.08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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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남편 홍천학씨를 간병하고 있는 아내 김명옥씨

남편 홍천학씨를 간병하고 있는 아내 김명옥씨 ⓒ 조호진

남편 홍천학씨를 간병하고 있는 아내 김명옥씨 ⓒ 조호진

그 가난한 시절에도 가족을 버리는 일은 천벌 받을 짓이었습니다. 하물며, 병든 가족을 버리는 일은 금수만도 못한 패악한 짓이었기에 송장 같은 병자와 방 안에서 한 솥밥을 먹었습니다. 지성(至誠) 말고는 별 다른 치료법이 없던 그 시절엔 말입니다. 그런데 돈 독 오르면서 인륜(人倫)은 저자거리에 내버려졌습니다.

 

조국이 그리워 한국에 오기도 했지만 정작엔 돈벌이를 위함입니다. 타국 땅의 그 지독한 가난을 벗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국을 찾았습니다. 남의 신분으로 여권을 발급받기도 했고, 위장 결혼을 하기도 했고, 사채 빚을 얻어 브로커에게 돈을 주면서까지 한국에 왔습니다.

 

그런데, 함께 한국에 온 노부모가 자식이, 남편과 아내가, 형제와 자매가 덜컥 병들어 버렸습니다. 수월찮은 병원비도 캄캄하지만 그 보다는 병수발에 몸이 묶여 돈벌이를 할 수 없다는 것이 암담하게 합니다. 그래서 눈물 머금고 중풍 든 아버지와 동생을 버렸고, 병든 남편과 자식이 속히 죽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오늘도 비정한 '코리안드림'을 태운 비행기와 선박이 인천공항과 연안부두에 도착합니다.

 

죽기 전에 들른 터미널 환자였습니다

 

a  남편과 눈맞춤을 하며 웃음을 유도하는 아내 김명옥씨.

남편과 눈맞춤을 하며 웃음을 유도하는 아내 김명옥씨. ⓒ 조호진

남편과 눈맞춤을 하며 웃음을 유도하는 아내 김명옥씨. ⓒ 조호진

서울 구로구 가리봉1동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외노의원) 306호실. 중환자실인 이 방에서 작은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식물인간이었던 홍천학(64 중국 길림성 휘남현)씨가 손과 발을 움직이는 것은 물론 손 인사를 할 정도로 호전된 것입니다.

 

홍씨는 아내 김명옥(60)씨와 함께 지난 2006년 2월 29일 한국에 왔습니다. 김치공장, 닭  농장, 돼지농장 등에서 일하다 임금체불까지 당했던 홍씨는 이 해 5월 전북 진안의 한 주유소의 안정된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주유원으로 일하던 이 해 12월 16일 뇌출혈로 그만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아내 김씨는 남편을 살리기 위해 전주, 김해, 부산의 병원을 전전했지만 호전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고 가정부로 일해 번 돈도 거의 바닥이 났습니다. 여느 이주노동자 환자들처럼 돈은 떨어지고 오갈 데 없게 된 김씨는 남편을 데리고 지난 5월 26일 외노의원을 찾았습니다.

 

외노의원 관계자는 입원 당시의 홍씨 상태를 '터미널 환자'(임종을 앞에 둔 환자)였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죽기 전에 잠깐 거쳐 가는 환자였던 홍씨 얼굴에 홍조가 띄고, 눈짓을 하고, 누운 채로 손발을 들었다 내렸다 하고, 심지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는 것입니다.

 

돌 틈에서도 꽃이 피게 할 아내의 간병

 

a  아내 김명옥씨는 거의 매일 남편을 휠체어에 태워 가리봉 일대를 돌며 운동을 시킵니다. 그렇게 세상도 구경시키며 회복의 몸짓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아내 김명옥씨는 거의 매일 남편을 휠체어에 태워 가리봉 일대를 돌며 운동을 시킵니다. 그렇게 세상도 구경시키며 회복의 몸짓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 조호진

아내 김명옥씨는 거의 매일 남편을 휠체어에 태워 가리봉 일대를 돌며 운동을 시킵니다. 그렇게 세상도 구경시키며 회복의 몸짓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 조호진

"아주머니처럼 간병하면 돌 틈에서도 꽃이 필 것입니다."

 

김씨의 간병을 지켜본 외노의원 관계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24시간 남편 곁을 지키는 김씨는 한 눈 팔 새가 없습니다. 대변에 적셔진 기저귀를 갈아주고, 욕창을 방지하기 위해 자세를 바꾸어 주고, 가래가 숨을 막지 않도록 수시로 석션 해주고, 식사 때가 되면 그린비아(환자용 의료식품)를 호수로 투입합니다. 그리고, 거의 매일 1~2시간은 휠체어에 남편을 태워 가리봉 일대를 돌며 운동을 시킵니다.

 

홍씨는 아내의 지극정성에 화답하듯 손가락을 움직이려 애썼고, 꿈틀거리는 손가락을 본 김씨는 마치 아이가 걸음마를 뗄 때처럼 격려하였습니다. 그렇게 아내와 남편의 눈물겨운 투병 노력은 손가락에서 발가락과 눈짓으로 이어졌고, 손과 발을 움직이는 수준으로 호전된 것입니다.

 

배은분(47) 간호사는 홍씨가 현재 상태로 낫게 된 공은 전적으로 아내 덕분이라며 "아무리 많은 돈을 주어도 간병인은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라며 "그렇게 남편을 위해 혼신을 다하다보니 아주머니의 건강(위염)이 훼손된 것 같다"며 우려했습니다.

 

김씨의 걱정은 자신의 건강이 아닙니다. 외노의원의 도움 덕분에 병원비는 무료이지만 기저귀와 환자용 식품인 그린비아 구입비로 한 달에 40만원 가량이 필요합니다. 아버지의 간병을 이유로 한국에 나온 작은 아들(37)이 간혹 공사현장에서 일해 번 돈으로 일부 충당하고 있지만 이 또한 자식에게 못할 짓입니다.

 

"늙어서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으려고 한국에 돈벌러 나왔는데 어쩌다가 자식에게 부담을 주고 있으니 미안할 뿐입니다. 무엇보다 취업할 수 없는 비자로 나온 아들이 일하다 잡히면 강제추방 당할 수밖에 없는데…."

 

병든 식솔을 버려야 살 수 있다고 믿는 패악한 시대에 김씨를 지켜주는 힘은 '감사함' 입니다. 긴 병에 지쳐 신세를 탓하며 남편과 세상을 원망하기보다는 자신들을 치료해주고 기도해주는 그 손길을 위해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기가 아니면 오갈 데 없이 길바닥에서 죽는 신세였는데 병원의 도움으로 이렇게 치료해주시니 환자도 나으려고 애쓰는 것 같습니다. 불쌍한 인생이지만 어서 나아서 저절로 다닐 수만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12.07 18:20ⓒ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뉴스앤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뇌출혈 #재중동포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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