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목전에 두고 일본인 선생의 꾀임에 넘어가 근로정신대에 강제동원된 김정주 할머니가 63년만에 모교 순천 남초등학교로부터 졸업장을 받게 됐다.
이국언
할머니를 몇 차례 뵐 때마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일본으로 끌려가는 바람에 초등학교 졸업장 한번 못 만져봤다는 것입니다.
순천 남초등학교(교장 유채중)와 국가기록원 등에 확인해보니, 다행히 일부 기록이 남아 있었습니다. 이미 졸업은 한 상태였습니다. 다만 졸업 직전 일본에 끌려가는 바람에 정작 본인 손으로는 졸업장을 만져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엊그제 반가운 소식 하나가 들려왔습니다. 할머니의 모교 순천 남초등학교에서 할머니를 위해 별도로 졸업장을 하나 만들어 드린 것입니다. 할머니의 소식을 듣고 유난히 안타까워하던 교장 선생님의 배려 덕분입니다.
졸업장을 장식하고 있는 크리스털 액자가 유난히 깨끗해 보입니다. 교장 선생님은 또 특별히 할머니를 위해 연보라빛 내복 한 벌까지 준비하셨습니다. 개교 100주년을 맞아 제작한 학교 100년사 한 권까지….
사실 졸업장을 전달키로 한 것은 지난 7월경이었습니다. 그러나 할머니의 건강이 여의치 않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조촐하지만 따뜻한 점심 한 끼라도 대접하고 싶다는 교장 선생님의 뜻도 있고, 이왕 모교도 둘러보도록 할 겸 건강이 회복될 때까지 시일을 조금 늦춰 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인 듯 합니다. 할머니의 건강은 좀처럼 호전되지 않는 듯 합니다. 결국 한 해의 마지막인 12월, 더 늦출 수도 없어 소포를 통해 전달하기로 했습니다.
유리가 깨질까봐 박스 안에 신문지를 말았다 풀었다 몇 번이나 부산을 떨었던지 우체국 한 여직원이 '무슨 물건인데 그러느냐'며 사연을 묻더군요. 그러고는 도중에 혹시 무슨 탈이라도 날까봐 '파손 주의'가 적힌 스티커를 몇 장씩 눈에 보이는 대로 갖다 붙이면서 본인이 더 애달아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선물이 될 것 같다는 말과 함께….
"정말입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저 하나 때문에 모두 귀찮게 만들어서…."수화기로 들려오는 할머니의 가녀린 음성에는 벌써 물기가 젖어 있습니다. 우체국을 나서는 내내 여러 마음이 교차합니다. 나라가 힘없던 시절, 죄 없는 한 백성이 겪어야 했던 고통치고는 너무 초라하게 남은 삶의 흔적이기 때문입니다.
찬바람 부는 한 해의 끝자락, '63년 만에 돌아온 졸업장'이 할머니의 고단한 삶에 잠시나마 기쁨과 위로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