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로부터 오지 않은 오늘은 없다. 오늘은 어제와 같지 않지만 혈관을 통해 피가 오가듯이, 그렇게 해서 사람이 생존하듯이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지만 시간에도 혈관처럼 어제와 오늘을 잇는 무엇이 존재한다. 그러나 모든 오늘이 어제로부터 오는 것도 아니다.
지난 9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는 한 젊은 교수의 작곡발표회가 있었다. 국악작곡가가 그리 많지도 않지만 또 막상 주목받는 작곡가는 더욱 많지 않기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날 작곡발표회에서 연주된 곡들은 국악을 닮은 국악이라는 느낌을 건네주었다.
국악이면 국악이고, 아니면 아닌 시대가 아니다. 오늘날 국악은 참으로 다양한 형태로 대중에 나서고 있다. 한때를 풍미한 퓨전은 요즘 한숨 고르고 크로스오버란 이름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며, 그것 안에는 얼핏 국악인가? 하는 의문을 주는 경우도 드물게 존재한다.
본디 전통시대에 음악은 연주자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물론 지금도 연주자가 구성하는 곡들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연주 수요를 담당하는 것은 극히 미약하여 이 시대에 연주되는 모든 새로운 곡들은 작곡가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닌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곡가는 대단히 중요하다. 미래의 국악은 결국 작곡가에 손에 달린 것이다. 어찌 보면 무서운 일이다.
연주하는 입장에서는 자신을 돋보이기 위해서 중요하겠지만, 국악의 미래를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그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우리들에게는 불세출의 국악작곡가 박범훈이 있다. 이 날 객석에 자리 잡고 제자의 음악을 들었던 중앙대 박범훈 총장은 ‘작품은 작곡가의 마음을 그대로 빼닮은 붕어빵’ 같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작곡가의 마음에 국악이란 혈액이 흐르고 있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과거에는 정간보라는 악보도 없지는 않았지만, 민속음악에 있어서는 철저하게 구심전수라는 보이지 않는 악보에 의해서 익혀졌다. 지금도 판소리나 산조 등은 그 방식을 지켜오고 있다. 그러나 정확한 통계가 나오진 않았지만 그런 전통음악보다 신국악의 연주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그렇기에 신국악의 향방은 그대로 미래의 국악이 될 것은 자명하다.
김성국(중앙대학교 국악대학 작곡가 교수)의 작곡 발표회에는 6곡이 선보였다. 지난 10월에 열렸던 29회 서울무용제에서 음악상을 거머쥔 ‘LOVE AFFAIR'를 비롯한 새로이 선보이는 독주 악기를 위한 다섯 곡이다. 대금, 피리, 아쟁, 가야금 그리고 저음해금.
이 여섯곡들의 음악적 외형은 다소 현대적이다. 많은 서양작곡가들이 그러하듯이 국악작곡가들의 작가적 경향은 컨템포러리의 색채를 조금씩은 칠하고 있는데, 그 점에서는 김성국 교수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발표된 한곡 한곡을 모아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모든 곡들의 대강이 하나로 모아졌다.
그것은 바로 장단 위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연주가 끝난 뒤 김 교수는 “요즘 고민이 바로 장단이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국악기 하나 하나와 싸우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어찌 요즘의 고민이겠는가, 그가 국악을 작곡하는 한 평생의 고민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창작음악이 다양하지 않다. 일상적인 스타일에서 벗어나 변화를 주고 싶었고 그 모티브가 바로 장단”이었다고 한다. 탄탄한 전통의 장단 위에 작가적 시도와 변화가 자유롭게 춤을 추었다. 특히 이날 발표회의 표제이기도 했던 피리독주곡 ‘피리를 위한 화(花)‘ 노들강변이 됐건, 홍대 클럽이 됐건 춤이라도 추고 싶게 만들었다.
독주 악기를 위한 작곡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막상 무대에 오른 연주자들의 수는 대단히 많았다. 특히 네 번째 연주된 ‘가야금 앙상블을 위한 현의 운동’은 최근 중앙대 국악대학에서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앙상블코리아나’ 8명의 가야금주자들이 좁은 무대를 빼곡히 채웠다.
이곡이 흥미로운 것은 전통 산조를 해체했다는 점이다. 산조의 해체야 드물지 않은 일이나 산조가 가진 장단의 특성 즉 이완과 긴장의 자유로운 넘나들이에 천착했다는데 김성국의 손맛이 좀 다름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국악 팜플릿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말도 등장한다. ‘나는 사회의 중심에 서있는 지도층의 거짓말을 보면서 불쾌감을 느낀다. 나는 오늘, 이 곡으로 그들을 조롱한다’고 쓴 곡은 대금 독주를 위한 ‘C와 거짓말’이란 곳이다. 이날 첫 순서에 세운 이곳은 그런 조롱 때문일까 분방하면서도 뭔가 경계하는 듯한 느낌을 주엇다. 음악적인 것뿐만 아니라 시대에 대해서 뭔가 발언하고자 하는 젊은 기개 또한 당당히 밝히고 있었다.
많지는 않지만 지금 이 땅 많은 곳에서 창작국악이 발표되고 또 연주되고 있다. 작곡가 자의에 의한 것이건, 연주자들의 위촉이건 발표되어 켜켜이 쌓이는 그 곡들은 그대로 미래 국악의 나이테가 될 것이다.
좋은 곡, 잘 만든 곡도 중요하지만 이 날 김성국 교수의 발표회에서 새삼 느낀 것은 진정 창작국악이 국악을 닮아야 한다는 한편 당연한 문제였다. 다른 말로 하자면 국악다운 창작국악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김 교수의 또 새로운 작업에 대해 기대를 걸게 된다.
2008.12.11 18:17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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