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정부로부터 사퇴압력을 받아오다 지난 4일 사직서를 제출한 신필균 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
권우성
"정부 말 잘 듣는 사람을 임명하고 싶은 게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복지부의 정치행위다. 사퇴요구 한 공무원이 누군지 공개적으로 밝히라고 했는데 굳이 내 입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복지부 스스로 알 것이다. 과거경력 들먹이며 정치행보 운운하는 것은 인신공격이다. 국민의 정부 시절 청와대 민정2비서관을 지낸 걸 끌어들이는 것도 연좌제적 발상이다."신필균(61)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은 지난 4일 사직서를 제출했다. 손숙미 한나라당 의원이 국회에서 발의한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 전면개정법률안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히기 위해서다.
신 총장은 사직서를 통해 "이 법안은 모금회 설립취지는 물론 한국사회에서 모금회의 역할과 기능을 크게 훼손하고 민간 자율성과 창의성을 기반으로 한 기부문화를 후퇴시키는 조치"라고 비판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12일 오전 이사회를 열고 이 같은 신 총장의 뜻을 받아 사직서를 수용했다. 지난 4월 이후 정부로부터 지속적인 사퇴압력을 받아오던 신 총장은 11일 <오마이뉴스>와 만나 "앞으로 인신이 자유로워지면 손숙미 법안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민간 기부문화 활성화를 저해하는 행위에 맞서 싸우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신 총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7차례에 걸쳐 지속적으로 '사퇴압력'을 받아왔다고 밝혔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정부 산하단체 기관장도 아닌 민간모금단체 사무총장에 대해서까지 '신정부 수립에 따른 산하기관장 교체추진'을 요구했다"며 "복지부 정책관이 모금회 경영기획팀장을 직접 찾아와 '모금회도 교체대상'이라고 밝히는 데서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폭로했다.
신 총장은 또 "복지부가 공동모금회 인사에 관여한 적도 없고 관여할 이유도 없다고 밝힌 데 대해 황당하기 짝이 없다"며 "이미 공동모금회 내부 분과위원회 위원들 사이에 '주지의 사실'이 돼버린 복지부의 사퇴압력에 대해 스스로 모른다고 발뺌한다면 그 자체로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못 박았다.
무엇보다 신 총장은 "이세중 회장까지도 '모금회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사무총장이 결단해달라'고 했다"면서 "사무총장 사퇴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대통령 부인의 명예회장 수락지연과 모금활동이 부진하게 될 것이라고도 했는데 그 모두가 거짓말이라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신 총장은 "1970년대 기부금 모집행위를 규제해오던 정부가 97년말 기부문화 활성화 차원에서 민간에 모금활동을 맡겼다"며 "이명박 정부가 10년만에 이 취지를 거슬러 직접 배분권을 갖겠다고 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정부가 왜 풀뿌리 기부문화를 간섭하고 통제하려는지 그 이유도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복지부는 민간모금기관인 공동모금회를 장악하려는 의도를 멈춰야 한다"며 "최영희 민주당 의원의 지적처럼 정부가 모금회 배분권을 뉴라이트그룹에 주려는 것이라면 심각한 문제"라고 우려했다.
다음은 11일 신 총장과 한 인터뷰를 정리한 것이다.
"다른 기관들 민영화하면서, 왜 모금은 관치로 하나"- 9일 사의를 표명했다. 임기가 남았는데 돌연 사의를 표명한 까닭은 무엇인가."최근 사직서를 내야겠다고 생각한 건 손숙미 한나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 전면 개정안 때문이다.
법안의 문제점은 크게 2가지다. 첫째, 정부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좌우하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둘째,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한다고 하지만 저해하는 내용이 있다. 이 법안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의사 표시로 사직서를 제출했다. 모금회 사무총장 자격으로는 법 반대운동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자유로운 신분에서 이 법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제기할 것이다."
- 손숙미 법안에 따르면 '전문모금기관협회'가 신설되는데 이 협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실제 일부 복지학자들이 그 점을 우려한다. 법률안에는 전문모금기관을 심의하는 기관이 있고 전문모금기관협회도 있다. 이 협회와 기관에서 일하는 운영위원·이사들을 전부 정부가 지정하는 것으로 돼 있다. 모금은 일선 기관이 하고 배분 권한은 정부가 갖겠다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풀뿌리 모금을 통해 소규모로 복지사업을 하는 기관들이 정말 어려움에 처하지 않을까 심히 우려된다."
- 현행 공동모금회법은 1997년 YS정부 말 사회복지계와 시민사회가 '국민의 자발적 성금에 대한 정부 통제와 권리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명분으로 만들었다. "공동모금회법 1조에 따르면, '공동모금회는 민간의 복지적 이해를 증진시키고 참여를 유도해 모금하며 투명하고 공정하게 관리 운영한다'고 돼 있다. 민간 주도의 중요성을 담기 위해 법 1조에 이 내용을 넣은 것이다. 올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꼭 10년 되는 해인데 이명박 정부는 이 취지를 (거슬러) 과거로 회귀하겠다는 발상을 하고 있는 거다.
복지부는 공동모금회를 장악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독점적 모금방식의 문제점을 열거하면서 복수화 하겠다고 하는데 그 목적의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 잘 봐야 한다. 일단 모금회는 지난해 모두 2700억원 정도 모금했다. 지난 10년간 1조4천억원 이상을 모았다. 공동모금회는 예산이 많은 기관이다. 따라서 돈 욕심이 날 수 있다. 무엇보다 배분을 정부 마음대로 하고 싶은 의도가 크다고 본다. 최영희 민주당 의원은 공동모금회의 배분권을 뉴라이트 그룹에 주려는 게 아니냐고 문제 제기한 바 있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