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에서 삼성은 더 잘 나간다?

[MB시대 악법들③] 노골적으로 재벌 편드는 '금산분리 무력화' 법안들

등록 2008.12.11 09:40수정 2008.12.2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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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과 김영희 변호사가 지난 3월 28일 오전 서울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에서 열린 우리금융지주 주주총회에 참석해 삼성그룹의 차명계좌를 개설하는 과정에서 금융실명제를 위반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총회를 마친뒤 회의장을 떠나고 있다.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과 김영희 변호사가 지난 3월 28일 오전 서울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에서 열린 우리금융지주 주주총회에 참석해 삼성그룹의 차명계좌를 개설하는 과정에서 금융실명제를 위반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총회를 마친뒤 회의장을 떠나고 있다.유성호

올해 초 김용철 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의 폭로로 우리은행이 삼성비자금과 관련된 차명계좌를 개설·유지하는 데 적극 협조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금융실명제법을 위반한 행위였다. 우리은행이 삼성의 지배를 받고 있는 금융회사가 아닌데도 삼성 비자금 창구로 이용된 것이다.

현재 국회에 제출된 은행법·금융지주회사법·공정거래법 등이 개정되면 이러한 불법행위는 더욱 많아질 수 있다. 재벌들이 은행을 소유해 사금고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법] 대기업의 은행 소유 등 허용... "재벌 사금고화 우려"

이명박 정부와 여당은 재벌이 주도하는 금융산업 재편을 위해 은행법·금융지주회사법·공정거래법 등 관련법 개정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이들 개정안의 공통점은 '금산분리 무력화'다.

금산분리는 금융기관의 산업자본 지배나 산업자본의 금융기관 지배를 막는 조치다. 이는 재벌이 금융기관을 이용해 지배력을 과도하게 확장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가 금산분리 완화를 시도한 데 이어 이명박 정부는 아예 금산분리 무력화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먼저 은행법 개정이다. 국회 정무위원회 한나라당 간사인 박종희 의원이 대표발의한 은행법 개정안은 대기업이 은행지분을 현행 4%에서 10%까지 직접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그동안 은행을 소유하고 싶었던 재벌들이 자신들의 꿈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이다.

한 금융전문가는 "우리나라 대형은행 대주주의 지분이 4~5%밖에 안 된다는 점을 헤아릴 때 지분이 10%만 있더라도 은행에 대한 지배권을 가지고 있는 걸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벌이 은행을 소유하게 되면 은행이 재벌의 사금고로 전락할 수 있고, 이는 자금흐름을 왜곡해 은행의 부실화로 이어질 수 있다. 또 이는 금산분리를 강화해온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금융연구원의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세계 100대 은행 중 산업자본이 지분 4% 이상을 소유한 경우는 17곳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제조업체가 은행을 소유한 경우는 4곳뿐이었다. "산업자본의 은행소유에 대한 명시적 규제가 미국처럼 강하지 않은 유럽에서조차 산업자본의 은행소유는 대단히 예외적 현상"이라는 지적이다.


허태열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한 은행법 개정안은 여기에서 더 나아갔다. 먼저 은행지분을 4% 이상 소유한 산업자본이 최대주주가 되거나 경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금융당국의 사전 승인, 은행임원 선임 제한 등의 단서를 달고 있지만, 산업자본의 은행 경영을 합법화한 것이다.

또 사모펀드(PEF)가 은행을 인수할 수 있는 기준도 대폭 완화했다. 현행법상 산업자본이 10% 이내에서 투자한 사모펀드만 금융주력자로 인정받아 은행을 인수할 수 있다. 그런데 앞으로는 이 기준이 '30% 이내'로 완화되고, 특히 서로 다른 대기업 소속 계열사들의 경우에는 '50% 이내'로 완화된다.

이는 산업자본이 사모펀드를 통해 은행을 인수할 수 있음을 뜻한다. 하지만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한 뒤 은행의 경쟁력 강화보다는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매각을 서두르고 있는 현실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국민연금 등 62개 공적 연기금도 은행을 인수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은행 부실화와 함께 연기금까지 부실해질 경우 밑빠진 독에 엄청난 혈세를 쏟아야 하는 부작용이 예상된다.

[금융지주회사법] 삼성 지배구조 개편과 밀접... "이재용 지배권 정당화하는 법"

또 다른 '금산분리 무력화 법안'인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은 정부가 입법예고했지만 결국 의원입법으로 발의됐다. 지난 11월 24일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에 따르면, 금융지주회사(은행·증권·보험 등)가 비금융지주회사(산업자본)를 소유하는 것이 허용되고, 산업자본의 은행주식 보유기준도 완화된다.

은행을 제외한 보험·증권지주회사가 제조업 자회사를 둘 수 있다. 다만 증권지주회사의 경우 금융자회사에 제조업 손자회사를 둘 수 있지만, 보험지주회사의 경우 제조업 손자회사를 거느릴 수 없다.

이러한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은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과 밀접하게 닿아있다. 이건희 전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계속 삼성그룹을 지배할 수 있도록 정당화해주고 있다는 것. 그래서 참여연대 등은 '삼성특혜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상민 참여연대 시민경제위원회 간사는 "현행법상 금융지주회사는 비금융회사를 자회사나 손자회사로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 등으로 이어지는 출자구조가 깨진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이재용 전무는 에버랜드를 지배해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지배하고 있는데, 에버랜드가 금융지주회사가 되면 이재용 전무는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동시에) 지배할 수 없고 생명만 가지게 된다. 이전에는 회계기준 변경이라는 꼼수를 통해 유예시켰지만 조만간 에버랜드가 금융지주회사가 될 수밖에 없다. 삼성의 목표는 지주회사가 되더라도 삼성생명이 삼성전자를 지배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공성진 법안은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더라도 그런 지배상태를 유지하도록 해준다."

이종태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도 "삼성은 몇 년 안에 계열분리를 하거나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해야 하는데 이렇게 갈 경우 현재의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며 "하지만 공성진 법안대로 금융지주회사법이 개정되면 산하 계열사에 대한 이건희 일가의 지배권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회 정무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여권에서는 현재의 순환출자구조를 인정하는 쪽으로 법안을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흐름이 있었다"며 "하지만 그렇게 할 경우 '삼성을 위한 입법'이라는 것이 뻔히 드러나기 때문에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순환출자구조를 인정하는 개정안에 대한 반대가 거세기 때문에 여권은 공성진법안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라며 "삼성의 처지에서는 공성진법안이 만족스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지주회사는 제조업 자회사나 손자회사를 둘 수 없다'는 개정안 내용이 삼성그룹에는 아주 아쉬운 대목이라는 얘기다. 이 규정 때문에 삼성그룹은 금융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더라도 삼성생명이 삼성전자를 거느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금융위원회에 비은행지주회사 전환계획을 제출한 대기업집단의 경우 순환출자, 공동출자 등에 대한 규제를 최장 7년(5년+2년)간 유예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공성진 의원은 "지분정리에 따른 충격완화"를 이유로 들었지만, 이는 삼성의 불법적 지배구조를 7년간이나 유지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서울 서초동 삼성 신사옥.
서울 서초동 삼성 신사옥.연합뉴스

[공정거래법] 출총제 폐지 등... "경제력 집중 완화 근거 있나?"

공정거래법은 ▲출자총액제한제 ▲지주회사 규제 ▲상호출자 및 채무보증 규제 등을 통해 재벌(대기업집단)을 규제해왔다. 하지만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개정안에서는 이러한 규제조항들이 완화되거나 폐지된다.

먼저 재벌들의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한 출자총액제한제가 폐지된다. 그동안 자산총액 10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은 순자산액의 40% 이상을 초과해 다른 국내회사의 주식을 취득하거나 소유할 수 없었다.

또한 지주회사와 관련된 규제가 대폭 완화된다. 현행법상 지주회사는 부채비율이 200% 미만이어야 하고, 비계열사 주식을 5% 이상 취득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개정안에 따르면, '부채비율 200% 미만'과 '비계열사 주식 5% 이상 보유 금지' 규정이 폐지된다.

민주당 이성남 의원실의 김영철 보좌관은 "정부는 출총제가 사문화되었다는 점을 들어 폐지해야 한다고 한다"며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완화되었다는 근거도 없고 사후장치도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폐지한다는 것은 성급하다"고 비판했다.

김 보좌관은 "비계열사 주식 5% 이상 취득 금지 규정이 폐지되면 계열사로 편입하지 않더라도 5% 이상 주식을 취득해 다른 회사를 지배할 수 있다"며 "결국 문어발식 확장의 가능성을 열어놓아 지주회사의 경제력은 더 집중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동의명령제(consent order)'가 신설된다. 기업의 위법을 사법부가 판단하지 않고 공정거래위와 해당기업이 합의해서 사건을 종결하는 제도다. 즉 기업이 공정거래법을 위반하더라도 시정조치를 약속하면 과징금 부과나 검찰 고발 등과 같은 제재를 하지 않겠다는 것. 이것도 '대기업 봐주기'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다분하다.

지금까지는 금융기관이 보유한 산업자본의 의결권 행사를 제한해왔다. 이는 금융기관이 산업자본의 지분을 소유하게 되더라도 그 영향력을 제한해 금산분리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조치다. 삼성은 이 조항과 관련해 헌법소원을 제기했다가 '삼성 X파일' 사건이 터진 뒤 자진 철회했다.

대기업이 지주회사로 전환하려면 소유하고 있는 금융회사는 2년 안에 매각해야 한다. 지난해 CJ그룹은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CJ투자증권과 CJ자산운용을 현대중공업에 매각했다. 지주회사로 전환중인 SK그룹과 두산그룹도 각각 SK증권과 두산캐피탈을 매각해야 한다.

하지만 공정거래법이 비금융지주회사가 금융지주회사를 소유할 수 있도록 개정되면 대기업들은 금융계열사를 매각하지 않아도 된다. 그만큼 대기업들의 지주회사 전환이 쉬워진다는 얘기다.

이종태 연구위원 "MB정부, 재벌을 금융산업 주도세력으로 키우려 한다"

전문가들은 정부 여당이 국회에 제출한 금산분리 완화법안들이 이명박 정부의 '금융·서비스산업 육성 정책'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세계 금융위기 이전 미국 월가의 금융복합체를 꿈꾸고 있다는 것. 

이종태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명박 정부의 금융화 정책은 노무현 정부를 계승한 측면이 있다"며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시혜적 복지제도를 유지하면서 정책을 추진한 반면 이명박 정부는 재벌을 금융산업의 주도세력으로 세우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이 연구위원은 "금산분리를 완전히 철폐하기 위해 은행법·금융지주회사법·공정거래법 등을 제정하려는 것 같다"며 "이렇게 금산분리를 부수려는 이유는 재벌의 사회경제적 권력을 유지시켜주고 미국에서 서브프라임 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잘 나가던 대형화된 금융복합체를 한국에서도 만들겠다는 데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이 연구위원은 "이는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고 있는 것"이라며 "재벌들이 금융에 뛰어들어 기존에 했던 것처럼 산업에 대한 헌신, 고용, 연구 개발(R&D) 등을 통해 전체 성장력을 키우려고 할지 의문"이라고 우려했다.

이 연구위원은 "2000년부터 재벌의 경우 영업이익보다 영업외 이익이 계속 커졌다"며 "생산보다는 금융을 통해 자산을 키우는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데 금산분리까지 없어지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 연구위원은 "금산분리를 폐기하려는 법안은 반시장주의 법안"이라며 "금산분리 무력화는 시장기능을 왜곡하고 마비시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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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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