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 훌태를 이용해 일일이 벼나락을 털었습니다.
송성영
"어어, 조심해요!"
논 옆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윗동네 아저씨가 옆 눈질을 하다가 개울 창으로 쑤셔 박힐 뻔했습니다. 한 겨울에 논바닥에서 박물관에서나 볼수 있는 훌태로 나락을 일일이 훌 터 대는 내 꼬라지를 한심한 눈초리로 쳐다보다가 잠시 중심을 잃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동네 사람들 온갖 눈총 다 받아 가며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벼 탈곡을 다 마쳤습니다. 밭에 깔아 놓을 볏단까지 우리 집 개, 곰순이네 집 옆에 차곡차곡 쌓아 놓았습니다. 언제 적 얘기냐구요? 바로 오늘 12월 16일. 콤바인으로 한 두시간이면 끝날 일을 두 달 가까이 걸렸습니다.
지푸라기를 툴툴 털고 사랑방에 들어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지금 내 등짝은 땀으로 흥건합니다. 논이 얼마나 넓어 이제사 마쳤냐구요? 두 마지기도 채 안 되는 손바닥만한 논입니다.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주식이라는 것을 투자하게 되면 내년쯤에는 부자 된다는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을 때 원시적인 농법, 손모내기로 시작하여 '훌태'와 '호롱개'까지 동원해 겨우 벼 수확을 마친 것입니다.
말 나온 김에 잠깐 샛길로 빠져 '경제 대통령' 얘길 좀 하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일국의 대통령' 말을 '헛소리' 취급하면 되냐구요? 됩니다. 땅 한 평 없이 소작하고 있는 내겐 헛소리 그 이상으로 들립니다. 요즘 툭하면 고소하고 벌금 때리고 파면 시키고 별의 별 짓거리를 다 하는데 맘대로 하라지요.
주식이라는 것이 오르면 경제가 좋고 떨어지면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 내가 아는 주식에 대한 상식은 그게 전부입니다. 벼 나락을 한 알 한 알 '훌태'로 훌 터 낸 단순 무식한 촌놈에게 가마니떼기처럼 가만히 앉아 주식에 투자하면 부자가 되느니 어쩌니 맥 빠지는 소리를 늘어놓고 있다면 그게 헛소리, 0소리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까?
더구나 스스로 경제 대통령이라 떠벌이고 다녔던 사람이 오히려 경제를 말아먹고 있질 않습니까?. 세계 경제가 다 어려워서 그렇다구요? 단순무식한 촌놈이 기왕 시작한 김에 좀더 단순무식한 경제 얘기 좀 하겠습니다. 경제가 어려울 때 잘해야 진짜 '경제 대통령' 아닙니까? 경제논리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익은 둘째 치고 최소한 본전치기, 원금은 까먹지 말아야 되질 않습니까? 경제가 좋을 때 누군들 경제 대통령을 못해 먹겠습니까?
경제가 어렵다고 자손대대로 물려받은 대자연을 까뭉개서 경제 살리겠다는 속셈은 또 뭡니까? 그런 식으로 경제를 살린다면 단순무식한 나 같은 촌놈 역시 '경제 대통령'될 수 있습니다. 개발인지 괴발인지 좌우지간 무지몽매한 사람들 현혹시켜 푼돈 쥐어 주고 그냥 불도저로 깡그리 밀어버리면 그만 아닙니까?
우리 동네에서는 부모님이 뼈 빠지게 지켜온 땅 팔아먹는 자식을 애비에미도 모르는 후레자식이라고 합니다. 낳아주고 먹이고 애지중지 길러 실컷 가르쳐 놓았더니 그런 부모님 돕지 못할망정 겨우 남은 땅까지 죄다 팔아먹으려 한다면 그 인간은 그야말로 부모님 피 빨아먹는 기생충이나 다름없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우리 국토는 우리를 낳고 길러주고 먹이고 가르침을 주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국토는 부모님 품과 같습니다. 그런 국토를 아름답게 가꾸지 못할망정 함부로 짓 까뭉개고 난도질하여 경제를 살리겠다니, 쌍욕 밖에 안나옵니다. 그런다고 경제가 살아납니까? '조상 땅 팔아 먹고 잘 된 인간 없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도무지 상식이 통하지 않는 '경제 대통령' 얘기 꺼내면 머리에 쥐가 날려고 하니,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지극히 게으른 농사 얘기로 돌아가죠. 농사라 할 것도 없는 낯간지러운 농사일을 하다보니 개발이니 주식이니 따위가 얼마나 허무맹랑한 얘기며 또한 조상대대로 물려 받은 자연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 되더군요. 거기서 밥이 나오거든요.
주변 사람들과 비록 한 되 박씩 정도 나눠먹을 수 있는 손바닥만한 논이지만 우리 논에는 엄청 많은 일손이 들어갔습니다. 가뭄에 물꼬 대랴 죽을 똥을 쌌지만 그렇다고 농사일이 괴로웠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올해 벼 수확이 있기까지 행복했다는 얘기하고 싶어서 입니다.
농기계 사용은 처음 논을 갈아엎어 써레질 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삽으로 일일이 갈아엎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없는 소고삐 잡고 “이러 쩌쩌~” “일러루 절러루” 해가며 쟁기질을 할 수도 없는 처지니 어쩔 수 없었지요.