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에 목숨 건 대학생들, 스파이도 불사?

취업에 도움되면 필사적으로 매달려... 돈 거래 등 부작용도 많아

등록 2008.12.15 16:26수정 2008.12.17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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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항공사에서 진행했던 광고공모전 웹사이트 화면
공항공사에서 진행했던 광고공모전 웹사이트 화면화면캡쳐

실업자 300만명 시대. 대학생들의 관심은 온통 취업에 쏠려 있다. 토익 점수 향상이나 고시합격, '스펙'관리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못하는 학술동아리는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져 소멸위기에 처해있는데 비해 투자동아리, 공모전 동아리 등의 경제·경영동아리의 수는 늘어나는 추세다.

정규 취업의 전초전 격인 인턴십과 공모전 준비 동아리는 특히 인기다. 기업은 젊은 인재를 발굴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얻는 차원에서, 대학·대학원생은 입사 지원을 할 때 가점을 받기 위해 공모전을 이용하고 있다.

입상 시 상금은 평균 100~500만원. 상금, 가점 뿐 아니라 인턴 채용 혜택을 주는 기업도 많다. 임성희(이화여대 국문·05)씨는 "인턴 채용 경쟁률도 수백 대 1이다"라며 "여러 가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공모전을 우선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혜택이 많으니 경쟁도 치열해 과열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

공모전 정보 스파이 등장

공모전은 곧 정보전이다. 지난해 롯데백화점 환경 공모전 논문상을 수상했던 주재연(이화여대 환경공학·08년졸)씨는 준비 과정에서 황당한 일을 겪었다. 자신의 경영관련 지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한 주씨는 공모전 카페에 경영학 전공 팀원을 충원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메일로 지원한 'ㄱ'씨는 경영학과 학생에다 공모전 수상경력도 많았다. 주씨는  'ㄱ'씨를 별다른 의심 없이 팀에 넣었다. 'ㄱ'씨는 처음엔 논문의 방향에 대해 이것저것 충고하는 등 열심히 하는 것처럼 행동했으나 논문에 참조될 어떠한 자료도 올리지 않았다. 주씨와 친구가 힘들게 구해 올린 자료 등을 읽거나 퍼간(스크랩) 기록만 있을 뿐이었다. 이후 그는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양윤 이화여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러한 모습은 팀의 부정적 측면이지만, 팀의 구조적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문제"라면서 "이런 점 때문에 기업이나 조직에서 새로운 사람을 선발할 때 개인의 성격, 가치, 태도 등을 심층적으로 알아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대기업에서 인사를 담당했던 한 관계자는 "면접 등을 통해 지원자의 인간성과 성격 등이 드러나겠지만 공모전을 통해 가산점을 받은 경우 기업입장에선 결과만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공모전 입상도 돈으로 살 수 있나요?


정당한 노력으로 승부하려하지 않고 돈으로 공모전 수상을 노리는 학생도 있다. 각종 공모전에서 수상경력을 쌓아 작년에 대기업 광고회사에 입사한 김아무개씨는 "돈을 받고 공모전을 도와 준 적이 있다"고 말했다. 경험 없이 마음만 앞선 학생이 수상경력이 많은 학생에게 돈을 지불하고 공모전 모든 과정에서 도움을 받는 것이다.

이뿐 아니다. 무임승차하려는 사람도 있다.  홍성조(서울시립대·경영4)씨는 지난 학기 한국무역협회 공모전에 도전하기 위해 팀을 꾸렸다. 홍씨는 타과 학생과 준비하면 논문 내용이 좀더 풍부해질 것이라는 생각에 학교 게시판을 통해 국제관계학과 학생 2명을 충원했다.

홍씨는 "막상 시작하려보니 프리젠테이션 제작부터 논리를 전개하는 방식 등 기본적인 실력도 갖추고 있지 않는 등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며 "연습이 아니라 실전인 공모전을 준비하는 데도 무임승차하려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다"고 말했다.

윤정구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단지 기초도 없는 상태에서 이와 같은 공모전에 운 좋게 당선되는 경우 이것은 인생을 망치는 마약과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공모전을 무조건 따라다니기 전에 자신이 평생 좋아할 수 있는 전문적인 일이 어떤 일인지를 먼저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공모전위해 '일시적' 연합... 끝나면 뿔뿔이 흩어져

공모전 동아리가 일시적 연합의 성격이 강하다는 지적도 있다.

구희경(이화여대 광고홍보·4)씨는 "경험 많은 선배들과 팀을 짜서 대기업 취업 시 도움되는 입상 경력을 쌓고, 공모전 수상 등의 목적이 달성되는 건 좋지만 뭉쳤던 팀은 금세 흐지부지 되고 만다"고 말했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취업 준비도 대학생활의 일부인만큼 공모전 동아리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며 "단, 너무 많은 동아리가 공모전 응모 그 자체만을 목적으로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은 별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공통의 관심사를 공부하는 동아리가 그러한 관심을 확장하는 과정의 일부로 공모전에 응모하는 것이라면, 공모전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모임이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대학생의 관심이 학술이나 학문이 아니라 취업에 쏠려있는 현실에 대해 윤정구 교수는 "본인 인생의 목적이 대학 졸업 후 어떻게든,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30대 후반이나 40대 명예퇴직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면 학문보다 취업에 연연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그러나 평생 자신의 전문성 영역을 구축해서 공헌하려면 인문학적 기반이 튼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윤 교수는 "인생의 행로를 바꾸는 중요한 judgement call(판단)들은 대부분 인문학적 지식에 기반해 있다는 것이 개인적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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